중앙선 침범해 낸 사망사고…대법 “중대 과실 단정 못해”

이슬비 기자 2024. 6. 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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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운전 중 중앙선을 침범해 사망사고를 냈다 하더라도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파산 신청을 통해 사고로 발생한 손해배상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국토부 산하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이 운전자 A씨를 상대로 낸 양수금 청구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1997년 1월 서울 종로구 청계고가도로에서 차를 몰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과 부딪혔다. 당시 A씨는 1차로를 주행하던 중 차로에 다른 차가 진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충돌을 피하려 핸들을 꺾었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상대 차량에 타고 있던 3명 중 1명이 사망했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후 자동차손해배상 보장사업에 따라 보험사가 피해자 측에 4500만여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고, A씨에 대한 채권을 갖게 됐다.

2015년 A씨가 개인 파산 신청으로 여러 빚을 면책받자 문제가 불거졌다. 면책 대상이던 채권 목록에 보험사의 손해배상 채권이 포함된 것이다.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은 보험사로부터 채권을 넘겨받아 2022년 A씨를 상대로 양수금 청구 소송을 냈다.

소송의 쟁점은 A씨가 중앙선을 침범해 낸 사고를 ‘중대한 과실’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채무자회생법상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해 발생한 손해배상은 면책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면 면책 대상이 아니고,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면책받을 수 있다.

1·2심은 A씨의 사고가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면책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채권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면책결정 확정에도 A씨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는 1차로를 주행하던 중 차로에 다른 차가 진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충돌을 피하려다가 중앙선을 침범했고, 당시 제한속도를 현저히 초과해 주행하지도 않았다”며 “중앙선 침범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채무자회생법에서 규정한 ‘중대한 과실’이 존재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피해자 중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정은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직접적인 기준이 될 수 없으므로 중대한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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