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로' 막히고 가격 오르자 가짜 발기부전약 만든 일당, 죗값은?[법정B컷]
CBS노컷뉴스 임민정 기자 2024. 6. 9. 06:06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160억원 규모의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를 만들고 이를 팔기까지 한 형제를 검찰에 넘겼습니다. 인적이 드문 농가에 제조 공장까지 차리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죠.
이들 형제와 비슷하게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를 만들고 시중에 판 일당 3명에 대한 1심 선고가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심리로 나왔습니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무역 중단으로 중국산 위조 발기부전 치료제 밀수가 어렵게 되고 더욱이 가격까지 오르자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럴 바엔 우리가 직접 만들자" 오늘 '법정 B컷'은 부정 의약품 제조에 나선 일당의 이야기로 가봅니다.
중국에서 원료 밀수…'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만든 일당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범행 밑그림은 '제조책' A가 그렸습니다. A는 강원도에 차려 놓은 가짜 발기 부전 치료제 제조 공장에 상주하며, 범행을 주도했습니다. B는 '판매책'이었습니다. 그는 중국에 사는 일명 'ㄱ부장'으로부터 제조 기계를 구입하고, A의 소개로 원료물질을 구입했죠. 그리고 이런 범행을 가능케 한 '자금책' 역할을 했다고 검찰이 의심했던 C가 있습니다.
이들은 2022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국내 허가된 '비아그라정'과 '시알리스정'을 위조한 발기부전 치료제 25만 통, 759만 알을 만든 혐의를 받습니다. 또 이렇게 만든 가짜 치료제를 서울 동대문구 일대에서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1만 8천 통을 팔았다고 검찰은 봤습니다. 가격은 4500원 또는 1만원에서 3만원 정도였습니다.
강원도 정선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 타정기, 색소기 등 제조 기계까지 설치해 공장을 차렸다는 일당.재판부는 이들에게 모두 죄가 있다고 인정했을까요.
가짜 치료제를 만들기란 꽤(?) 복잡합니다. 판결문에 근거하면, 원료물질에 부자재를 섞어 반죽하고,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후 타정기로 알약 제형을 만들고, 색소기로 색소를 입혀야 합니다. 한 과정이라도 어긋나면, 가짜인 것이 드러나기 쉽습니다.
재판이 한창이던 지난 4월, 피고인 A에게 발기부전 치료제를 제조할 수 있는 타정기의 금속 틀인 '금형'을 판매한 업자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금형이란 붕어빵 기계처럼 알약을 찍어낼 수 있는 금속 틀을 말합니다.
2024.04.24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판매 일당 재판 증인신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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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증인은 피고인 A와 B, C를 아는가요?
증인 두 분은 모르고, A만 압니다. 검사 언제, 어떤 경위로 피고인 A를 알게 됐나요. 증인 그분이 기계를 사서 와 금형을 해달라고 해 준 것밖에 모릅니다. (중략) 검사 피고인 A의 의뢰로 '펀치와 다이'*를 생산해 A에게 납품했었지요? 증인 네 검사 '비아그라' 등을 (제조 할) 펀치와 다이를 의뢰받은 사실이 있나요. 증인 네 검사 실제 '정품 발기부전 치료제'와 상이하면, 제작이 의미가 없지 않나요. 어떤 식으로 했나요. 증인 (A가) 샘플을 가져왔습니다. 검사 A가 발기부전 치료제와 동일한 알약을 만들 수 있는 펀치와 다이를 제작해달라고 한 건가요. 증인 네, 맞습니다. *타정기 부속인 금형의 펀치와 다이가 맞물려 타정(알약을 압축해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이뤄진다. |
그는 일당에게 "비아그라 금형 하나만 납품했고, 90만원을 받고 일을 도와줬을 뿐"이라고 증언 했습니다. 검찰은 상식적으로 90만원만 받고 A/S까지 해준 것은 납득가지 않는다며, 증인과 피고인 C사이의 320만원의 거래 내역 등을 추가로 제시했습니다. 증인이 피고인 A뿐만 아니라 C와도 거래했고, 의뢰받은 금형 개수가 더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증인은 해당 돈은 금형 기곗값과는 무관하고, 자신이 A에게 빌려준 돈이 알지 못하는 C의 계좌로 들어왔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 '유통책'으로 지목된 피고인 B의 증인신문도 이뤄졌습니다. 그는 '제조책' A와 '자금책'이자 제조공장의 부지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C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2024.04.24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판매 일당 재판 증인신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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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C변호사 피고인 A가 경찰에서 발기부전 치료제의 원료물질인 '실데나필'과 '타다나필'을 D를 통해 구입했다고 했는데 맞나요. 피고인 B 맞습니다 변호사 실데나필과 타다나필 중에 타다나필의 가격이 더 비싼가요. 피고인 B 잘 모르지만, 차이가 크다고 압니다. 변호사 C는 위조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있나요? 피고인 B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
B는 자신이 A에게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방법을 배웠던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C의 역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증언하지 못했습니다.
