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사랑에 빠진 건축학 노교수…석사학위 따고 새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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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나이 70세.
이 교수는 1977년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 1989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년 전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그는 지난달 텍사스 A&M 주립대에서 수학과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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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하나에 이틀씩 고민…사람들이 수학의 재미 알았으면"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만 나이 70세. 백발이 성성한 남성이 가방에서 513쪽짜리 영어로 된 복소해석학 책을 꺼내 펼쳐 보였다.
"이 원이 어떤 식을 통과하면 이렇게 돼요. 왜 그럴까. 모든 걸 무궁무진하게 적용할 수 있어요. 재밌잖아요."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페이지 속 도식을 가리키며 얘기를 꺼낸 이 남성은 이한선(70)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명예교수다.
이 교수는 1977년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 1989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4년간 영남대 건축공학과에서, 1996년부터는 20년 넘게 고려대에서 건축공학을 가르치고 2019년 정년퇴임했다.
정년퇴임 후에도 학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 열정의 대상은 자신의 전공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수학이었다.
2년 전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그는 지난달 텍사스 A&M 주립대에서 수학과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교수는 "친구들은 박사에서 석사로 강등됐다고 놀리지만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기쁘다"며 "이제 수학에 대해서는 어디서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타지 생활은 적적했고, 논문 발표를 두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는 풀이 방향을 바꿔야 했다.
난관을 이겨내고 석사 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건 수학이라는 학문이 주는 재미 덕분이었다고 이 교수는 돌아봤다.
"일어나서 밥 먹고 공부하는 게 거의 하루의 전부였어요. 문제를 파악하고 나면 어떻게 풀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하는 거죠. 보통 하나를 가지고 이틀 정도 고민했는데 제힘으로 풀고 나면 마치 하루 종일 들여다보던 낚싯대의 찌가 흔들리는 것처럼 즐거워요.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죠."
학업에서 나이가 문제 되지 않는 미국 특유의 문화 덕도 봤다. 이 교수는 학과장 교수의 조교로 일하며 번 돈으로 미국의 비싼 집세를 해결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머리가 허옇고 얼굴에 주름도 있는 사람인데도 (젊은이들과) 똑같이 대해줬다. 나 또한 내 나이, 학위, 교수라는 직업을 싹 잊고 '한'(Han)이라는 이름으로 교수가 지시한 일들을 성실히 했다"며 웃었다.
수학 이야기에는 유독 눈동자를 반짝이며 열변을 토하던 이 교수는 국내에서 수학이 입시경쟁의 도구로 전락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에서는 수학이 하나의 경쟁 도구잖아요. 성적을 매기고 서열화하니까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옛날에는 수학이 너무 어려웠어요.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오던 과목이었죠.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재미를 느꼈고 지금은 굉장히 재밌는 학문이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는 "문제를 이해하고 푸는 과정 자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아마추어 수학가'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계속해서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평생을 공부해 왔지만 배움이 즐겁다"며 "공부는 내 취미"라고도 말했다.
다만 한국 사회가 은퇴한 노교수에게 박사 과정의 기회를 줄지 의문이라고 걱정을 내비쳤다.
"(교수가) 자기 나이의 두 배 가까운 사람을 학생으로 받아줄까 싶어요. 우리 사회도 나이 든 사람에게 좀 더 너그럽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외모도 늙었고 눈도 침침하지만, 안은 팔팔하거든요."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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