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제철소에 사는 로봇개 ‘투모로우’를 아시나요? [이동수는 이동중]

이동수 2024. 6. 9.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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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4족 보행로봇으로 안전 관리
제철소 내 로봇 작동 장면 최초 공개
최고 70도 ‘사우나’ 속 로봇개 투입해
데이터 자동 수집·전송…원격 제어도
사람은 2시간 걸리던 석탄 재고 관리
수직 이착륙 드론으로 20분만에 해결
“위험지역 설비 점검 로봇 확충할 것”

‘로봇개가 제철소를 뛰어다니면 어떤 모습일까.’

포스코가 전남 광양제철소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로봇 ‘스폿’을 투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이 질문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로봇개 ‘투모로우’가 고로의 송풍구를 점검하고 있다.
어지러이 얽힌 파이프가 증기를 내뿜는 레트로한 분위기의 제철소에 최첨단 로봇이 돌아다니는 장면을 상상하면 영락없는 ‘현실판 스팀펑크’였다. 스팀펑크는 전기모터나 내연기관 대신 증기기관을 기반으로 기술이 발전한 가상 세계를 기반으로 한 공상과학(SF) 장르를 말한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찾았다. 광양제철소 내에서 로봇개가 실제 작동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로봇개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까진 여러 보안 절차를 거쳐야 했다. 광양제철소는 ‘국가보안목표 가급 시설’로, 내부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촬영을 금지했다. 덕분에 언제 마지막으로 사용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디지털카메라를 목에 걸고 고로로 향했다.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로봇개 ‘투모로우’가 도킹 스테이션을 나와 송풍구 점검을 하러 가고 있다. 포스코 제철소는 국가보안시설로, 투모로우가 송풍구를 가까이서 점검하는 영상은 보안사항에 해당해 찍을 수 없었다.
임직원들은 로봇개를 ‘투모로우’(Tomorrow)라고 불렀다. 제철소의 ‘미래’를 위한 기술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투모로우는 지난해 11월부터 광양제철소 고로 점검에 투입됐다. 대장간에서 풀무질하듯, 고로 내 쇠를 녹이기 위해 바람을 불어넣는 송풍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피는 역할을 맡았다.

송풍구 주변은 사우나나 다름없었다. 김덕호 제선부 파트장은 “주변 온도가 최저 50도에서 최고 70도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직접 무더운 여름 날씨에 발목까지 늘어지는 두꺼운 보호복까지 착용한 채 44개나 되는 송풍구를 일일이 점검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혔다.

충전소 문이 열리자 천천히 걸어 나온 투모로우는 잔걸음을 치며 송풍구로 향했다. 가늘고 긴 다리는 울퉁불퉁하고 전선 등 턱이 있는 제철소 바닥에서 안정적으로 걷기 제격이었다.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로봇개 ‘투모로우’가 도킹 스테이션을 나와 송풍구 점검을 하러 가고 있다. 포스코 제철소는 국가보안시설로, 투모로우가 송풍구를 가까이서 점검하는 영상은 보안사항에 해당해 찍을 수 없었다.
송풍구 앞에 멈춰선 투모로우는 유연하게 움직이며 송풍구 하단을 살폈다. 점검이 필요한 송풍구 부분은 사람 허리 높이 정도에 있는데, 투모로우는 송풍구를 중심에 둔 채 관절을 자유롭게 접고 펴면서 좌우로 송풍구를 올려다보았다. 복싱 선수가 주먹을 피하기 위해 윗몸을 앞으로 숙이고 머리와 윗몸을 좌우로 흔드는 ‘위빙’ 기술이 떠올랐다.

