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쇄국주의? 바이낸스 이어 크립토닷컴 국내 영업 좌초 위기

진상훈 기자 2024. 6.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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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조사 후 2개월째 앱 출시 연기
사업자 갱신 못 받으면 국내 사업 좌초
문 닫힌 국내 시장…두나무·빗썸이 95% 점유
크립토닷컴의 에릭 안지아니 CEO가 지난 4월 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국내 사업 진출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3주가 지난 23일 금융위의 긴급 조사가 있은 후 크립토닷컴은 국내 서비스를 무기한 연기했다. /크립토닷컴 제공

지난 4월 국내 가상자산 시장 진출을 선언했던 미국의 코인 거래소 크립토닷컴이 금융 당국의 긴급 현장 조사를 받은 후 지금껏 영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에 이어 크립토닷컴까지 국내 진출에 어려움을 겪자,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의 ‘코인 쇄국주의’로 토종 거래소의 독과점 구조가 굳어져 이용자들이 저렴한 수수료로 거래할 권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크립토닷컴은 4월로 예정했던 국내 가상자산 거래 앱 공개를 무기한 연기한 후 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출시 시점을 잡지 못했다.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크릿토닷컴이 자문 변호사 등 전문가들과 함께 금융 당국의 영업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크립토닷컴은 지난 2016년 설립된 가상자산 거래소로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8000만명이 이용하는 세계 10위 거래소로 설립 후 누적 거래 규모는 10조달러에 이른다. 삼성전자와 네이버 라인 등 여러 국내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유명 스포츠 구단의 후원사로도 인지도가 높다. 미국 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의 홈구장인 ‘크릿토닷컴 아레나’도 이 거래소가 소유하고 있다.

크립토닷컴은 지난 4월 2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국내 시장 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에릭 안지아니 크립토닷컴 최고경영자(CEO)는 4월 29일부터 비트코인을 충전해 가상자산과 대체불가토큰(NFT) 등을 사고파는 코인마켓 거래소로 영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2021년 크립토닷컴은 국내 코인마켓 거래소인 오케이비트를 인수했다. 금융 당국이 부여하는 가상자산 사업자(VASP) 자격을 얻기 위해 국내 거래소의 경영권을 취득한 후 2년여 간의 준비를 거쳐 올해부터 크립토닷컴 브랜드로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을 발표한 후 3주가 지난 4월 23일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자금 세탁 방지와 관련한 긴급 현장 검사에 나섰다. 가상자산업계에서는 FIU의 조사 이후 지금껏 크립토닷컴이 서비스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사실상 금융 당국이 국내 시장 진출을 가로막은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올해 하반기에 국내 거래소 사업자들은 VASP 갱신 심사를 받아야 한다. 금융위가 지난 2021년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를 도입하면서 3년마다 자격을 갱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크립토닷컴은 당장 코인마켓 거래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보다 오는 9월로 예정된 심사에서 사업자 자격을 잃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진출을 시도했다가 금융 당국의 벽에 막힌 해외 거래소는 비단 크립토닷컴뿐이 아니다. 바이낸스는 지난해 초 국내 5위 원화마켓 거래소 고팍스의 지분을 인수했지만,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금융위로부터 사업자 변경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지난해 고팍스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국내 진출을 시도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껏 사업자 변경 승인을 얻지 못했다. 사진은 지난 2022년 자오창펑 바이낸스 대표이사와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이 디지털금융 육성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고 기념촬영하는 모습. /부산시 제공

문제는 해외 거래소의 국내 진출이 막히면서, 소수의 국내 거래소가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통계 분석 플랫폼인 코인게코에 따르면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 시장에서 1위 사업자인 두나무의 점유율은 65%에 이른다. 2위 거래소인 빗썸은 30% 안팎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자본과 브랜드 경쟁력이 높은 해외 사업자가 들어오면 거래소 간 수수료 경쟁을 유도해 국내 투자자들이 저렴한 수수료로 가상자산을 거래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의 규제로 2곳의 토종 거래소가 사실상 가상자산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바이낸스 등 해외 사업자들이 거래소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코인 시장의 독점 구조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자금 세탁 방지 기준 등을 충족하는 검증된 해외 사업자에 대해서는 국내 시장의 문을 열어주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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