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집단 성폭행' 20년…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

김남희 기자 2024. 6.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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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고죄 폐지되고 피해자 보호책 강화
소년범 '성폭행 전과기록' 여전히 비공개
"집단 성폭행도 조직범죄처럼 수사해야"
[서울=뉴시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A씨. (사진=유튜브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남희 기자 =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가해자들 신상이 연이어 폭로되면서 '사적 제재'가 적절하냐는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피해자 측이 "가해자 신상 공개에 동의한 적 없다"고 밝히면서 폭로에 제동이 걸린 듯 했으나 일부는 암암리에 대놓고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법체계가 국민 법감정을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문제라면서도 20년 전 사건인 만큼 현재의 수사기관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판하는 건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20년 사이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들을 짚어봤다.

성범죄 인식 개선…친고죄 폐지되고 피해자 보호 강화

2004년 12월 경남 밀양의 고교생 44명이 여중생 한 명을 1년간 집단 성폭행했다. 검찰은 가해자 10명은 특수강간 및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하고 20명은 소년부로 송치했다.

나머지 가해자들은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미성년자란 이유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재판에 넘겨진 10명도 법원이 소년부로 송치해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폭언을 하고 가해자들과 대질신문을 진행한 점, 가해자 부모들이 피해자를 협박해 합의를 종용한 점이 알려지며 비판이 쏟아졌다.

검경의 안이한 수사가 솜방망이 처분을 불러왔단 분석도 나온다. 2004년은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이었지만, 특수강간죄(집단윤간)는 친고죄가 적용되지 않아 피해자가 원치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었다. 수사기관이 가해자 대부분에 단순 강간죄만 적용하면서 처벌 기회를 놓친 셈이다.

지금 똑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2007년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으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됐고, 2013년에는 성범죄에서 친고죄 조항이 완전 삭제됐다.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형사사법체계에서 지난 20년간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부분이 성범죄 관련 형법이다. 특히 친고죄가 존재했던 시절 성범죄 수사는 암흑기나 다름없었다"며 "지금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절대 전원 소년보호처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2015년 경찰 내에 여성과 아동 대상 범죄를 전담하는 '여성청소년수사팀'이 출범하면서 전문성도 강화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예전에는 강력계 형사들이 성범죄 사건을 수사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개념도 2차 피해 방지란 개념도 없이 강력범죄 수사하듯 조사했다"며 "지금은 관련 교육을 받은 성폭력전문조사관이 면담에 들어간다. 피해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책도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고위험 피해자에게는 스마트워치 지급, 민간경호 지원, 지능형 폐쇄회로(CC)TV 설치 등 보호책이 실시된다. 여성가족부와 지자체, 경찰청이 협업해서 운영하는 해바라기센터에서 법률지원, 의료지원, 심리지원을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소년범 '성폭행 전과기록' 여전히 비공개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반성없이 잘 살고 있는 모습'에 분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들이 대기업이나 지역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게 알려지며 소년범의 전과기록을 남기지 않는 현행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성범죄는 재범률이 매우 높다는 특수성이 있는 범죄"라며 "동일인에 의해 누적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소년범일지라도 죄질이 나쁜 경우 전과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 그게 미래사회의 구성원 보호를 위해 더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금 무분별한 신상털이가 벌어지는 것도 사법기관이 국민들의 성인식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성범죄에 관용은 없다'는 자세로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적극적 신상 공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가해자 측의 합의 종용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가해자가 탄원이나 합의를 요구할 때 경찰이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데까지는 달라졌다"면서도 "접근금지조치가 있지만 가해자 측 변호인과 가족의 접촉까지 막지는 못한다. 가해자들의 이런 행위를 피해자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단 성폭행도 조직범죄처럼 수사해야"

집단 성폭행 사건을 조직범죄 수준으로 수사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성폭행을 주도한 사람과 참여자, 망을 봐준 사람 등 범죄 관여도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권김 소장은 "가해자들끼리 뭉치지 못하도록 잘못한 만큼 정확한 처벌이 이뤄질 것이란 걸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서로 책임을 묻고 폭로하면서 죄를 명확히 밝힐 수 있다. 집단 성폭력 사건의 핵심은 집단성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마약 같은 조직범죄는 죄의 경중에 따른 수사와 처벌이 세분화돼 있는데 성폭력 사건은 아직 그렇지 않다"며 "애매하게 처벌받거나 거의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니 가해자들이 반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na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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