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아웃백에서 2만년 전 선사시대 암벽화를 만나다[전승훈의 아트로드]

전승훈 기자 2024. 6. 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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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 스페인 북부에 있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선사시대 가장 유명한 예술품입니다. 구석기 시대인들이 그려넣은 소와 말과 같은 동물 그림은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울주 대곡리 반구대에 있는 선사시대 암각화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 감동이었습니다. 울산 앞바다에서 헤엄치던 혹등고래, 귀신고래가 물을 뿜고, 사람들이 배를 타고 사냥을 하고, 소와 말을 그린 그림이 선사시대의 삶을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주 퀸즐랜드주 최북단 케이프요크반도 로라 고원지대의 붉은 사암벽에 원주민들이 약 2만 년 전부터 1200년 전까지 그린 암벽화. 호주 원주민 쿠쿠얄란지 부족 후손 조니 무리슨 씨가 암벽화를 설명하고 있다.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그런데 호주 북동부 퀸즐랜드주 최북단 로라(Laura) 근처 산악지대에서 또다시 선사시대 암벽화를 만나게 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호주에서는 붉은 사막이나 초원, 숲이 우거진 국립공원 등 호주 내륙지역의 광활한 자연환경이 살아 있는 황무지를 ‘아웃백(Outback)’이라고 하는데요. 아웃백에는 원주민들의 벽화 작품이 남아 있는 곳이 많습니다.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 곳 암벽화는 깊은 동굴이나 물에 잠긴 바위 절벽에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코 앞까지 다가갈 수 있어 경이로웠다. 자연에 그대로 노출된 채 1200년부터 2만년까지의 세월을 견딘 예술작품이었습니다.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거대한 붉은 사암 바위가 천연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절벽 중간 부분에 40여m 회랑처럼 그림을 그려넣은 색채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현대의 갤러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완벽한 자연의 ‘경이로운 미술관’(Magnificent Gallery)입니다.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Jaramalli Rock Art Tour)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 원주민의 예술인 암벽화(Rock Art)가 있는 곳은 퀸즐랜드주 북부 케이프 요크 반도에 있는 호주 원주민 ‘쿠쿠-얄란지(Kuku-Yalanji)’ 부족의 땅입니다.

케언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출발한 헬리콥터가 포트 더글라스 인근 로라에서 한번 주유를 하고, 다시 열대우림 숲을 건너 북쪽 산악지대로 날아간지 1시간 여. 유칼립투스 나무가 빽빽히 우거진 숲 속으로 빨간색 헬리콥터가 착륙했습니다.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진행자 조니 무리슨.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헬기에서 내리니 이 지역의 호주 원주민인 쿠쿠-얄란지 부족 후손인 조니 무리슨(John Murison)씨가 둥그런 챙이 멋진 모자를 쓰고 우리 일행을 맞았습니다. 그가 데리고 나온 어린 강아지가 헬리콥터 소리에 놀랐는지 컹컹 짖었는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꼬리를 흔들며 반기네요.
산길을 몇미터 걸어가자 조니의 ‘자라말리 캠프(Jaramalli Camp)’가 나타났습니다. 버기카가 한 대 놓여 있고, 야외에서 나무를 태우는 캠프 파이어도 있습니다.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그의 방갈로에 들어서자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에 ‘와우!’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걸어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밖에서 쳐다보면 절벽 꼭대기에 있는 오두막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랜드 캐년을 보는 듯한 협곡의 절벽에는 붉은색, 노란색 사암이 선명합니다. 그 사이로 우거진 나무와 초목, 계곡이 펼쳐져 있습니다.

조니의 캠프장 방갈로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치좋은 곳에 세워둔 정자와 비슷한 데요. 시원하게 뚫린 전망을 보며 한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는 웰컴 드링크와 치즈, 산딸기같은 간식거리가 놓여 있습니다.

