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이 쓰레기를 산다고? 멍청이들” 부자들 비웃던 남자의 ‘대반전’ [0.1초 그 사이]
[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한 작품이 명성을 얻게 되는 데는 작품성을 넘어선 그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안목이 뛰어난 컬렉터나 큐레이터의 손을 거치는 것은 물론 스캔들, 법적 분쟁, 도난 사건, 심지어 예술계를 뒤흔든 저항까지…. 작품의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이처럼 다양합니다.
그리고 평판 높은 이런 미술품들은 단 0.1초 차이로 행방이 갈라지게 되죠.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나뉘는 치열한 미술시장에서 선택받은 그림들, 그 안에 얽힌 속사정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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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낙찰입니다!”
2018년 10월,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장. 경매사가 망치를 ‘땅’ 내리치는 그 순간, 갑자기 장내가 어수선해졌습니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벽에 걸려 새 주인을 찾게 된 뱅크시(Banksy)의 ‘풍선 없는 소녀’가 잘게 찢겨 프레임 밑으로 흐르기 시작한 겁니다. 그림이 절반가량 파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7초. 치열한 경합 끝에 약 15억원에 낙찰된 작품이 파괴되는 눈앞의 상황에,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습니다.
작품 구매자는 한 번도 뱅크시의 작품을 산 적이 없었던 독일 여성이었습니다. 소더비는 그에게 낙찰을 취소할 기회를 줬는데, 그는 현명하게도 자신의 선택을 번복하지 않았죠. “이 작품이 미술사를 새로 쓸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과연 그가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3년 뒤 절반이 잘린 이 문제작은 원래 낙찰가보다 18배 뛴 약 304억원에 판매되거든요.
이내 뱅크시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파괴하고자 하는 충동도 창조적인 충동이다.” 사전에 이 문제작의 액자 속에 파쇄기를 보이지 않게 설치하는 과정이 담긴 영상과 함께, 파블로 피카소가 남긴 말을 위트있게 전했던 건데요.
예술을 비웃는 아웃사이더이자 베일에 가려진 얼굴 없는 화가. 미술시장에 저항하는 예술 테러리스트이면서도 동시에 부자들이 한 점이라도 사고 싶어 발버둥 치게 만드는 ‘몸값’ 높은 비싼 작가. 모순적인 제도에 저항하는 혁명가이면서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마케팅의 귀재.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뱅크시입니다.
그는 기존 미술제도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반대로 행동합니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길 갈구하는 여느 작가와 달리, 자신의 정체를 철저하게 숨기고요.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이 영구 소장되길 바라는 여느 작가와 달리, 거리를 누비며 벽화를 그립니다. 이러한 태도는 뱅크시가 처음으로 출판한 저서에서 다룬 내용과도 일맥상통하죠. “당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서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업을 거꾸로 해보는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뱅크시는 영국 브리스톨 시 출생의 1973년 또는 1974년생으로 추정되곤 합니다. 뱅크시는 어쩌면 단 한 명이 아닐 수도 있고요. 정말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그가 누구인지가 아닙니다. 그가 도대체 왜, 이러느냐는 거죠. 그의 대표적인 기행은 낙찰과 동시에 파쇄하는 퍼포먼스만이 아니거든요.
미술시장에서 그가 처음으로 나타나게 된 건 바야흐로 200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전시에서였습니다. 당시 전시에서 뱅크시는 미술시장을 대놓고 비꼰 판화 ‘멍청이들’을 내놓습니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볼까요. 화면에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경매장이 담겼습니다. 경매사가 과한 제스처를 취하며 입찰을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팔려고 내놓은 작품에 어째 그림 대신 글씨가 쓰여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너희 멍청이들이 정말로 이 쓰레기를 산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I CAN'T BELIEVE YOU MORONS ACTUALLY BUY THIS SHIT)’
실제 그림 속 배경은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1987년 반 고흐의 ‘해바라기’ 경매장인데요. 한눈에 봐도 쓰레기 같은 그림에 거액을 쓰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조롱하는 뱅크시의 의도가 아주 강렬하게 느껴지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2013년 10월, 뱅크시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가장자리에 가판대를 설치해 그림을 개당 약 8만원(60달러)에 팔았습니다. 가판대는 그가 아닌 백발의 노인이 지켰습니다. 거리를 오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뱅크시가 그린 ‘원작’을 판매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눈곱만큼이라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판대는 숨이 막힐 정도로 한산했고, 오후 3시 30분이 되어서야 첫 구매자가 나타났거든요. (심지어 그는 반값으로 흥정해 그림 두 점을 갔습니다.)
