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이 취임 6개월] 과감한 개혁 몰아붙이기…가시적 성과는 '아직'

김선정 2024. 6. 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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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요법' 의존으로 실물경제 요동…기득권 반발·국민 저항 자초
여소야대 환경 속 정치력 부재로 개혁의 법적·제도적 뒷받침 '미비'
잇단 논란에도 국민지지율 50% 유지…지속적인 개혁의 동력 제공받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부에노스아이레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기업가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4.6.9. photo@yna.co.kr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오는 10일(현지시간)로 취임 6개월을 맞이한다.

극우 성향의 자유경제 신봉자인 밀레이 대통령은 하원 의원 당선 2년 만에 자신이 창당한 미니정당 대선후보로 대선에 나서 '돌풍'을 일으켰고, 작년 11월 결선 투표 끝에 56% 지지율로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상대적으로 정치 기반이 거의 없었지만 '중앙은행 폐쇄', '달러화 도입' 등 기존 정치권과 구별되는 과감하고 다소 과격한 개혁정책을 내세우고 록 콘서트 같은 퍼포먼스를 동반한 대중유세로 인기를 얻으며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는 취임 이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등 고질적인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개혁 드라이브에 나섰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치구조, 일방통행식 개혁 추진, 정부 내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기성 정치권의 반대와 반발, 고통을 떠안은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됐으며 뚜렷한 구체적인 성과는 아직 드러내지 않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한 밀레이 대통령 [온라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만성적인 경제난에 시달려온 아르헨티나를 넘겨받은 밀레이 대통령은 '100년전의 번영을 되찾겠다'며 과감하고 극단적인 경제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

밀레이는 작년 11월 당선 이후, 가격은 자유시장에 맡긴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취임 전부터 전 정권의 물가 억제 프로그램은 림보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다가 현지 화폐인 페소화의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평가절하(1달러 400페소→800페소)를 단행하면서 작년 12월 물가는 25.5%까지 폭발적으로 올랐다.

다행히 이런 충격요법 이후 물가는 올해 1월 20.6%, 2월 13.2%, 3월 11.0%, 4월 8.8%로 둔화세를 보였다.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은 5월 물가상승률은 5%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의 고공행진은 어느 정도 '잡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과로 내세울 수 없는 지경이다.

밀레이 정부 출범 이후 지난 6개월간 누적 물가상승률은 117%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일반 국민의 고통은 가중된 셈이다.

물론 전 정권처럼 물가 억제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가상승률 둔화세를 달성했다는 메리트도 있지만, 이젠 극심한 불경기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아르헨티나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일각에선 경제생산을 2020년 팬데믹 수준으로 되돌리면서 이룬 업적이라는 비난도 제기됐다.

5월 마지막 두 주 전까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활황을 보이며 금융시장은 밀레이 정권의 개혁을 극찬했으나, 실물 경제는 월급 구매력·대형마트 판매·공업생산 지수 등이 평균 -19% 하락하면서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또 밀레이 정부는 정부의 재정 흑자 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은퇴자 연금 인상을 늦추고, 각 주 정부의 이전지출을 삭감하며, 에너지 생산업체의 보조금 지급을 유예하면서 이룬 흑자이기 때문에 지속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도열한 경찰 인력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대대적인 정부의 구조조정도 성과보다 걱정이 앞서고 있다.

밀레이 정부는 중앙부처 개혁으로 비정규직 공무원 2만여명을 해고했고, 5만여명을 추가로 해고할 것이라고 최근 다시 발표했다.

불경기로 인한 경제생산 하락으로 민간 분야에서도 대대적인 해고가 이뤄지고 있고, 특히 밀레이 정부가 중단한 각종 인프라 공공사업으로 인해 건설 분야의 대량 해고는 10만명을 넘어섰다.

현지 매체 페르필은 최근 아르헨티나 국민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고물가에서 고용불안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또한, 고물가로 인한 월급의 구매력 저하로 국민의 대다수가 직업이 있어도 월급이 기초생필품을 구입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최근 아르헨티나 가톨릭 대학은 빈곤 보고서를 통해 국민의 55.5%가 가난하며 17.5%가 극빈층에 속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밀레이 정부의 비리 스캔들까지 터져 국민의 불신은 커지고 있다.

