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예상 외 선전할 수도"…'극우 돌풍' 전망 나왔다

김세민 2024. 6. 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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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 얻는 극단주의…무너지는 자본주의·전통
FT "기득권 보수주의 구조적 문제 안고 있어"
자본주의 번영과 사회적 안정 양립 어려워
'조랑말 갈등'... 보수주의의 내적 모순
중도 약화…보수당의 붕괴가 극우파 부상 촉진
사진=AFP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돌풍'이 예고된 가운데, 극우파들이 선전한 이유는 기존 정치의 리더십 부재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8일(현지시간) 분석했다.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고,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틈을 타 극우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양립불가능한 보수주의자들의 가치

FT는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인 자본주의의 번영과 사회적 안정은 양립 불가하다며 이를 ’조랑말 갈등‘이라 불렀다. 보수주의자들이 목표한 바를 이루는 일은 조랑말을 밟고 링을 동시에 넘나드는 능숙한 서커스 기수가 하는 묘기만큼이나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국가전략가 에드워드 루트왁은 30년 전 "왜 파시즘이 미래의 물결인가"라는 내용의 칼럼을 영국 서평 전문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싣기도 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서구 온건 우파 정치인들의 연설에서 발견한 모순을 지적한다. 칼럼에 따르면 정치인들은 저녁 시간대 연설에서 전반부에서 자본주의적 가치인 자유로운 경쟁을 찬양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가족과 공동체의 쇠퇴를 애도하는 데, 이는 이미 자본주의로 달성될 수 없는 가치라는 점에서 모순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인 갈등은 상존하지만, 그간 자유민주주의 국가 내 중도 및 보수 정당들은 기득권에게 유리한 선거 제도 및 홍보 전략을 활용해서 권력을 유지했다고 FT는 설명했다. 독일 중도 정당인 자민당은 통상적으로 5~10% 득표율을 기록하며 매 선거마다 보수 정당 또는 시민 운동 성향의 정당과 연합을 구성했다. 미국은 의회선거에서 선거구에서 최다득표한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채택했고,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선거가 이뤄지는 '승자독식 방식'이 적용된다. 영국의 보수주의는 눈에 띄게 순수하고 예외적이라는 생각을 항상 장려한 사례도 견고한 보수주의를 만들었던 기반 중 하나다.

 기득권 침묵 속 극우 세력 부상 

하지만 FT는 이런 전략에도 불구하고 정치 진형이 극우 쪽으로 기우는 흐름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 전반에 걸쳐 중도가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짚었다. 오는 7월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9년만에 패배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고,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로 선전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이유는 기득권들의 일시적인 실책 때문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FT에 따르면 극우파가 주장하는 가치는 크게 3가지다. 자유 시장 세계주의, 민족 복지주의, 윤리·문화적 전통주의다. 이 셋도 기득권들의 가치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세계주의자들은 해외 자본이 드나드는 작은 국가를 원하고, 복지주의자들은 국민을 돌보고 이민으로부터 보호하는 효과적인 국가를 원한다. 세금, 규제, 무역에 대해서 각각의 사상을 신봉하는 자들은 의견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현실과 환상이 있다면 목소리는 커지는데, 극우파의 지적은 현실적이라고 FT는 진단했다. 극우파가 주목하는 현실은 세계화로 인한 대규모 구조적 변화로 인한 불안과 불평등,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반복적인 대응 실패다.

극우파가 사용하는 환상인 수사학(rhetoric)은 주로 '공동의 적'에 초점을 맞췄다. 자유주의의 엘리트에 대항한다는 개념이다. 엘리트를 비난하는 특정 시기도 다르다. 극우 세계주의자들은 1945년 이후의 엘리트를, 복지주의자들은 1990년 이후의 복지 실패를, 전통주의자들은 1960년대에 반전운동이 확산하고 히피 문화가 태동하던 시기를 비난한다. 각 가치에 상반되는 문제가 대두됐던 시기에 활동했던 엘리트를 비난하는 방식이다.

정치적 위기가 직면할 때마다 보수주의자들은 모방, 협력, 저항 중 하나의 전략을 택했다. 1945년 이후 영국에서 양당이 30년 가까이 비슷한 사회복지정책을 내놨던 ‘버츠켈리즘’, 1974년 공공부문 민영화 등을 추진했던 대처리즘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제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보수당은 확실한 리더십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주의의 침묵 사이로 극우 세력의 외침이 새어나오는 이유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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