조니는 이 곳에서 이 곳에서 자라말리 캠프장을 운영하면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Jaramalli Rock Art Tour)’ 프로그램을 가이드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
그는 호주 고고학자, 박물관과 협력해 호주 원주민 암각화 보존과 조사, 3D 화면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참여해왔습니다.

조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았던 고대의 지식을 활용해 쿠쿠 얄란지 부족의 종교와 예술이 암벽화에 어떻게 담겼는지에 대한 내용을 골드코스트 고고학회에서 발표도 했었다고 하네요.

조니와 함께 본격적으로 암벽화 투어에 나섰습니다. 그는 손에 막대기를 하나 들고 있었는데요. 끝이 뾰족한데 갈고리처럼 생겼습니다. 부메랑처럼 호주 원주민의 전통 사냥도구입니다. 이 갈고리에 줄을 걸어서 돌을 던지면, 더욱 힘을 받아서 멀리 보낼 수 있다고 하네요.
호주 원주민들은 나무 열매와 잎, 껍질 등에서 먹을 음식과 약 등을 구하는 ‘부쉬 터커(Bush Tucker)’ ‘부시 푸드(Bush Food)’의 전통이 있습니다. 그는 방갈로 앞에서 자라는 나무의 노란색 솔잎같은 잎을 따더니 손을 잡아서 쭉 짰습니다. 옅은 오렌지빛 잎에서 나온 즙이 향긋한 향기가 나더군요. 그는 “호주 원주민들은 이 즙을 짜서 물에 타서 ‘레모네이드 향이 나는 차’를 마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걸어가다가 한 나무 풀 숲 속으로 들어가더니 주먹을 쥐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나무에 매달린 개미집에서 개미를 몇 마리 잡아왔는데, 주먹쥔 손의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습니다.

냄새를 맡았을 때는 강한 향이 나서 코가 찡긋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손바닥을 펴니 개미들이 있었습니다. 머리와 배부분은 초록색이고, 가슴은 갈색인 개미었습니다. 이 개미는 뱃 속에 꿀을 보관하는 ‘꿀주머니 개미’(Honey Ant)였습니다. 원주민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이 개미를 먹으면 낫는 특효약이라고 합니다. 항균효과가 뛰어나 감기약이나 인후통 약으로 쓴다고 합니다. 한번 입에 넣고 씹어봤더니 박하나 로즈마리 등의 허브를 씹고 있는 듯한 달고 향긋한 맛이 났습니다.
산길을 좀 더 걷다보니 드디어 바위에 그려진 암벽화가 나타났습니다.

