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서울월드컵경기장 공연, 상상 초월했다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2024. 6. 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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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보호 위해 운동장 비우고도 회당 4만7000명 이상 관객몰이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마침내 임영웅의 스타디움 공연이 최근 펼쳐졌다. '마침내'라고 한 것은 임영웅에게 매우 이례적으로 대형 공연 요청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보통 어떤 가수의 공연은 그 가수 팬들만의 관심사다. 일반인들은 누가 어느 장소에서 공연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영웅에겐 이례적으로 공연 규모를 키우라는 요청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로 인해 '주제 파악'이라는 말의 새 용법이 일반화됐을 정도다. 팬카페가 아닌 어느 일반 커뮤니티에서 이용자들이 임영웅에게 '주제 파악 좀 하라'고 촉구한 것이 그 시초였다. 임영웅이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인데 그러한 자신의 위상을 모르고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 고척돔 같은 작은(?) 곳에서만 공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척돔은 한류 아이돌들한테도 꿈의 공연장으로 꼽히는 곳인데 그런 곳조차 임영웅에겐 '간장종지'에 불과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임영웅 공연 예매가 시작되면 수백만 트레픽이 몰리고 동시 대기자 수가 수십만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발 좀 자신의 '주제'에 걸맞은 초대형 공연을 해달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그때부터 주제 파악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해, 지금은 연예인이 자신이 대스타라는 걸 자각하지 못할 때 쓰는 일반적 단어가 됐다. 

가수 임영웅이 5월 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물고기뮤직 제공

하얀 천으로 뒤덮인 운동장 

이렇게 주제 파악이라는 우리말에 새 의미를 추가할 정도로 임영웅의 초대형 공연을 대중이 열망해 왔기 때문에, 이번 스타디움 공연이 '마침내' 펼쳐졌다고 한 것이다. 대중의 열망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하필 그 순간에 서울 스타디움 공연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은 수리에 들어갔고,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대중음악 공연 대관을 아예 안 했기 때문이다. 명색이 한류 대국을 표방하는 나라에서 서울 초대형 공연을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우려가 나왔고 그러자 서울 월드컵경기장 측에서 임영웅 공연 대관에 나섰다. 

지난해 4월에 임영웅이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프로축구 경기에서 시축과 축하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K리그 역대 유료 관중 기록이 깨졌고, 코로나19 이후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고 관중 기록을 세웠다. 당시 임영웅이 보인 잔디 보호 등의 모범적인 모습과 팬들의 모범적 관람 태도도 크게 찬사를 받았다. 그런 영향으로 서울 월드컵경기장이 대중음악 공연 대관을 재개하면서 임영웅을 첫 번째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후 세븐틴, 아이유 등의 공연도 대관이 성사됐다. 이렇게 잇따라 공연 대관이 이뤄지자 곧바로 잔디 훼손 우려가 제기됐다. 그동안 서울 월드컵경기장이 공연 대관을 꺼린 이유가 바로 잔디 훼손 문제 때문이었다. 이곳은 축구경기장이기 때문에 잔디 보호가 대중음악 공연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잼버리 공연이 급하게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지면서 잔디가 훼손됐다는 비난이 폭주한 바 있다. 그러던 차에 대중음악 공연 대관이 연이어 발표되자 우려가 극에 달한 것이다. 

그런 우려 속에서 임영웅 공연의 좌석 배치도가 발표됐는데 여기서 상상을 초월하는 임영웅의 선택이 공개됐다. 그냥 '운동장을 조심히 쓰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운동장을 비운다는 것이다. 영리를 위한 개인 공연이다. 스타디움 공연에서 운동장은 VIP 표를 팔 수 있는 1순위 매출원이다. 또 운동장에 관객이 가득 들어차 열기가 발산돼야 분위기가 살면서 공연을 성공시킬 수 있다. 그 운동장을 아예 비우겠다고 하니 모두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 당일이 되자 사람들은 더욱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펼쳐진 광경이, 막연히 좌석 배치도 이미지를 봤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준 것이다. 거대한 운동장에 정말로 좌석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운동장 전체를 아예 하얀 천으로 덮어버렸다는 점이다. 그 천이 잔디를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진심을 웅변했다. '야 정말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더욱 상상을 초월한 것은 무대 설치였다. 보통은 사전에 무대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리허설도 한다. 설치한 무대는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에야 철거한다. 그런데 임영웅은 이번에 운동장 중앙무대 설치와 잔디 포장 시공을 공연 직전에 했다. 관객이 입장한 가운데 그 자리에서 무대를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현장 리허설 없이 바로 공연을 시작했다. 듣도 보도 못했던 모습이다. 

조금이라도 더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운동장 안에는 오로지 중앙무대만 만들었다. 바깥에 있는 돌출무대와 중앙무대를 잇는 구조물도 없었다. 돌출무대에서 중앙무대로 갈 땐 임영웅이 땅바닥으로 내려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면서 공연했다. 

더 상상을 초월하는 건 첫날 공연을 마치고 운동장 내 설치물을 모두 철거했다는 점이다. 둘째 날 공연 직전에 관객이 입장한 상태에서 다시 설치했다. 누리꾼들은 이를 '실시간 무대 설치'라고 하며 충격에 빠졌다. 이런 극한의 노력으로 임영웅은 '잔디 훼손이 거의 없는 스타디움 공연'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앞에서 언급했듯 운동장은 VIP 좌석을 팔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다 비우면서 최소한 40억원 이상의 매출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실시간 무대 조립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공시키기 위해 사전에 연습을 치열하게 했을 것이다. 그것도 모두 비용이다. 

가수 임영웅이 5월 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물고기뮤직 제공

혼자서 3시간 무대 꽉 채워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써가면서 운동장을 비우고 행사를 치르는 건 공적 행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표적으로 올림픽 개막식이 그렇다. 이번에 임영웅 공연에선 158명에 달하는 안무팀이 운동장에서 퍼포먼스를 했고, 바닥을 덮은 흰 천을 스크린 삼아 영상을 상영하거나 레이저로 글씨를 쏘기도 했다. 공연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올림픽 개막식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이 이렇게 공연하는 모습을 그 전엔 상상하기 어려웠고, 그러니 팬이 아닌 일반 누리꾼 사이에서도 반응이 뜨겁게 나타났다. 

운동장을 비웠음에도 회당 4만7000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만약 운동장까지 채웠으면 놀라운 관객 기록을 세웠겠지만, 4만7000명도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틀에 걸쳐 10만 명에 달하는 초대형 공연이었다. 임영웅이 슈퍼스타가 됐어도 스타디움 공연을 치르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폄하하는 시각이 있었다. 이번에 이틀 10만 공연으로 그런 시선까지 불식시키며 최고 스타의 위상을 분명히 확인시켰다.

임영웅의 역량도 최고 스타급이었다. 팀도 아닌 혼자서, 초대 손님도 없이 운동장 전체를 이동하며 3시간 가까이 열창을 이어갔다. 막간 영상 상영 시간을 빼고는 아예 쉬는 시간이 없었다. 운동장이 텅 비어 열기를 끌어올리기 어려운 조건이었는데도 존재감과 실력으로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가히 역사에 남을, 국민스타의 국민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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