거리에서 가판대를 접고 나서야 뱅크시는 자신의 계정에 이 그림들이 자신의 작품임을 인증하는 영상을 올립니다. 결과는 어땠냐고요. 네, 그림 값이 치솟았습니다. 이날 가판대에서 두 점의 작품을 산 뉴질랜드인이 이 그림들을 경매에 내놓았는데, 약 2억원(12만4500파운드)에 팔렸거든요. 가판대에서 하루 종일 벌어들인 돈이 60만원도 채 안 되는데 말이죠.
그래서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 겁니다. 미술품 가격은 누가 어떻게 매기는 거야, 싶은 건데요. 이러한 질문에 다다르다 보면, 역설적으로 뱅크시가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제아무리 진정성을 내비치더라도 끝내 자본주의에 바짝 끌려올 수밖에 없는 예술, 그리고 나아가 이를 둘러싼 시스템에 대해, 뱅크시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거든요. 예술은 편안한 사람들을 방해해야 한다고 말이죠.
돈과 명성에 질식돼 자멸하는 예술 앞에서, 정체를 숨긴 뱅크시가 할 수 있는 반란은 공고하게 다져진 기존 시스템을 끈질기게 파괴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보여주듯 그는 한 인터뷰에서도 거침없이 이렇게 전했습니다. 그는 “갤러리는 소수 백만장자들의 장식장과 다름 없다”고 말이죠.
그는 작가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영국 런던의 테이트미술관도 거부하거든요. 테이트미술관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미술관 중 하나인데요.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낙서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 묻는데요. 음, 틀림없이 낙서는 예술이죠. 그 얼어 죽을 테이트에도 걸려 있잖아요?”
실제로 그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2004년), 런던자연사박물관(2005년), 루브르박물관(2006년), 뉴욕현대미술관(2007년) 벽에 자신의 그림을 몰래 걸고 사라지곤 했습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관람객들은 뱅크시의 그림을 명작처럼 관람했고요. (단박에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 건 미술관과 박물관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뱅크시가 선택한 표현 방법은 그라비티로 보여주는 ‘거리 미술’이었던 겁니다. 한 마디로 그는 제도권 밖으로 나와서 미술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고 있는 중인 것이죠.
그 이면에는 강력한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관람객도 작품을 그저 관조하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라는 겁니다. 미술계에 만연한 엘리트주의가 돈과 만나면서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데, 이런 전통적인 욕구들이 갖는 위계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라는 건데요.
물론 뱅크시가 의도했든 아니든 그의 이름값으로 인해 벽과 건물 주인은 그의 그라비티를 반기고, 벽을 뜯어서 비싸게 팔기도 하고, 어김없이 그곳은 관광명소가 되는 ‘웃픈’ 상황이 벌어지곤 하는데요. 자신의 작품을 묶어낸 저서 ‘월 앤 피스’에서 뱅크시 스스로가 밝힌 고백이 그의 솔직한 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라피티는 싸구려 예술이 아니다. 한밤중에 몰래 작업을 해야 하지만 가장 정직한 예술 중 하나다. 누굴 선동하거나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것을 전시하기 위해서 그저 동네의 가장 좋은 벽만 있으면 충분하다. 작품을 보기 위해 누구도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다. (...)
누군가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찰이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좋아 보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의 화가가 된다.”
실제로 뱅크시는 그 누구도 쓴 적 없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20년, ‘나 좀 돈 벌었다’하는 여느 예술가처럼 요트를 샀는데요. 그 요트는 호사스럽게 노는 부자들의 배와는 매우 달랐거든요. 뱅크시는 이 요트를 난민을 구조하는 피아 클렘프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클렘프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죠.
“난민 위기를 주제로 만든 작품으로 번 돈을 후원하고 싶다.”
뱅크시의 보트에 그려진 그림은 다름 아닌, ‘풍선과 소녀’였습니다.
〈참고자료〉
뱅크시: 벽 뒤의 남자, 윌 엘즈워스-존스, 미술문화
Wall and Piece, 뱅크시, 세리프
UrbanArtAssociation
뱅크시 인스타그램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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