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G바겐 기아 '모하비'···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Car톡]
정의선 기아 사장 시절 개발 이끌어
'정의선의 차'로 매니아층 형성하기도
도심형 SUV 뜨고 디젤 내연기관 후퇴
판매량 부진 속 연내 단종 가능성 커
첫 픽업 트럭 '타스만' 바톤 이어받아
"조선의 G바겐, 단종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최근 국내의 한 자동차 커뮤니티엔 올해 단종 예정인 기아(000270)의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모하비를 살려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2008년 첫 출시 이후 17년 간 장수하며 중년 남성들의 ‘워너비’ SUV로 자리매김했던 모하비는 역설적이게도 SUV가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대에 판매량 부진과 내연기관차 배출가스 규제 등이 맞물리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대부분 SUV가 생산단가를 낮추고 연비효율을 높이기 위해 차체 프레임을 모노코크 방식을 선택하는 가운데서도 모하비는 프레임 바디와 6기통 디젤 엔진를 고집하며 매니아층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시대의 변화까지 거스를 순 없었다.
모하비는 ‘정의선 차’로 불려왔다.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이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부임한 뒤 처음으로 개발을 진두지휘한 차량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당시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더도 합류해 모하비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직선이 살아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모하비는 2008년 1월 판매를 시작해 지금까지 17년 간 장수해 온 모델이다. 정 회장에겐 추억이 담겨 있는 차량이기도 하다. 서울 압구정동 기아차 국내영업본부 사옥에서 열렸던 모하비 신차 발표회에 모친인 고(故) 이정화 여사가 직접 참석했기 때문이다. 생전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 여사는 당시 실적 부진에 시달렸던 기아차 때문에 마음 고생했던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신차 출시 행사장을 찾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모하비는 탄생부터 특별했다.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상 유일한 8기통 엔진(현재는 6기통 디젤엔진)에 지금은 SUV에서 거의 볼수 없는 바디온 프레임을 장착했다. 이름도 남달랐다. ‘모하비(MOHAVE)’는 ‘고도의 기술을 갖춘 SUV 최강자(Majesty Of Hightech Active Vehicle)’라는 단어의 앞글자에서 따왔다. 모하비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사막이자 현대차그룹의 주행 시험장이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모하비가 유명세를 탄 건 무엇보다 ‘정의선의 차’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당시 기아 사장으로 모하비의 개발을 진두지휘했을 뿐 아니라 실제 사석에서도 모하비를 즐겨 탄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 시절엔 정 회장의 한남동 자택 앞에 주차된 모하비가 심심찮게 목격되기도 했다.당시 정 회장은 출퇴근할 때 모하비를 직접 몰기도 하고, 주변에 “볼수록 마음에 드는 차” “프레임부터 다른 차여서 성능도 뛰어나다”며 모하비의 홍보대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모하비는 국내에서 대형 SUV 시장을 개척한 모델이다. 출시 10년여만인 2018년 10월엔 누적 판매량 10만대를 돌파했다. 세대변경이나 차명 변경 없이 10년간 기본 차체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달성한 기록이라 더 의미가 있다. 국내 유일의 후륜구동 기반 프레임 온 바디 타입 대형 SUV라는 특수성에 더해 국산 SUV 중 가장 배기량이 큰 3ℓ 디젤 엔진을 탑재한 점, SUV임에도 고급 내장재와 편의 장비를 다양하게 적용한 점이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결과다. 특히 중년 남성들에게 ‘워너비’ 차량으로 꼽혀왔다. 현재에도 SUV 가운데 유일한 6기통 디젤엔진 모델이며 프레임 온 바디를 쓰는 차량은 모하비가 유일하다.
하지만 모하비는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진 못했다. 한 때 대형 SUV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했지만 현재는 경쟁자들이 넘쳐난다. 오프로도 주행성능을 중시했던 소비자들의 선호도도 승차감을 바탕으로 한 도심형 SUV로 변화했다. 제네시스 GV80부터 현대차 펠리세이드·산타페·투산, 기아 카니발·쏘렌토·스포티지 등 한 집안 안에서도 다양한 SUV 모델들이 모하비의 시장을 뺏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SUV가 잘팔리는 시기에 모하비는 판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기아의 내수 판매는 쏘렌토(3만3484대)와 카니발(3만6771대), 스포티지(3만3484대), 셀토스(2만3804대) 등 SUV가 이끌고 있다. 반면 모하비의 올해 판매량은 1311대로 전년 대비 47.5% 줄었다. 지난달 판매량은 200여대 수준에 그쳤다.
업계에선 디젤 파워트레인만 남은 상황에서 기존 열성 팬층 외에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기아가 그룹의 전동화 전환을 주도적으로 맡고 있고 가솔린 내연기관 차량도 하이브리드차로 바꾸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디젤 SUV인 모하비를 적극적으로 판매하기 어려운 구조적 어려움도 있다.
현재 모하비는 기아 화성오토랜드에서 생산하고 있다. 아직까진 생산이 멈춘 것은 아니지만 연내 단종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모하비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 모델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현재로선 정해진 것이 없다. 모하비가 단종될 경우 기아의 첫 픽업트럭인 ‘타스만’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는 타스만 생산을 위해 하반기 중 화성 1공장을 멈추고 생산 라인을 대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하비의 단종 시기가 이 즈음이 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기아는 지난 4월 타스만의 이름을 공개하고 내년 출시를 예고했다. 타스만 파워트레인은 2.5ℓ 가솔린 터보와 2.2ℓ 디젤 엔진을 기본으로 사륜구동 시스템, 자동변속기 등이 조합될 것으로 보인다. 모하비처럼 바디 온 프레임 방식 차체를 기반으로 1열 시트를 적용한 싱글캡과 2열 시트까지 갖춘 더블캡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할 예정이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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