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에 빠진 앤디 워홀의 《붉은 자화상》
(시사저널=조명계 미술시장 분석 전문가(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영국인 영화제작자인 조 사이먼은 1989년 19만5000달러에 앤디 워홀의 《붉은 자화상》(1965)을 구입했다. 철석같이 진품으로 믿었다. 구입 경로가 명쾌하고, 분명했기 때문이다. 앤디 워홀을 잘 아는 인물인 휴즈재단 이사장과 미술품 딜러인 빈센트 프레몬트가 크리스티 경매장을 통해 판매한 이후 다니엘 템플턴, 로널드 펠드먼, 조나산 오하라 등 유명한 딜러들에 의해 거래된 기록이 남아있는 깔끔한 작품이었다.
비난 대상이 된 워홀 인증위원회
미술시장이 뜨거워지면서 앤디 워홀의 작품 또한 가격이 급등했다. 이때 그는 《붉은 자화상》을 약 200만 달러에 매각해 현금을 손에 쥐고 싶었다. 매각을 위해선 '재단 인증위원회'의 공인된 인증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앤디 워홀 인증위원회가 '인증 거절'이라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당황한 사이먼은 작품에 관한 더 많은 증빙서류를 다시 제출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인증위원회는 "해당 작품이 공방 외부에서 제작됐으므로 비록 워홀의 서명이 있어도 워홀의 작품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사이먼은 진품이 위작으로 판명되는 끔찍한 결정에 휘말린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이먼은 미술계에서 무소불위의 파워를 행사하는 워홀재단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사기, 담합으로 조작해 워홀재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랬던 사이먼이 돌연 3년을 끌어온 소송을 갑자기 취하해 버렸다. 사이먼과 재단 양측이 거액의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워홀재단은 소송 비용으로만 약 7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작품 가격보다 변호사들이 돈을 더 번 셈이다. 사이먼의 또 다른 우려는 다른 데 있었다.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논란이 된 작품이 제대로 거래될지 염려해 자신감을 잃은 것이다. 오랜 논란 끝에 《붉은 자화상》은 2022년 '라슨 경매'에 출품됐지만 유찰되고 말았다.
작품도 잃고, 자금도 소진한 사이먼의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워홀재단의 전횡은 아니었을까.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앤디 워홀 인증위원회는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워홀 작품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1년에 세 차례 회동해 심사한다.
시장 가치가 아닌 진위 여부만 따지는 판단을 내린다. 감정평가에는 통상 한 달이 걸린다. 제시된 작품의 약 10~20%를 '의심되는 작품'으로 분류하고 거절 판정을 내린다. 그러나 사이먼의 사건을 계기로 2011년 10월 인증위원회는 해산되는 결과를 맞이한다.
재단의 공은 물론 있다. 워홀이 제작한 10만 점 이상의 방대한 작품을 분류하고, 이들을 인증하기 위한 '전작도록(카탈로그 리조네)'을 발행했다. 그러나 《붉은 자화상》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인증위원회의 독단적 행위는 늘 미술계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특히 인증위원회는 진위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아티스트의 '의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리히텐슈타인'의 행보 본받아야
재단이 하는 일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호하고, 그 가치를 향상시키는 업무다. 작품의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증위원회를 둔다. 재단이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전작도록 발행이다. 이 작업은 상당 기간 연구가 필요하며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한다. 전작도록에 없는 작품은 위작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인증위원회 운영이 물론 쉽지만은 않다. 워홀재단과 같은 잡음이 발생하고, 송사에 시달리게 된다.
인증위원회에는 사망한 아티스트 가족 구성원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 역시 아티스트의 작품을 잘 모르며, 미술계 표준 관행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인증위원회는 고인이 된 바스키아의 아버지인 제라르 바스키아가 위원장을 맡았다. 제라르는 성공한 회계사였지만, 미술계의 속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명망 있는 바스키아 전문가들로 운영했다. 하지만 정치인과의 결탁, 위작 판매 연루 등으로 논란을 자초해 결국 인증위원회는 폐쇄됐다.
바스키아 인증위원회 폐쇄는 오늘날 수많은 바스키아 위작이 넘쳐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서울에서도 돌아다니는 수십 점의 바스키아 위작을 보게 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부유한 사람들이 앤디 워홀 작품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또 다른 존재감을 갖게 한다. 자본주의의 꽃이다. 하지만 의혹의 작품들이 진작인지, 위작인지를 구분해 주는 '요술방망이'가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다.
진작인지, 위작인지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첫째, 소장 기록이다. 둘째는 전작도록 수록 여부이고, 마지막 보조 수단은 미술품 감정인에 의한 판단이다. 미술품 감정인도 사람이다. 실수도 하고 조작도 한다. 결국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의 눈매와 지식에 의해 경매를 포함한 세컨더리 마켓에서 공개적으로 거래돼 인정받는 작품이어야 한다.
아티스트들은 가장 훌륭한 재단 활동을 남긴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교과서로 받아들여야 한다. 생전에 전속 딜러였던 레오 카스텔리가 그의 작품들을 철저하게 문서화한 덕에 위작 논란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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