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안주면 폭로 방송하겠다”...‘사적 제재’ 유튜버의 두 얼굴 [법조인싸]

강민우 기자(binu@mk.co.kr) 2024. 6. 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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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사건·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정의구현 명분 가해자 신상 폭로
댓글선 ‘통쾌하다’ 반응이 다수
법적으론 ‘사적 응징’ 처벌 대상
사실검증 틀려 제2 피해자 양산
일부 유튜버는 협박해 돈 갈취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폭로 유튜브 채널 [사진=유튜브]
“00여고 XXX 자살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해주세요” “2003년 00 미성년자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도 나락 보내주세요”

2004년 발생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신상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자 사적 제재를 둘러싼 논란에 불이 붙고 있다.

대중의 공분을 끌어내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정의구현 고맙다’ ‘응원한다’ 등 통쾌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영상을 올린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의 댓글창은 밀양시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도 폭로해달라는 제보자들의 글로 넘쳐난다. 법과 제도가 하지 못한 응징을 바라는 대중의 호응이 이런 유튜버들이 활동할 공간을 열어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해악이 매우 크다”... ‘디지털 교도소’ 실형 선고
사인 간의 단죄는 엄연히 처벌 대상이다. 성범죄자 등 강력범죄 피의자들의 신상을 공개해 재판에 넘겨진 ‘디지털 교도소’가 대표적이다. 디지털 교도소는 사적 응징에 대한 지지를 얻기도 했지만, 결백한 사람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기도 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으로 구속기소된 운영자는 혐의가 전부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폭로 대상이 된 일부는 협박 전화 등에 시달렸고, 무고를 주장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법원도 이러한 점을 언급하며 운영자를 강하게 질타했다. 특히 재판부는 사실 검증이 제대로 안 된 정보를 함부로 공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폐해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밀양 사건에서도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엉뚱한 인물이 지목돼 ‘마녀사냥’을 당했다. 확인되지 않은 제보를 그대로 사실인 것처럼 내보내는 데서 비롯되는 부작용이다.

1심을 맡은 대구지방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의적인 정의 관념에 기대 사실 내지 허위 사실의 글을 게시하고,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공개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범행은 그 특성상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고 전파 범위도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원상회복을 할 방법도 마땅히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사실상 반론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의 가해자로 낙인찍히거나 저지른 범죄 이상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며 “인격권과 사생활의 극심한 침해를 입게 된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한 해악이 매우 크다”고 질책했다.

“허위라도 방송 나가면 사실” 돈벌이로 악용
정의를 빙자한 사적 이익 추구도 적지 않다. 범죄자들에게 접근한 뒤 사생활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거액을 뜯어낸 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 엄 모씨가 지난달 공갈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도 있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엄 씨는 범죄자들의 불법행위를 제보받아 사실 검증 없이 유튜브로 개인정보와 행적을 공개했다.

그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의 지인 A씨에게 돈을 갈취하며 “너희 중에 한 명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다. 5억원을 가지고 오면 폭로 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여자친구와 가족들이 곤경에 처하게 될까 두려워 현금 3억원을 건넸다. 엄 씨는 유흥업소 종사자를 상대로 대부업을 하던 B씨와 해외선물 투자자 C씨 등도 협박해 1억여원을 빼앗았다.

엄 씨는 “허위라고 하더라도 방송에 나가면 사실이 되는 것”이라며 폭로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해선 무신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검찰은 “엄 씨가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공연하게 허위 사실을 드러냈다”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사진 출처=배드파더스 홈페이지]
공익 앞세운 ‘신상털기’도 불법
공익적 성격이 분명하더라도 사적 제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해 부모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배드 파더스’ 운영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결이 지난 1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사인 간 금전채권 문제를 넘어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며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심각성을 공론화하고 제도개선 등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법률상 허용된 민형사상 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사적 제재 수단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수단과 방법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해 피해자들의 인격권 내지 명예가 과도하게 침해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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