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은 뉴진스님이 했으니 우린 연차파업”…억대 연봉인데 투잡, 쓰리잡 뛴다는 삼성 노조 [방영덕의 디테일]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byd@mk.co.kr) 2024. 6. 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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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오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집회 모습. [사진= 방영덕 기자]
노조 집회가 꼭 삭발 투쟁을 하는 등 심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 핫하다는 ‘뉴진스님’이 나와 디제잉을 하는 와중에 노조원들이 ‘노동 존중’을 외치는 집회가 영 낯설다는 노동계 목소리가 많습니다.

1969년 창사 이래 최초로 파업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파업도 단체로 일손을 놓고 공장을 멈추게 하는 ‘총파업’과는 거리가 멉니다. 현충일 다음날인 6월 7일 연차를 쓰라는 게 1차 지침입니다.

곧바로 총파업에 들어가기보단 연차 소진 등으로 사측을 단계적으로 압박한다는 게 노조의 방침인데요.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함을 야기하는 삼성 노조 얘기입니다.

55년만에 파업하는 삼성 노조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파업 선언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사진출처 = 연합뉴스]
삼성 창립 55년만에 처음 파업을 선언한 곳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입니다.

전삼노는 삼성전자 내 5개 노조 중 최대로 소속 노조원 수는 2만8000여명입니다. 삼성전자 전체 직원인 12만여명의 약 20%를 차지합니다.

특히 지난해 성과급을 받지 못한 삼성전자 DS(반도체 사업부) 부문 직원이 절대다수로 파악됩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직원 대표로 구성된 노사협의회와 평균 임금인상률 5.1%에 합의했습니다만, 전삼노는 ‘6.5% 인상’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성과급 지급기준의 투명성을 확보하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습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EVA(Economic Value Added·경제적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그러니까 세후 영업이익에서 이자 등 자본 비용을 제하고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는데요.

이와관련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LG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영업이익을 성과급 지급 기준으로 한다”며 “영업이익이라는 투명한 기준이 정해지면 이러한 직원들의 불만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더 높은 임금 인상과 유급휴가 1일 추가 등을 요구하는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중지 결정, 조합원 찬반투표 등을 거쳐 쟁의권을 확보했습니다.

연차 파업이 반도체 생산에 미칠 영향은
지난달 24일 오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집회 모습. [사진= 방영덕 기자]
전삼노가 집단 휴무를 신청해 연차 파업에 돌입하는 7일은 원래 6일 현충일과 8일 토요일 사이에 낀 샌드위치데이입니다.

회사측에서도 이미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장려한 패밀리데이여서 많은 직원들이 쉴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예고된 휴무인만큼 단기적으로 반도체 생산 등에서 차질을 빚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전삼노의 7일 하루 단체행동과 관련 “이번 파업은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출하량 부족 현상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교대근무 체제인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통상 전체의 30% 이상이 쉬게 되면 생산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단 연차 사용과 같은 집단 행동이 정상적인 회사 업무를 저해할 수 있을 만큼 파업과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무엇보다 전삼노는 이번 집단 연차 사용이 1차 지침이고, 2차, 3차도 있다고 예고를 했습니다. 더 이상 삼성도 ‘노조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처지가 됐습니다.

노조 이기주의 퍼질까...점점 커지는 우려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파업 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산업계에서는 특히 제조업 전반에서 엿볼 수 있는 ‘노조 이기주의’가 삼성전자에 옮겨붙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현대차 노조의 경우 올해는 임금협상만 예정된 해인데, 노조가 임금 외 별도 내용도 사측에 요구하면서 협의에 진통이 예상됩니다.

지난 4일 사측과 임금협상 5차 교섭을 진행한 현대차 노조는 본급 15만 9000원 인상,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매주 금요일 4시간 근무제 도입 등을 요구했습니다.

포스코 노조는 내달 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할 예정입니다. 포스코 노조는 통상임금에 정비기술장려금, 상주업무몰입장려금, 교대업무몰입장려금, 자기설계지원금, 업적금(전 상여금)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HD현대중공업 노사의 경우 노조 전임자 근로시간 면제 제도를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됩니다.

재계 1위인 삼성전자는 이미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만 약 15조원 적자를 냈습니다.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입니다.

업황도 안 좋았지만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서 경쟁사에 밀린 영향이 크다는 분석입니다.

이로 인해 임원들은 주6일 근무를 하는데다 최근엔 반도체 부문 최고경영자(CEO)까지 원포인트 인사로 전격 교체했습니다. 회사는 초비상 상황입니다만 전삼노는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전삼노 측은 지난달 말 파업을 선언하며 “성과급을 받지 못해 임금이 30% 삭감됐고, 그래서 삼성전자 직원들 중 투잡, 쓰리잡을 하는 분들이 많이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임금(등기이사 제외)은 1억2000만원이었습니다. 같은해 국세청 조사결과 우리나라 직장인 1인당 평균 연봉은 4200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억대 연봉자들의 이같은 얘기에 외부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노동존중을 안해주는 사측과의 대화는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내외부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선을 한번쯤은 짚어보고, 그 간극을 줄여나가고자 할 때 노조의 동력은 더 확보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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