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포트] 총수가 직접 뛴다… 국내외 누비는 이재용·최태원

이한듬 기자 2024. 6. 9.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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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1·2위 '삼성·SK' 경영 진단]② 글로벌 네트워킹 활용해 그룹 사업 성장 발판 마련
[편집자주] 삼성과 SK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졌고 SK온은 흑자 전환이 요원하다. 위기 극복을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인적 쇄신 등의 카드를 꺼내 들며 대응에 나섰다. 불확실한 경영환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삼성과 SK의 현황을 점검하고 총수들의 사업 전략을 살펴봤다.

지난 4월26일(현지시간) 독일 오버코헨 ZEISS 본사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ZEISS 제품을 살펴보는 모습. /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 중인 삼성전자와 SK그룹의 선두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있다. 이 회장과 최 회장은 각 그룹의 경영상황이 중차대한 분기점을 맞았다고 진단하고 국내외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사업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두 총수의 글로벌 네트워킹이 각 그룹의 성장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분기점 맞은 삼성전자… 발로 뛰는 이재용


인공지능(AI)이 산업계의 새로운 게임체인저로 떠오르면서 삼성전자는 새로운 분기점을 맞았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를 거머쥐고 있지만 AI 시대의 개화로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부문에서는 선두경쟁에서 밀려 후발주자 위치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비메모리 분야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에서도 대만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TSMC는 AI 반도체 수익을 기반으로 올해 1분기 전 세계 파운드리 매출액 62%를 차지하며 1위를 수성했다. 삼성전자의 점유율(13%) 격차는 49%포인트로 지난 4분기 47%포인트보다 더 늘었다.

반도체 최고기업 위상을 되찾기 위해 이재용 회장이 직접 나섰다. 이 회장은 최근 삼성전자 내 반도체(DS) 부문 수장을 경계현 사장에서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이례적으로 상반기 수시 인사를 통해 반도체 부문 수장을 교체한 것은 글로벌 반도체 불확실성에 적극 대처하고 사업을 쇄신하기 위한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평가다.

이 회장은 직접 국내외 현장을 누비며 글로벌 네트워킹을 통해 사업기회도 모색하고 있다. 이 회장은 6월 중순까지 미국 동부에서 서부 실리콘밸리까지 이동하며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와의 협력 강화, 신성장 동력 발굴에 나선다. 매일 분단위까지 나눠지는 빽빽한 일정 30여건을 소화한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주요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HBM 등 AI 반도체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4월 독일 오버코헨에 있는 자이스 본사를 방문해 칼 람프레히트 CEO를 만났다. 자이스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기술 관련 핵심 특허를 20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광학 기업이다. 반도체 업계 '슈퍼 을'인 ASML의 EUV 장비에 탑재되는 광학 시스템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또 다른 슈퍼 을이다.

이 회장은 자이스 경영진과 반도체 핵심 기술 트렌드 및 양사의 중장기 기술 로드맵에 대해 논의했으며 자이스 공장을 방문해 최신 반도체 부품 및 장비가 생산되는 모습을 직접 살폈다. 이 회장이 고객사의 고객사까지 직접 챙긴 것은 공급망 관리 강화를 통해 반도체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그동안 반도체 부문에서 글로벌 네트워킹을 강화해왔다. 지난해에는 젠슨 황 엔디비아 CEO를, 올해 2월에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를 만나며 AI 반도체 부문 협력을 논의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삼성전자가 새로운 사업기회를 모색할 것이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최태원 SK 그룹 회장(왼쪽)과 TSMC 웨이저자 회장이 6일 대만 타이베이 TSMC 본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SK


보폭 넓히는 최태원, HBM 선두 굳힌다


최태원 회장도 AI 반도체 선두 입지를 굳히기 위해 자신의 글로벌 네트워킹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대만 타이베이에서 TSMC 웨이저자 회장 등 대만 IT 업계 주요 인사들과 만나 AI 및 반도체 분야 협업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인류에 도움되는 AI 시대 초석을 함께 열어가자"고 메시지를 전하고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와 TSMC의 협력을 강화하는데 뜻을 모았다.

지난 4월 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회동해 AI 부문 협력을 논의했다. 최 회장은 회동 직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젠슨 황 CEO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고 양사 간 AI 동맹을 과시했다. 젠슨 황 CEO는 최 회장에게 선물한 책자에 '우리의 파트너십과 함께 만들어나갈 AI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라고 적었다.

지난해 12월에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기업인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아 SK하이닉스와 기술협력 방안(EUV용 수소 가스 재활용 기술 및 차세대 EUV 개발)을 끌어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부가·고성능 제품으로 AI 시대에 가장 적합한 반도체로 꼽힌다. SK하이닉스가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직후 5세대 제품인 HBM3E까지 주도권을 지켜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기준 HBM 시장에서 53%로 과반을 점유하고 있으며 당분간 시장에서 독점체제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최 회장이 글로벌 기업들을 직접 만난 것은 고객사와의 내밀한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킹은 SK하이닉스의 사업에 큰 힘이 되고 있다. AI 반도체의 맞춤형 니즈 확대로 고객사와의 네트워킹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최 회장이 다져놓은 네트워크가 경쟁력 강화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곽노정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초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AI 반도체는 범용 반도체 기술역량에 더해 고객 맞춤형 성격이 있어 반도체 개발과 시장 창출 과정에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최태원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킹이 글로벌 고객사와 잘 갖춰져 있어 (SK하이닉스의 HBM 리더십 확보에)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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