경이로운 미술관(Magnificent Gallery)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저쪽 아래를 보세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잖아요. 역사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조니 씨는 갈고리 막대기를 들고 암벽화 입구에 사람들이 줄지어 오는 모습을 그린 그림부터 설명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수천, 수만년 전에 그린 암벽화가 살아 숨쉬는 듯했습니다. 캥거루가 뛰고 있고, 악어와 거북이가 기어다니고, 에뮤가 커다란 날개를 접고 긴다리를 휘청이며 걷고 있었습니다. 호주의 야생 들개인 딩고도 보이네요.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선사시대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사냥하거나 봤던 동물들을 그리는 데, 호주에서는 역시 다른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동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암벽화에 그려진 에뮤.
벽화에 그려진 이 동물은 호주의 국조(國鳥)인 에뮤(Emu)입니다. 전세계에서 호주에서만 살고 있는 타조를 닮은 대형 주조류(走鳥類)입니다. 몸길이 1.8m, 몸무게 35~54kg 정도 나가는 타조를 닮은 새입니다.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 아폴로베이 Wildlife Wonders에서 만난 에뮤.
호주 국장에도 캥거루와 함께 에뮤가 그려져 있습니다. 호주의 선사시대 암벽화에도 캥거루와 에뮤가 가장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이 의미심장하네요.
암벽화에는 가방같은 형태로 그린 그림도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이 나무 껍질을 벗겨내 바구니처럼 짜서 만드는 가방이었습니다. 가방은 거꾸로 그려져 있었는데, 조니는 “가방 속을 잘 보면 아기가 보인다”고 하네요.
가방 속에 아기를 넣어서 다니며 육아를 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호주의 동물들은 몸에 달린 주머니 속에 새끼를 넣고 다니며 기르는 유대류 동물이 많은 데, 사람들도 아기를 가방 속에 넣고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림입니다.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Magnificent Gallery(경이로운 미술관)’로 불리는 이 곳은 40m길이의 회랑 같은 암벽에 약 450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네요. 호주 고고학자들은 이 그림들이 가장 최근 것은 1200년 전, 가장 오래된 것은 약 2만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는 부분까지 그림이 그려 있고 그 위 바위 틈에 자연적으로 생긴 검은색 선이 있는데, 대형벽화에 액자를 넣은 듯한 효과를 줍니다. 현대 화랑이었다면 그림을 비추는 조명까지 달았을텐데, 이 곳에서는 천연의 햇빛이 그 역할을 대신하네요.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조니는 “암벽화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주인공은 퀸칸(Quinkan)”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한 신으로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퀸칸은 태양처럼 빛나는 머리 장식을 하고, 벨트를 맨 남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퀸칸은 비정상적으로 긴 팔과 긴 다리를 갖고 있는데요. 스위스 출신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 조각이 생각나는 그림입니다.
퀸칸은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사암 벽화에서 두 팔을 벌리고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모습이네요. 어떤 사람은 거꾸로 그려진 모습도 있는데, 조니 씨는 “죽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거꾸로 그린 사람.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로라 분지(Laura Basin) 아웃백에는 조사결과 최대 1만개의 암벽화 유적지가 있고, 매년 새로운 원주민 암벽화가 발견된다고 하네요. 그런데 대부분의 암벽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머리장식과 벨트를 하고 있는 ‘퀸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북부 퀸즐랜드 로라고원 일대를 ‘퀸칸의 나라(Quinkan Country)’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랜세월 동안 이 암벽화는 지워지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을까요. 비결은 암벽화 윗부분에 바위가 길게 나와 천연의 지붕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암벽 지붕이 반 동굴같은 역할을 해서 안료로 그린 그림이 비바람에 지워지지 않도록 보호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강화 석모도 보문사에 가면 바위 절벽에 해수관음상이 마애불로 새겨져 있는데, 마애불 윗 부분에도 천연의 눈썹바위가 지붕처럼 돼 있어 마애불 보존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조니는 그림 설명 뿐 아니라 암벽화를 그리는 데 사용된 붉은색, 노란색 사암을 갈아서 채색 재료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또한 암벽화 절벽 인근에서 수집한 돌칼, 돌도끼, 연마석 등 고대의 생활 문화를 알 수 있는 유물도 전시해놓았습니다.
그는 “쿠쿠-얄란지 사람들은 아마도 벽화가 그려져 있는 이 바위 은신처 아래에서 민물고기 바라문디(큰입선농어) 같은 생선을 요리했을 것”이라며 “고고학 연구자들은 이 주변에서 숯불을 피웠던 흔적과 함께 캥거루, 포썸, 박쥐 등의 동물의 뼈와 홍합 조개껍질 등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호주 원주민 악기 디저리두를 연주하는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가이드 조니 무리슨 씨.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조니는 설명을 마친 후 암벽화 앞 바위에 앉아 원주민들의 전통악기인 ‘디제리두’를 연주해주었습니다. 디제리두는 흰개미가 파먹어서 속이 텅 빈 유칼립투스 나무 가지를 찾아서 다듬고, 치장해서 만드는 악기입니다. 돌 지붕까지 갖춘 천연의 갤러리이어서 그런지 디제리두의 저음이 더욱 더 잘 울려퍼지더군요다. 이 곳이 선사시대 원주민들에게 매혹적인 갤러리이자, 레스토랑이자, 콘서트홀이었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조니의 연주를 들으며 벽화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여러 그림 중에서도 원주민 아티스트가 자신의 자신의 손도장을 남긴 부분이 특히 마음에 가네요.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찍은 손도장은 바로 예술가의 서명(Signature)일 것입니다. 요즘 화가들이 작품 한 구석에 사인을 하거나 낙관(도장)을 찍는 것과 비슷합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스타배우들의 손도장을 남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선사시대 예술가 손도장 중에는 남성 뿐 아니라 여성들의 손도장도 많다고 합니다. 조니도 벽화 아래의 계곡에 있는 바위 한쪽면을 긁어내고, 선사시대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아이들의 손도장을 그려넣었습니다. 이 암벽화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는 자신도 조상의 예술 작품 속에 흔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네요.

