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없는 세계” 외치는 오키나와, ‘대만’ 긴장고조에…
오키나와 평화운동
류큐국에서 일제 병합-미군 통치
일본 영토 0.6%에 주일미군 70%
매년 5월 기지 주변서 ‘평화행진’
“군비증강 저지, 평화헌법 수호”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죠.” 늦은 밤 함께 술을 들이켜던 일본인 활동가가 말했다. 그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싫어 오키나와로 이주해 십수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어떤 이들에게 오키나와는 일본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오키나와는 일본의 43개 현 중 하나이고, 절반 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 1년 전 메이세이대학의 구마모토 히로유키 교수가 오키나와현민 1053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26%는 스스로를 일본인이 아닌 오키나와인이라고 답했다. 이런 비중은 나이가 많을수록 높아진다.
미군기지 사라질 줄 알았는데…
2차 대전 직후 오키나와는 미군정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언어와 문화가 상이한 독립국가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1879년 ‘류큐 처분’에 의해 일본에 완전히 복속됐다. 하지만 오키나와에서의 식민주의 통치는 일본으로의 완전한 동화로 귀결되지 않았다. 20세기 초부터 활발한 사회운동이 펼쳐졌고, 1940년 일본 정부가 류큐어 사용을 금지하고 동화 정책을 펼치자 이에 맞선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오키나와현’으로 분류되는 류큐제도는 1972년 5월 미군정의 27년 통치 뒤 일본으로 ‘복귀’했다. 오키나와 전역에 설치돼 있는 미군 기지를 철거하고,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오키나와 민중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낳은 성취였다. 당시 오키나와의 많은 지식인과 민중들은 미군정의 식민 통치를 받던 오키나와가 ‘평화헌법’이 있는 일본 영토가 되면 미군기지가 남아 있을 명분이 사라지리라 여겼다.
매년 1천여건의 미군 범죄 사건이 발생하던 1960년대, 일본과 오키나와에서는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하는 반전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오키나와 민중의 평화를 향한 열망은 1972년 복귀로 이어졌지만, 오키나와에서 평화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미군기지는 존속하고 있다. 오키나와현의 면적은 일본 전체의 0.6%에 불과하지만, 이곳에는 전체 주일미군의 70.3%가 주둔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여론조사에서 젊은 층(18~34살)의 55%는 오키나와가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나 군사기지 문제 등에서 불평등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보면서도 “미군기지 반대 운동이 무의미하다”고 답했다. 이런 체념은 반세기가 넘는 반대 운동에도 미국·일본 정부가 꿈쩍도 않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오키나와 평화행진은 1972년 5월15일 오키나와가 미군의 직할지에서 일본으로 복귀한 시기에 맞추어 거의 매년 열리고 있다. 올해 5월18일에도 오키나와 기노완시 후텐마 공군기지 주변에서는 ‘제47회 평화행진’이 열렸다. 하루 전 오키나와에 입국한 나는 한국의 기지평화네트워크 활동가들을 따라 나하 시내 류큐신보홀에서 열린 평화행진 결단식에 참석했다. 기지평화네트워크는 오랜 시간 오키나와 평화운동과 교류해왔는데, 매년 평화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적지 않은 이들이 오키나와로 향했고, 오키나와 활동가들 역시 평택 대추리나 화성 매향리, 제주 등을 찾아왔다고 한다. 결단식에서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 역사와 이번 행진의 정당성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뒤이어 이번 행진을 기획한 각 조직 대표들이 포부를 밝혔다. 한국의 기지평화네트워크 소속 활동가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아시아에서 미군기지는 필요 없다”, “바다를 넘어 평화의 손을 잡자”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연대의 인사를 건넸다.
이튿날 아침 9시 기노완시청 앞에서 2300여명의 참가자들은 최근 주민들의 항의 행동으로 오키나와 북부 우루마시 자위대 훈련장 건설을 철회시킨 것을 상기하면서 “더 큰 운동으로 나라를 바꾸자!”고 결의를 다졌다. 일본 각지에서 모인 평범한 노동자들과 시민, 학생, 평화를 지지하는 정치인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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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해협 전쟁 나면 오키나와도
평화행진이 끝난 뒤 기노완시립운동장에서는 ‘평화와 생활을 지키는 현민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함께한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현 지사는 “광대한 미군기지의 존재가 오키나와 진흥의 장해가 되고 있다”며, 최근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고 있는 동아시아 정세를 근거로 “평화를 희구하는 오키나와의 마음을 세계에 발신하자”고 호소했다. 대회 막바지에는 한국에서 온 27명의 참가자들이 무대 앞에 나섰는데, 기지평화네트워크를 대표해 신재욱 활동가가 “역사를 계승하고 함께 평화의 길을 걸어가자”고 호소했다. 현민대회 선언문에서 참가자들은 “지난 몇년 난세이제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군비 증강 추세를 저지하고, 현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지가 없는 오키나와, 전쟁 없는 세계의 실현”을 다짐했다. 또 일본을 ‘전쟁국가’로 변모시키려는 기시다 후미오 정권의 폭주를 중단시키고, 개헌을 저지하기 위해 평화헌법을 지키자고 결의했다.
오키나와 곳곳에는 전쟁과 학살의 흔적, 평화의 가치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들이 있다. 우리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치비치리 동굴과 시무쿠 동굴,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넋을 기리는 ‘한의 비’, 최남단 오키나와평화공원 등을 차례로 방문했는데, 죽은 이들의 이름이 적힌 거대한 추모비 앞에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이곳에 새겨진 조선인들의 이름은 약 500명 정도였는데, 실제로는 최소 2800명, 최대 1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4월10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오커스(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협력, 미·영·일 군사훈련, 미·일·필리핀 안보협력 등 역내 동맹·우방국들을 규합해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주일미군 사령부를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사한 지위로 개편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두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자위대의 적기지 공격 능력 확보와 통합작전사령부 창설에 대한 지지 역시 재차 밝혔다. 일련의 조치는 오키나와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를 극심한 군사적 긴장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대만해협의 긴장 고조로 전쟁이 발생하면 오키나와는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동아시아 각국은 군비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기 확산은 평화뿐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에도 심각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고, 사회복지 예산을 축소시켜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도 악영향을 준다. 반면 전쟁이란 일어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쉽지 않고, 한번 벌어지면 너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를 막기 위한 행동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동아시아 공동의 평화운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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