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와 모래가 섞인 쌀을 지급받고 눈이 뒤집힌 군인들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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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6월 9일, 훈련도감 소속 구식 군인들이 체불 임금 지급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조선의 수도 한양(현 서울)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중전 민씨가 충주로 도피하고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청나라군이 개입해 대원군을 톈진으로 압송해 가면서 반란은 진압되고 말았다.
서양과의 개항 이후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군인들이 일으킨 이 반란은 조선 사회의 내부 모순을 낱낱히 드러냈고, 이는 결국 외세의 개입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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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82년 6월 9일, 훈련도감 소속 구식 군인들이 체불 임금 지급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조선의 수도 한양(현 서울)은 혼란에 빠졌다. 이것이 임오군란이다.
당시 조선은 서양과의 개항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군대 또한 개편의 물결을 겪고 있었다. 1881년에 창설된 신식군대 별기군은 급료나 피복 등 모든 면에서 특급 대우를 받았지만, 훈련도감 소속 구식 군인들은 하루아침에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해고당한 구식 군인들에게 13개월 치 밀린 봉급이 지급됐는데, 모래와 겨가 섞인 불량 쌀이었다. 선혜청 하급관리들이 쌀을 빼돌려 착복했던 것이다. 이를 본 구식 군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대궐 안에 난입해 전임 선혜청 당상 김보현을 잡아 죽이고, 다음 날엔 선혜청 당상 민겸호마저 살해했다.
반란군은 곧 도시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약탈과 방화를 일으켰다. 당황한 조정은 탄압에 나섰지만, 오히려 반란군의 세력이 더욱 커졌다. 결국 조정은 민씨 일가에 밀려났던 대원군을 다시 정권에 참여시켜 반란을 진압했다. 하지만 중전 민씨가 충주로 도피하고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청나라군이 개입해 대원군을 톈진으로 압송해 가면서 반란은 진압되고 말았다. 조정은 다시 민씨 일가가 득세했다.
임오군란은 조선의 내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청나라는 조선 내정에 개입할 명분을 얻었고, 일본 또한 군대를 파견해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결국 임오군란은 조선이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에 벗어나지 못하고 외세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임오군란은 19세기 조선 사회가 겪었던 근대화 과정의 극심한 고통과 갈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서양과의 개항 이후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군인들이 일으킨 이 반란은 조선 사회의 내부 모순을 낱낱히 드러냈고, 이는 결국 외세의 개입으로 이어졌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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