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녹색 스프레이로 기업 ‘재산권’을 이긴 사람들
2021년 2월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와 이은호 활동가는 경기 성남시 두산중공업(현 두산 에너빌리티) 본사 앞에 세워진 ‘DOOSAN’이라는 상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렸다. 베트남에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두산중공업에 항의하는 차원의 행동이었다. 두산중공업은 ‘재산손실을 입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형사고발하고 1840만원의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민사소송은 기각됐지만 형사소송 1심에서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3년의 시간이 지났다. 법원 판단은 바뀌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두 활동가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재물손괴로 1·2심에서 받았던 벌금 총 500만원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두 활동가가 녹색 스프레이를 뿌린 행위가 재물손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쉽게 인정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강 대표와 이 활동가, 이들을 변호했던 이치선·김보미 변호사를 지난 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강 대표는 “법이 재산권만 보호한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틈새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간 사법부는 사물 자체의 효용을 해하는 것, 소유자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 사물을 원래 사용 목적에 맞게 쓸 수 없게 만드는 것, 일시적으로 사물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것 등 형법상 재물손괴를 폭넓게 인정해왔다. 그랬던 사법부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한 재물손괴의 제한을 인정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소유권, 재산권을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비교해 범위를 제한한 첫 판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대법원 판단이 새로운 법질서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기업은 재산권·영업의 자유를, 활동가들은 기후위기 앞에서 생명권 등 기본권 보호와 이를 표현할 자유를 주장한 것”이라며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생명권 등을 보호할 필요성이 점점 높아질 것이고, 영업의 자유보다 다른 기본권을 보호할 필요성이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기후위기 대응을 제대로 못 한 채 2030년대를 맞는다면 석탄발전소 건설을 ‘영업의 자유’로 보호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경북 포항 영일만에서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가스 광구를 발견했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경북 포항시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산업통상자원부의 탐사시추 계획을 승인했다.
이 활동가는 “140억배럴 규모 화석연료를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약 47억7750만t이 배출된다”며 “세계가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 남은 탄소예산을 인구 기준으로 한국에 나눈 탄소예산의 1.4배에 달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공항을 짓고, 화석연료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는 것은 재생에너지 확충에도 부족한 예산과 자원을 잘못된 방향으로 소모하며 공동체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정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한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판단하는 기후소송 변론도 맡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5월 기후소송의 공개 변론을 두 차례 열었으며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이 변호사는 “입법부·행정부가 지금까지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해왔다는 점을 헌재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헌재 선고는 대한민국 기후 대응의 방향을 바꿀 유일한 국가적 차원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 활동가도 “대법원의 패스를 받은 헌재가 골을 넣어줄 때가 됐다”며 웃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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