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찟한 흥분 휩쓴 객석… 메소드 배우 같았던 임윤찬

백승찬 기자 2024. 6. 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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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임윤찬의 두 번째 센세이션 ‘전람회의 그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제공

지난 4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6월 시작하는 전국 투어 연주곡을 쇼팽 ‘에튀드’에서 멘델스존 ‘무언가’, 차이콥스키 ‘사계’,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으로 변경한다고 알렸을 때 의아함이 앞섰다. 임윤찬은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데카에서 쇼팽 ‘에튀드’를 갓 발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임윤찬의 쇼팽을 실연으로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 그가 무대에서 연주한 적이 없는 ‘전람회의 그림’을 들려준다는 낯섦이 뒤섞였다.

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임윤찬 전국 투어가 시작을 알렸다. 표를 구한 행운을 누린 2000여 석 만원 객석엔 흥분이 감돌았다. 그간 오케스트라 협연 등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온 임윤찬의 독주회는 1년 6개월 만이었다.

‘무언가’에선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Op. 19-1, Op. 85-4를 골랐다. 임윤찬은 별다른 휴지부 없이 마치 한 곡처럼 차이콥스키의 ‘사계’로 이어갔다. 임윤찬은 숨소리도 들릴 듯한 관객의 집중력을 최대한 이용했다. 때로 여운을 길게 끌어가며 낭만과 아련함을 더했다. 1~12월로 구성된 ‘사계’에서도 한 곡이 끝난 뒤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고 곧바로 연주했다. 9월의 격렬한 ‘사냥’ 타건이 끝난 뒤에야 잠시 숨을 골랐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2부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대담한 화성과 리듬으로 당대 그 어느 음악과도 비슷하지 않은 곡이다. 차이콥스키 음악이 우아하다면,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살았던 무소륵스키는 거칠고 변화무쌍하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륵스키가 친구였던 화가 하르트만의 추모 전시장을 거니는 모습을 표현한 표제 음악이다.

임윤찬은 곡의 뚜렷한 개성을 한층 강조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정교하게 계산해 칠하기보다는 커다란 붓으로 물감을 뿌리고 훑으며 캔버스를 채우는 화가 같았다. 임윤찬은 30여 분 시간 동안 연주에 완전히 몰입했다. 10곡 ‘닭다리 위의 오두막집’과 마지막 11곡 ‘키예프의 대문’에서 임윤찬은 발로 바닥까지 굴러가며 온몸으로 연주했다. ‘물아일체’라는 흔한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피아노 현이 끊어지거나 임윤찬이 지쳐 쓰러질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연기로 치면 배역에 몰입해 때로 주변 사람을 섬찟하게 하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 같은 메소드 배우였다.

곡이 끝나고 여운이 사라지자 임윤찬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벌떡 일어나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무대 뒤로 달리듯 나가버렸다. 역시 정신을 차린 만원 관객은 가청 범위를 시험하는 박수와 함성으로 임윤찬을 불러냈다. 임윤찬이 한 곡만 더하겠다는 뜻으로 손가락 하나를 펴고 두 번째 앙코르를 하자, 관객은 거의 비명을 질렀다.

‘전람회의 그림’은 라벨이 편곡한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더 유명하다. 임윤찬은 피아노 한 대로 수십 명 오케스트라 이상의 효과를 냈다. 임윤찬의 첫 번째 센세이션은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을 안겨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이날 ‘전람회의 그림’ 연주는 두 번째 센세이션이라 할만했다. 임윤찬은 이로써 자신에게 19~20세기 러시아 곡을 해석하는데 비범한 재능이 있으며, 프로그램 변경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동시에 보여줬다. 임윤찬의 리사이틀은 천안, 대구, 통영, 부천, 광주를 거쳐 2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마무리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를 마친 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제공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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