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장 반복하는 게 올바른 언론일까 [미디어 리터러시]

이상민 2024. 6. 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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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나랏빚 늘어나는 속도가 비기축통화국 중 2위'라고 한다.

기사를 보니 "IMF는 지난 10년간 한국의 정부부채 증가 폭이 비기축통화국 11개국 중 둘째를 기록하는 등 한국의 나랏빚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했다"라고 한다.

비기축통화국 중 2위라는 기사의 주장도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기사는 달러·유로·엔화 등 8대 준비 통화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를 비기축통화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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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언론'을 향한 갈구는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매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곧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 언론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조선일보> 5월20일자 B02면 보도. ⓒ조선일보 갈무리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나랏빚 늘어나는 속도가 비기축통화국 중 2위’라고 한다. 기사를 보니 “IMF는 지난 10년간 한국의 정부부채 증가 폭이 비기축통화국 11개국 중 둘째를 기록하는 등 한국의 나랏빚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했다”라고 한다. 그러나 IMF(국제통화기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IMF가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IMF의 보고서를 특정 언론이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다. 기자 본인의 주장을 IMF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기축통화국 중 2위라는 기사의 주장도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기사는 달러·유로·엔화 등 8대 준비 통화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를 비기축통화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로를 쓰는 모든 국가를 기축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기축통화국이란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국제적 통용성이 있고 통화주권이 있어야 기축통화다. 그런데 유럽의 어느 나라도 환율이나 통화량을 조정할 수 있는 통화주권이 없다. 그리스가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통해서 재정위기 또는 경제위기를 대응할 수 없다. 그래서 달러를 쓰는 미국이 기축통화국이란 것은 확실하지만 8대 준비통화국 전체를 기축통화국이라고 칭하는 것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기축통화국은 나랏빚이 많아도 자국 돈을 찍어 갚을 수 있다”라는 표현은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기축통화국이라 하더라도 그냥 돈을 찍어서 갚을 수는 없다. 미국이 그냥 돈을 찍어서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상환할 수는 없다.

달러를 쓰는 미국, 유로화를 쓰는 유럽 국가 그리고 엔화를 쓰는 일본 등을 기축통화국이라고 보아 비교 대상에서 제외하면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선진국이 빠진다.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 유로화를 쓰지 않는 북유럽 국가와 싱가포르·홍콩·안도라 등 소규모 도시 국가 정도만 남는다. 북유럽처럼 세금을 많이 걷어서 국가부채 규모가 적은 나라와 싱가포르 같은 소규모 도시 국가, 그리고 한국의 재정을 나란히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정부 주장 그대로 반복, 올바른 언론 아니다

기사 중에서 “현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매년 20조원대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라는 표현은 해설이 좀 필요하다. 정부가 매년 20조원대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했다고 홍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지출 구조조정 리스트는 공개하지 않는다. 어떤 예산사업을 얼마나 지출 구조조정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그냥 ‘2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을 했다’라고 주장만 한다. 그러나 검증 가능성 없이 믿음만 강요하는 정부의 주장을 신뢰해야 할까. 사실 지출 구조조정이라는 말의 정의도 모호하다. 종료 사업과 감액 사업 중 어떤 것을 선택적으로 지출 구조조정이라고 하는지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전 정부의 확장재정 영향으로 정부부채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는 틀린 표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빚 물려받은 소년가장 같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 국가부채 증가는 전 정부의 확장재정 책임이 아니다. 세수 감소의 영향이 더 크다. 현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손실보상금 25조원을 포함한 62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 추경을 편성했다. 2022년 사상 최대 관리재정수지 117조원 적자는 전 정부 책임만은 아닌 것이다. 2023년 87조원 적자에 이어 올해 관리재정수지 목표도 ‘-92조원’이다. 세수결손 등으로 목표가 달성되지 못하면 이보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올바른 언론이 아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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