저도 벽화 속 손도장에 내 손바닥을 겹쳐놓고 사진을 찍어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손크기네요. 손가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수천, 수만년전 선사시대의 예술가의 영혼이 느껴지는 듯하네요.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열대우림 숲을 건너

암벽화 트레킹과 부시워킹(부시 터커를 얻는 원주민들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점심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니는 원주민과 비슷한 방식으로 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했다. 치킨과 소고기 스테이크를 감자, 양파, 당근, 허브을 넣고 함께 냄비에 넣고, 통째로 캠프파이어의 숯불 속에 집어 넣은 뒤 익혀냈다.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를 가려면 두가지 방법이 있다. 헬리콥터를 타고 가는 방법과 4륜구동(4WD) 트럭을 타고 찾아가는 방법이다. 4WD 트럭으로 가는 것은 로라 타운십에서 약 35분 동안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를 달려서 자라말리 캠핑장에 도착하는 것이다. 자라말리에서 제공하는 트럭에 탑승해서 왕복하고, 암벽화를 보고 점심식사를 먹고 돌아오는 원데이 투어는 1인당 350호주달러다. 자신의 4WD 개인차량을 타고 안내자의 트럭을 뒤쫓아 가는 ‘태그얼롱 투어’도 가능하다. 1박 또는 2박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밤하늘 별보기, 캠프장에서의 식사 등이 포함돼 있다.
헬리콥터 투어는 케언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있는 전세 헬리콥터(Nautilus Aviation)를 타고 왕복하는 여행이다. 헬리콥터는 데인트리 열대우림(Daintree Rainforest) 숲 위로 날아간다. 뿌리만 해도 사람 키 높이만한 엄청난 숲이다.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 퀸즐랜드주 동북쪽 해안에 있는 데인트리 열대우림(Daintree Rainforest)는 약 1200㎢ 넓이로, 호주 대륙에서 가장 큰 연결된 열대 우림 지역이다. 데인트리 열대우림은 한때 호주 대륙 전체를 덮은 거대한 숲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점차 쪼그라들었고, 현재 퀸즐랜드 열대 습윤 지역은 1억2000만 년의 기후변화 속에서 살아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열대 우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루 종일 풀숲을 함께 걷고, 조상들의 땅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던 조니에게 캠프장 이름은 ‘자라말리(Jarramali)’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조니의 오두막 한켠에는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조그만 테이블 위에는 그림이 그려진 돌이 놓여 있다. 그림에는 암벽화에 그려져 있는 ‘퀸칸’과 ‘에뮤’가 그려져 있었다. 조니가 입고 있는 자라말리 캠프 셔츠 뒷면에도 사람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바로 머리장식을 한 퀸칸의 모습이었다.
호주 퀸즐랜드주 케이프요크 반도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천둥(뇌우)라는 뜻입니다. 내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고요.“

조니는 ‘퀸칸의 나라’인 쿠쿠 얄란지의 땅에서 조상들의 영혼과 교감하며 살고 있다. 사암의 절벽과 암벽화, 부시터커, 일몰과 밤하늘의 별, 캠프파이어와 허브로 만든 식사까지 하나하나가 인상적이었다. ‘자라말리(천둥)‘는 조상이 물려준 땅과 하늘이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아닐까.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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