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탄핵사유, 채상병 사건보다 더 큰 게 있다”
[주간경향] “개인적인 소회를 말씀드리자면 운명을 느낀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의 말이다.
“제가 올해 환갑이다. 여러분들이 거리에 나가 ‘투쟁’하고 있을 때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이런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 교련에 대한 반발로 전쟁과 평화 문제에 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국제정치를 공부하면서 한반도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한·미관계를 공부하면서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물음표가 있어 일본을 보다가 한·일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지금도 하고 있다.”
지난 6월 3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8번지. ‘윤보선 고택’에 1964년 벌어진 ‘6·3 학생운동’ 참가자들과 학자들이 모였다. 60년 전 사건을 기념하는 학술회의 자리였다.
1870년대 지어진 윤보선 고택은 서울 북촌에 남아 있는 유일한 19세기 한옥이다. 회의 막간, 고택의 역사와 내력을 설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자신을 “6·3 학생운동의 막내”라고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6·3 학생운동이 이후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끼친 영향은 역사적으로 어마어마했다. 6·3 학생운동이 이후 박정희 정권 시기 3선 개헌 반대 운동과 민청학련, 긴급조치 9호 반대 운동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항쟁, 그리고 촛불시위까지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역사적인 흐름의 출발점이었다.”
“민주화운동의 뿌리엔 6·3 학생 데모”
이날 행사를 공동주관한 사단법인 현대사기록연구원 송철원 이사장은 1961년의 4·19와 1964년에서 1965년까지 이어지는 6·3 학생운동을 비교하는 발표를 했다.
“4·19의 시작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구 경북고 학생들의 2·28 데모로 시작해 4월 26일 이승만 하야로 끝난 약 2개월에 걸친 항쟁이었다. 반면 6·3 학생운동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들이 64년 3월 24일 연 성토대회로 시작돼 이듬해 9월 6일 서울대 상과대 학생들이 군화·최루탄·경찰봉 화형식을 거행하기까지 2년에 걸친 항쟁이었다. 둘 다 학생이 중심이 됐지만 4·19는 2월 고등학생들이 먼저 나서고 대학생들은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거리에 나온 것이 처음이었다. 후일 판단해보면 당시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귀한 존재였다. 시골에서 부모님들이 소 팔고 가산을 팔아 자식 성공을 위해 도회로 내보냈기 때문에 위축돼 있던 반면, 당시 고등학생은 마산의거 때 마산상고 학생이었던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전국적으로 나섰다.”
반면 3년 뒤의 한·일협정 반대 6·3 학생운동에서 주축은 대학생이었다. 송 이사장도 항쟁의 주역이었다. 그는 1964년 5월 20일 서울 문리대 교정에서 열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행사에서 “시체여! 너는 오래전에 이미 죽었다. (…) 넋 없는 시체여! 반민족적 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여!”로 시작하는 당시 박정희 정권이 주창하던 ‘민족적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조사(弔詞)를 낭독했다. 송 이사장은 이 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1991년부터 2016년까지 ‘일제의 한일병합의 불법성 연구’를 해온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1961년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한 ‘61학번’이다. 그는 1988년부터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리실장을 맡으면서 순종 황제 위조 서명을 발견했다. 일본 통감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병합조약 날인에 적혀 있는 순종 황제의 수결(坧:척은 순종 황제 이름)이 과거 순종 황제 서명과 다른 필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일병합은 원천무효다. 논란은 1993년 도쿄, 2001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까지 이어졌다.
“연구는 그렇다면 서명을 위조한 범인은 누굴까라는 추적까지 발전했고, 마침내 나중에 조선총독부의 통역관을 지낸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의 필체라는 것을 밝혀냈다. 1994년 일본에서 이것을 발표하자 휴식시간에 100여 명이 악수를 청했고, 신문기자 명함만 30여 매를 받았다. 나는 다음날 일본 신문들이 대서특필할 거로 알았는데, 이튿날 단 하나의 일본 매체도 이걸 보도하지 않았다. 그 사건으로 ‘이것이 일본이구나’라는 걸 배웠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한국과 일본의 저명한 현대사 연구자들이 모였다.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명예교수는 “4·19가 부정선거 등 내부 문제에 저항하는 운동이었다면 6·3 학생운동은 미국과 일본 주도의 국제관계 재편에 격렬하게 부정하는 세계사적인 큰 사건”이라며 “6·3 학생운동이 1987년까지 이어지는 국가 주도 민족주의와 대중주도 민족주의, 다른 말로 하면 근대화와 민주화라는 두 ‘국가 비전’과 두 ‘애국’이라는 대립의 시작점이었고, 그 두 가지 과제를 한 세대 만에 이루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6·3 학생운동 지도부이기도 했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6·3 학생운동의 참여자들이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냉전 구조의 의미와 작동원리를 알고 행위를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당시 이슈였던 한·일 국교 정상화라는 한·일관계의 좁은 국가 간 관계 틀을 벗어나 냉전, 더 나아가 오늘날의 탈냉전 질서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훨씬 더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은 패전 후 연합국 및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본 아시아 국가들과 평화조약 또는 국교 정상화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오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만이 전후처리가 끝나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일 수교라는 현안에 대한 일본 측 태도는 납치자 문제와 핵·미사일 문제 해결만 강조할 뿐 실행할 생각이 없는 보여주기식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일본·한국·북한이 냉철한 제휴 관계를 맺을 수 있냐에 달려 있으며, 한국 정부와 국민이 북·일의 접근, 북·일 교섭과 국교 정상화를 지지해주는 것이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더 크고 근본적인 대통령 탄핵 사유도 될 수 있어
6·3 학생운동의 2024년과 2025년 현대사적 의의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65년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대한 조약’(이하 ‘기본조약’) 제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고 돼 있는데, 그 ‘이미 무효’의 의미를 두고 한·일 정부 사이의 해석차가 현재 한·일 갈등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즉 한국 측은 이미 무효라는 것이 일제 지배 이전 병합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가 식민 통치의 불법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 비해, 일본 측은 1948년 8월 15일 한국이 정부 수립을 했을 때부터 과거에 체결한 조약들이 실효성을 상실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의 35년간의 조선 통치 기간이 불법 강점이냐, 합법 지배냐의 입장 차다.
“문제는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해석이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해법’은 ‘합법 지배’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전제로 할 때만 나올 수 있는 절충안이다. 게다가 이 해법이라는 것이 대법원판결이 확정한 일본 기업의 책임을 행정부가 나서서 면제해주겠다는 것이니 사법부의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해 헌법이 선언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법원판결의 출발점은 ‘불법 강점’이며 그 근거는 헌법에 명시돼 있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인데 이를 부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져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지금 거론되고 있는 문제들보다 더 크고 근본적인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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