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50년 전 전역 후 찾은 설악산

오상철 수원시 영통구 대학로 2024. 6. 9.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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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6월 30일, 나는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예비역 장교로 전역했다.

산행 이후 큰누나의 발톱 2개가 빠져버렸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설악산 산행이 끝났다.

이후 나는 설악산 이곳저곳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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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에서의 필자와 큰매형.

1976년 6월 30일, 나는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예비역 장교로 전역했다. 군 생활이 적성에 맞아 장기복무를 할까 고민도 했지만,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장남이었기에 결국 전역을 결정했다.

전역 이후 한가하게 지내던 내게 큰매형이 산행을 제안했다. 목적지는 설악산. 일행은 큰매형 부부와 큰매형 회사의 박 이사 부부, 그리고 나 이렇게 5명이었다. 산행 날짜에 대해서는 일행 간 기억하는 바가 다르다.

큰누나는 1976년 10월 2일 낮, 집에서 출발해 오색에서 하루 자고 3일 새벽 4시부터 산행을 시작한 것으로 기억하고, 나는 2일 밤, 무박산행 버스에 몸을 싣고, 다음날 새벽 5시에 오색에서 산행을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산행코스는 오색에서 출발해 대청봉을 지나 설악동 소공원으로 내려오는 경로. 전역 이후 제대로 된 운동 한 번 하지 않았던 내게 16km라는 거리는 무척 어렵게 다가왔다. '과연 내가 이 정도의 장거리 산행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큰매형과의 산행이라 무척 신이 나기도 했다.

그날 오색 등산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입구에서부터 대청봉까지 수많은 등산객이 한 줄로 쭉 늘어져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10월 3일(일요일)은 설악산 등산 적기로 꼽힐 정도로 풍경과 날씨가 좋았고, 징검다리 휴일이 있어 평소보다 더 많은 이들이 설악산을 찾았던 걸로 생각난다.

대청봉 정상부의 사진.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큰누나가 발걸음을 멈췄다. "괜찮냐?"고 물으니, "숨이 차고 힘들어서, 더 이상 못 가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직 대청봉까지 한참을 가야 하는데…. 결국 큰누나는 먼저 내려가 설악동에서 우리를 기다리기로 하고, 나머지는 산행을 이어갔다.

지금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설악산 등산로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길은 좁고, 커다란 돌들도 많아 다치지 않고 오르려면 각별히 주의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산행의 기억은 파편처럼 남아 있다. '어떤 풍경이 있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뿔뿔이 흩어져 혼자 올랐는지, 정상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등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어찌어찌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에 도착했다. 그곳엔 먼저 오른 사람들이 한가득 있었고, 모두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난리들이었다. 일행들과 함께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니! 큰누나가 우리 앞에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큰누나는 우리와 헤어져서 하산하다가, 지금 아니면 다시는 대청봉에 오르지 못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죽기 살기로 올라왔다고 했다. 함경도 똑순이 큰누나! 정말 대단했다. 하긴 해방 이듬해인 다섯 살 때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인천까지 어머니 손을 잡고 걸어서 왔었으니, 누나에게 설악산은 별게 아니었겠지!

왼쪽에서부터 필자, 지인, 큰매형

우리는 다시 걸어 설악동으로 내려갔다. 오랜 시간 걸려 설악동에 도착했는데, 해는 이미 져버린 지 오래라 사방이 깜깜했다. 주차장엔 버스가 어찌나 많은지 우리가 타고 온 버스를 찾는 데도 한참 걸렸다.

산행 이후 큰누나의 발톱 2개가 빠져버렸다.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산행한 것이 원인이었다. 큰매형이 조금만 더 신경 써서 큰누나를 챙겼다면 좋았을 걸… 평소엔 자상한 큰매형이었지만, 이때만큼은 밉게 느껴졌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설악산 산행이 끝났다. 이후 나는 설악산 이곳저곳을 누볐다. 비법정이라 가지 못하는 용아장성, 화채능선 빼고는 설악산의 모든 코스를 두루 다녔다. 내 오랜 추억이 담겨 있는 그때의 설악산 사진.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신 큰매형과 설악산이 큰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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