밀레이 정부가 무료 급식소 지원에 비리가 있다면서 지원금 지원을 중단한 상태에서 전 정부가 구입한 5천t의 식료품을 제때 배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밀레이 대통령이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여러 부처를 통폐합해 출범한 인적자원부에서 최근 식료품 배부 스캔들 외에도 부정 채용, 식료품 구매 절차와 커미션에 대한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지난 일주일간 총 4명의 고위 관료가 사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국기와 밀레이 대통령 [온라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밀레이 대통령의 개인적인 정치 성향도 외교정책에서 걸림돌로 작용했고, 그의 이런 성향 때문에 실리외교를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반사회주의·반공산주의를 천명하면서 친이스라엘·친미 외교정책을 주장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좌파가 집권한 브라질, 콜롬비아 그리고 스페인 총리를 직접적으로 맹비난해 불필요한 외교마찰을 초래했다.

특히 그는 중국을 겨냥해 공산주의자들은 살인자라고 비난해 논란이 되면서 이달부터 7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총 50억달러(6조9천억원) 상당의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가 갱신될 확률이 낮아지는 등 위기를 자초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일엔 아르헨티나 주재 아랍 국가 대사 및 이슬람 단체장들이 참석하는 행사에 가는 도중 팔레스타인 대표가 참석했다는 소식에 행사장을 불과 200m 앞두고 참여를 취소하는 등 '친이스라엘 노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논란이 됐다.

엘살바도르에 도착한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취임 후 지난 6개월 동안 단 한 개의 법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점은 밀레이 정부가 처한, 어려운 국내 정치적 환경과 정치력 부재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664개의 조항으로 이뤄진 '메가 옴니버스 개혁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여소야대 국회에 막혀 통과가 안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 법안을 232개 조항으로 수정한 후 하원에선 겨우 의결됐지만, 상원에서는 아직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취임 직후 발표한 긴급 대통령령 DNU 70/23은 현재 시행 중이지만, 이 마저도 일부 조항은 노조의 가처분 신청으로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현지 언론은 신임 정부와의 '허니문' 기간인 6개월이 지나가는 기로에 선 밀레이 정부에게 옴니버스 법안 국회 통과는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대선 출마 이후 거침없는 직설적인 화법과 대중을 상대로 한 발언으로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그의 화법이 많은 논란을 초래하면서 개혁추진의 걸림돌이라는 부메랑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그는 미국 매체(THE FP HONESTLY)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국가 내부에 침입해 국가 파괴를 꾀하는 두더지이며 먼 미래에서 사회주의로 멸망하는 걸 막기 위해 나타난 터미네이터라고 말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준하게 평균 50%에 이르는 국민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런 지지율이 개혁을 추진하는 지속적인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 리더로서 밀레이의 탁월함보다는 야권이 내부 문제로 분열되어 리더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전문가들도 있다.

한편, 밀레이 대통령에 대해선 정권 출범 때부터 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그의 개혁조치의 성공 여부를 주시해왔다.

대표적으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급진적 인물'(THE RADICAL)이라며 표지인물로 선정해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밀레이 대통령 인터뷰를 진행한 타임지 특파원은 "표지를 장식했다고 해서 국제적인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아르헨티나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혔다.

타임지는 밀레이 취임 후 정부 재정 균형화를 위해 충격요법을 사용했으며, 2008년 이후 첫 재정 흑자를 기록했으나, 국민들은 고물가, 보조금 삭감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국민의 인내심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고 전했다.

영국의 BBC,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FT), 스페인의 엘파이스 등 해외 유수의 언론은 밀레이 정권의 개혁을 타전하면서 정부 재정 흑자와 물가상승률 둔화세라는 성과는 있지만, 극심한 불경기로 국민의 고통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밀레이 정부 출범 이후 각종 개혁조치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사회 취약층에 대한 지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권고하는 상황이다.

sunniek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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