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사람 쫓겠다면서 나무 잘라버린 어느 지자체 [추적+]
동인천역 북광장 ‘금주구역’ 지정
벤치, 나무 등 휴식공간 함께 없애
거리서 술 먹는 주취자 많았던 탓
하지만 여전히 광장 점령한 주취자
실패해 버린 동구청 ‘북광장 플랜’
인천시 동구청이 동인천역 북광장을 '금주禁酒 구역'으로 지정했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주취자가 많았던 탓이다. 이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걸 막기 위해 의자나 나무 같은 휴식 공간도 없애버렸다. 북광장을 시민 모두를 위한 광장으로 돌려주겠다면서 다소 극단적인 정책을 펼친 건데, 과연 성공했을까.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 4번 출구 앞에 펼쳐진 넓은 광장. 동인천역 북광장이다. 흥미롭게도 이곳 표지판엔 '금연ㆍ금주 구역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쓰여있다. 금연ㆍ금주구역은 익숙해도, 역과 광장을 통째로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는 사례는 낯설다.
인천 동구청은 북광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노숙인과 주취자酒醉者(술에 취한 사람)의 상습 음주를 막고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이곳을 금연ㆍ금주구역으로 지정했다. 지난 1월부터는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신 이들에게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동인천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직장인 박덕미(가명)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곳 광장은 오래전부터 주취자들이 점령했어요. 낮부터 밤까지 광장 벤치와 중앙에 모여 술을 마시며 자신들끼리 도박을 하거나 싸움을 일삼았죠. 지나가는 시민에게 시비를 걸고 노상방뇨까지 해서 민원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사실 인천 동구청이 북광장의 환경에 신경을 쓴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2월 북광장 환경을 정비할 목적으로 민ㆍ관 TF팀을 꾸렸다. 시민의 문화생활을 위해 '동인천아트큐브'란 이름의 문화공간도 만들었다. 하지만 동구청의 이런 플랜은 알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숱한 정책을 동원했지만, 이곳은 여전히 노숙인과 주취자의 땅이다. 왜일까.
5월 28일 오전 11시 동인천역 북광장 한편. 어르신 5~6명이 거리에 앉아 막걸리와 소주를 연신 마시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바닥에 눕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난 주취자 강상근(70)씨는 "혼자 살고 외로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매일 6시간씩 술을 마신다"고 했다. "이곳에 있으면 교회에서 주는 밥과 빵도 받을 수 있어. 경찰관이 오면 잠깐 피하면 그만이지."
북광장의 주취자들은 거리에서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북광장에서 만난 여성 주취자 김재남(50)씨는 길에서 폭력을 당해 어깨뼈가 부러진 적이 있다. 길에서 술을 먹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김씨는 "3년 동안 8명의 노숙인과 주취자가 이 길에서 죽었다"고 설명했다.
북광장을 통째로 금연ㆍ금주지역으로 묶은 동인천의 정책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건데, 더 큰 문제는 후속조치에 있다. 동구청은 노숙인과 주취자들이 아예 광장에 머물 수 없도록 '극단적인 정책'을 폈다. 나무를 바싹 잘라 그늘을 없애고 7~8개가량 있던 벤치도 없애버렸다. 노숙인과 주취자를 광장 밖으로 쫓아내려는 전략이었지만, 부메랑은 애먼 시민이 맞았다. 시민들이 쉴 공간이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도시공동체 인천을 만드는 모임 '스페이스빔'의 민운기 대표는 지난해 여름 동구청의 무모한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파라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간이의자와 파라솔을 갖고 동인천역 북광장으로 나가 그늘과 벤치가 없는 곳에서 햇빛을 피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민 대표는 "동구청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쫓아내는 방식을 선택했다"며 "고심을 하지 않은 채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는 주취자들을 지역사회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섬세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구청은 그늘에서 사람을 쉬지도 못하게 하며, 주취자들을 '없앤다'며 혐오스럽게 취급하고 차별하고 있다. 복지기관들과 좀 더 섬세하게 협력해 주취자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동인천역 북광장 근처에 주취자들을 돕는 복지기관도 필요하다."
인천 동구청이 추진한 '북광장 플랜'이 실패한 까닭은 또 있다. 무엇보다 북광장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한 '민ㆍ관 TF'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고 있다. 민ㆍ관 TF는 지난해 2월과 8월 두차례를 끝으로 열리지도 않고 있다. 꼼꼼한 정책 설계도, 연계책도 없었다.
서울의 경우,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인력이 매일 노숙인ㆍ주취자 밀집지역으로 나가 아웃리치(Outreachㆍ지역주민을 향한 기관의 봉사활동)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취자들을 상담하고, 알코올중독병원ㆍ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해 입원ㆍ치료를 병행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노숙인종합지원센터는 서울(3곳), 경기(3곳), 부산(3곳), 대구(1곳), 광주(1곳), 대전(1곳), 제주(1곳) 등에 있지만, 인천엔 없다.
인천 동구청 측은 "주취자들을 북광장에서 강력하게 내쫓는 게 목적은 아니다"면서 "주취자들을 동구중독관리센터 등 기관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의도는 좋지만 탁상공론에 그쳐선 안 된다. 지금처럼 설익은 정책을 내놓으면 부작용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이준모 전국노숙인시설협회 회장은 "거리에서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있는 이들은 '일할 의지' '살 의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들과 지속적인 상담을 꾀하고, 하루에 3시간씩이라도 거리 청소 등 간단한 일거리를 주는 등 세심한 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과연 동인천역 북광장은 '깨끗한 환경'으로 탈바꿈할까. 공은 지자체로 넘어갔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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