투모로우는 포스코가 개발한 순서에 따라 하루 두 번 고로 주변을 돈다. 장착된 열화상 카메라와 고성능 마이크로 송풍구의 정렬 상태, 가스 유출, 냉각수 누수 여부 등을 살핀다. 송풍구마다 QR코드를 부착해 투모로우가 각 송풍구를 구분해 점검할 수 있다. 점검이 끝나면 투모로우는 스스로 충전소로 돌아간다.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로봇개 ‘투모로우’가 제선부 김덕호 파트장과 함께 고로의 송풍구를 점검하고 있다.
투모로우 도입은 제선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제선부는 철광석과 석탄으로 만든 코크스를 고로에 넣고 열풍을 불어넣어 철광석에서 순수한 철만 뽑아내는, 제철소의 첫 공정을 담당하는 핵심 부서다.

김 파트장은 “투모로우가 있어서 기존 인력을 다른 파트에 배치해 운용할 수 있었다”며 “사람이 직접 점검해야 하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지만, 정기 점검은 로봇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겠더라”고 말했다.

로봇개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폿을 사용하고 이를 구동할 소프트웨어는 포스코홀딩스의 AI로봇융합연구소에서 개발했다. 연구소의 엄문종 차장은 “바퀴 달린 로봇은 이동 시 카메라가 크게 흔들려 제대로 된 점검이 힘들다. 4족 보행로봇을 선택한 이유”라며 “투모로우는 계단도 잘 오르내려서 향후 활용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로그램을 통해 원격 제어도 가능하다. 프로그램만 있으면 미국에서도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상공에 야적장의 석탄 재고를 파악하는 드론이 떠 있다.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우영균 대리(왼쪽)와 김민서 사원이 드론 수직이륙장에서 드론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투모로우 덕분에 AI 개발을 위한 빅데이터 구축도 용이해졌다. 기존엔 수집된 데이터를 사람이 일일이 수기로 작성해야 했지만, 투모로우는 점검과 동시에 데이터를 고로 관제실로 자동 전송한다. 

포스코는 조만간 포항제철소에도 투모로우와 같은 로봇개를 투입한다. 지난 3월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취임사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적용해 지금의 스마트공장을 인텔리전트 공장으로 진화시키겠다”고 예고한 대로다.

제철소를 관리하는 로봇은 투모로우뿐이 아니다. 포스코는 2021년부터 석탄 재고 관리에 드론을 투입했다.

드론이 광양제철소 상공을 헤집는 모습도 스팀펑크 그 자체였다. 드론은 150m 상공에서 시속 58㎞로 일정하게 야적장을 비추며 석탄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파악한다. 스위스에서 설립된 세계 최대 상업용 수직이착륙 드론 생산 업체 ‘윙트라’의 제품을 사용한다.

드론을 조종하는 우영균 대리는 “사람이 직접 차를 타고 다니면 야적장에 쌓인 80만t가량의 석탄 더미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며 “드론을 사용하면 20분 안에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재고량을 파악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제철소가 연간 사용하는 석탄은 1000만t 이상이다.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1선탄 야적장에 석탄 등이 80만t 가량 쌓여있다. 기존에 사람이 석탄 재고를 확인하려면 자동차를 타고 2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지만, 2021년 드론이 도입된 이후 20분이면 재고 파악이 가능해졌다.
포스코는 LG전자와도 협업해 원격 자율점검 모바일 로봇 도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7월부터 광양제철소 4열연 공장 지하 전기실에서 두 차례에 걸쳐 무인 화재감시 및 전력설비 원격진단 바퀴형 모바일 로봇 사전검증을 진행해 기술 사전검증에 성공했다. 지하 전기실은 고전압 변압기 및 케이블 등이 설치된 축구장 2개 이상 면적의 넓은 공간으로, 특히 주기적이고 꼼꼼한 설비 점검이 필요한 공간인 만큼 작업자 설비 점검 업무 강도가 높은 곳이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로봇개의 고로 도입 경험을 바탕으로 위험지역 설비 점검을 위한 로봇 적용을 계속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동 중’은 핑계고, 기자가 직접 체험한 모든 것을 씁니다.

글·사진=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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