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김칫국 야당은 어깃장…세계 6위 나라의 동해유전 촌극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6. 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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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미국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 대표가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을 제쳤다는 소식은 하루짜리 뉴스로 지나갔다.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o.1)’의 시대, ‘극일’이 국시와도 같았던 시절을 살았던 세대로서 내가 느낀 감회는 그 기사 분량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축구도 아니고 1인당 소득에서 일본을 앞섰다는 소식을 이토록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세대와 그들이 주역이 된 대한민국은 참 멋있다.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가운데 한국보다 1인당 GNI가 앞선 나라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5개국밖에 없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30-50’클럽 자체가 이번에 우리보다 순위에서 밀린 일본까지 합쳐 7개국뿐이다.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가지려면 인구가 5000만명은 되어야 한다. 인구가 되면서 개인 생활 수준도 선진국인 나라는 이처럼 희소하다. 이들 7개국은 선망받는 나라다. 중국, 러시아는 강대국이지만 선망받지는 못한다.

30-50클럽 중에서 자원 부국인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산업강국이 된 데는 석탄 매장량이 일조했지만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석유생산량 마저 세계 1위인 미국은 확실히 부러운 나라다. 그러나 누가 미국의 위대함을 석유에서 찾는가. 그들은 다만 ‘석유조차’ 많을 뿐이다. 미국의 힘은 엔비디아 같은 초일류 기업, 이런 기업들을 계속 미국에서 나오게 만드는 기술과 교육, 세계 3위의 인구와 여전히 건강한 인구구조에서 나온다.

영국은 북해 브렌트 유전으로 한때 세계 8위 산유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에서 나오는 세금이 전체 세수의 8%를 차지하며 마거릿 대처 행정부의 감세정책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간 얘기다. 인구혁명(맬서스의 한계를 뛰어넘은 인구폭발)과 산업혁명의 결부가 대영제국을 만든 것이지 석유나 석탄이 영국 경쟁력의 본질이었던 시절은 없었다. 북해 유전이 없었어도 영국은 지금 저 위치에 있을 것이다. 30-50 클럽중 자원으로 이 반열에 오른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교육과 인구, 잘 구축된 시스템이 경쟁력의 본질이다.

영일만에 최대 140억 배럴 규모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윤석열 대통령 브리핑은 나를 놀라게 했다. 확률은 20%인데 그 방면에선 ‘매우 높은’ 가능성에 해당한다고 한다. ‘저게 대통령이 브리핑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항 앞바다에서 기름이 솟구치기 시작했다면 모를까, 시추공 다섯개를 뚫자고 제안하기 위해 대통령이 나선다는 말인가.

나는 정부가 하는 일은 될 수 있으면 존중하자는 쪽이다. 그들이 얼렁뚱땅 일할 때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의 무능보다 발목잡기로 인한 폐해가 훨씬 큰 나라이므로 큰 방향이 옳다면 디테일이 다소 서툴러도 참아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영일만 유전개발의 경우 뜨악하다. 이것이 국민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

영일만에 석유와 가스가 노다지로 묻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140억 배럴이 사실이라면 로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기름을 팔아 사회복지에 쓴다면 출산율을 회복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국민연금 독립계정으로 적립시키면 모수개혁 따위는 한 100년쯤 잊고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공상은 행복하다. 그러나 그 기름이 우리를 위대한 나라로 만들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니지 않는가.

어쨌든 기름이 나온다면 반길 일이다. 로또 당첨금이 불러올 불운이 두려워 당첨권을 불태우는 바보는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일단 당첨부터 되고 나서 파티를 하든, 걱정을 하든 해야 한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왜 대통령이 나서서 사행 심리를 자극하는가 하는 것이다. 최대 20% 확률이라는 거 아닌가. 로또 당첨 확률에 비하면 천문학적으로 높다. 그래도 안 될 가능성이 4배 더 크다. 조용히 시추를 진행하든가, 보안이 문제 될 것 같으면 산업부 차원에서 ‘석유개발 사업 분야에서 이 정도 확률이라면 투자를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삼성전자 시총 5배’ 어쩌고 호들갑 떨게 아니라.

동해유전 이슈가 터진 후 더불어민주당은 지금까지 안 하던 행태를 보이고 있다. 1개당 1000억원짜리 시추공을 5개 뚫어야 한다는 정부 설명에 민주당은 “최소 1조2000억원은 들 것”이라고 예산 낭비를 걱정하고 있다. 민주당이 나라 살림살이 걱정하는 것을 다 본다. 특히 그 단위가 100조도 10조도 아닌 1조라는 게 놀랍다.

올해 한국석유공사 예산 중 유전개발 사업에 할당된 예산이 2조3900억원이다. 1조2000억원은 이 예산의 50%에 해당하는 돈이니 많다면 많을 수도 있겠다. 석유공사는 2009년 석유가스 매장량 1.8억 배럴 캐나다 하베스트 광구를 4조6000억원 주고 인수했다. 2010년에는 영국 북해에 9000만 배럴 유전을 보유한 ‘다나(Dana)’를 3조4400억원 들여 적대적 M&A했다. 이명박 정부 때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쓰인 돈은 어림잡아 40조~5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에는 성공한 투자도 있고 완전히 쪽박으로 끝난 사업도 있다. 원래 자원개발 사업이라는 것이 모 아니면 도다.

자원개발은 안보에 직결되므로 쪽박이 두렵다고 안 할 수 없다. 그런데 다른 데도 아니고 포항 앞바다가 아주 유망한 후보지라고 한다. 그러면 시추공 5~10개 정도는 뚫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걸 안 하면 바보, 정부는 배임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1조2000억원은 물론 큰돈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경부고속도로 뚫자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급식비 아껴서 그 돈 대자는 것도 아니다. 왜들 오버인가. 국민 1인당 25만원씩 13조원을 풀자고 주장하는 당에서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해양석유개발 사업이라는 것이 가름이 안 나오면 완전히 꽝 되는 구조도 아니다. 해양플랜트, 부유식 석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파이프라인 등 관련 산업이 호황을 맞는다. 우리 기업들이 잘하는 분야이고 우리 앞바다에서 벌이는 사업이니 낙수효과는 특히 클 것이다.

영일만 석유가 없어도 우리는 세계 6위 국가다. 지금껏 해 온 방식대로 잘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형 국가가 되는 것은 팔자에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디서 가져오든 석유는 필요하고 우리 앞바다에서 나온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그런 행운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 행운이 가시권에 들어오기도 전에 내일 당장 기름이 쏟아질 것처럼 기분부터 낸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 그 김칫국 때문에 될 일도 안 되게 생겼다. 9000만 배럴짜리 해외 유전을 3조4400억원 주고 사 오는 판에 140억 배럴 가능성이 있다는 앞바다 유전 탐사에 딴지 놓는 야당도 정상적이지는 않다. 나라는 세계 6위권, 일본도 앞질렀다는데 정치 수준은 참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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