2024.04.24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판매 일당 재판 증인신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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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A는 이렇게 말합니다. 강원도 정선군에 아는 사람 없어 C에게 10평 정도 되는 제조공장이 필요하다고 했고, 설치 시설을 구하는 방법과 인부 비용도 알려줬다고요. C가 제조 공장 부지를 제공하고, (제조 공장) 설치까지 세부적으로 관여했다고 하는데, 맞나요?
피고인B 그런 구체적인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중략) 검사 수익 분배에 관해 묻겠습니다. 수익을 5:5로 A와 배분하기로 했다고 했는데. 증인(B)이 C를 통해 A를 소개받은 건 맞지요. 피고인B 네, C를 통해서 A를 소개받은 건 맞습니다 검사 수익이나 초기 자금 반환 관련해서 C와 얘기가 돼 있었다. 그래서 증인(B)이 A 만난 후 나오는 수익 10%는 C에게 줘야 한다고 얘기한 적은 있나요. 피고인B 제가 얘기한 것은 아니고… A와 오고 가는 사적인 대화에서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수익을) 지급한 적은 기억이 없습니다. 검사 왜 이런 얘기를 했나요. 피고인B 실질적으로 돈이 간 적은 없기는 한데,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희가 거의 무일푼으로 하다 보니까 (C에게) 자본적으로는 많이 도움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가 나왔는데, 사적으로 대화하면서 형편이 좀 피면 도움도 드리자는 취지로 얘기한 건 기억납니다 |
B는 C의 자금이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 건 맞지만, 위조 발기부전 제조와 판매로 생긴 수익을 분배하거나 그런 약속을 한 적은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수사 결과, C는 A와 B에게 5400만원을 지급했고, 이는 장비와 원료 구입 비용으로 쓰였습니다.
'제조책'은 징역 3년 벌금 26억…'자금책'은 무죄
1심 선고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그 전에 제조책 A가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조금 자라난 흰머리에 녹색 수의를 입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24.04.24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판매 일당 피고인 A 최후변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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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범행을 가담했다는 자체는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양을 많이 안 했습니다. 판매도 판매책이 없어 한 것도 없고…이 범행에 가담하고 직접 했다는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하여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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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지난달 29일 A에게 징역 3년에 벌금 26억원, 추징금 5075만원을 선고했습니다.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의 제조 기술을 가진 자인 A가 기계와 재료 등을 직접 물색하는 등 범행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고 본 겁니다. A는 지난해 8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하기로 마음먹고 타인 명의의 휴대 전화를 사용했다는 점도 인정됐습니다.
판매책 B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4억원, 추징금 5075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2024.05.29 선고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판매 일당 판결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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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위조 발기부전 치료제를 만들고 판매하기로 마음먹고 제조법을 아는 사람을 수소문하던 중 A를 만나 이 사건 범행을 공모하는 등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중략) A와 그 수익을 동일하게 나눠 갖는 등 이 사건 범행에 있어 나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그러나 재판부는 자금책으로 여겨지던 C에게는 무죄 판단을 내렸습니다.
수익 배분이 없었다는 점이 주요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수익 약 1억원이 발생했지만, C에게는 한 푼도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아무런 대가 없이 형사 처벌 위험을 감수하고 위조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토지와 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또 나머지 일당들이 C가 지급한 5400만원에 대해 갚아야 할 돈이라고 증언한 것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통상 공범이라면, 범행을 위한 자금을 다시 돌려줄 돈이라고 여기지 않았을 거란 겁니다.
C는 최후 변론에서 "남들을 도와주다 보니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 몰랐습니다. 검사가 제게 반성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이익을 갖기 위해서 동업을 한다거나 한 것은 추호도 없었습니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法 "54만 정 시중에 유통…위조 의약품 생명 위해"
무엇보다 재판부는 유죄로 인정된 일당의 범행이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는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어긴 범죄일 뿐 아니라 건강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A는 이번 범행이 처음도 아니었거든요.
2024.05.29 선고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제조·판매 일당 판결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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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은 사람의 생명·건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의학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위조 의약품은 사람의 생명·건강에 대한 심각한 위해를 가져올 수 있고, 경우에 따라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위조 발기부전 치료제 등이 시중에 유통될 경우 국민의 의약품 안전에 관한 불신이 확산되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라는 중요한 법익에 심각한 위협이 되므로, 이를 엄히 처벌할 필요가 크다. 피고인들이 제조한 위조 발기부전 치료제의 수량이 약 750만 정에 이르고 그중 약 54만 정이 시중에 유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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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사건은 검찰과 유죄를 받은 피고인들이 항소를 한 상황입니다. 일당 3명 가운데 2명의 죄가 인정된 상황, 항소심 재판부는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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