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빚, 대학생의 비극…"왜 안갚아줘" 가족을 죽였다
애인과 흥청망청, 가족이 계속 갚아주다 손들자 가출 끝 범행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2003년 일어난 '카드 사태'는 우리나라 경제사에 커다란 아픔을 남겼다.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펼치면서 신용카드 회사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길거리에서 신용카드 발급을 남발했다.
심지어 대학생이나 실업자 등 소득과 신용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마구잡이로 카드가 발급되면서 신용불량자 수는 경제활동인구의 6분의 1을 넘는 400만 명 이상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카드 사태는 경기 부천 원미동에 살던 한 청년의 존속 살해 비극을 낳았다.
◇ 국내 최상위 대학 연영과 휴학생…카드 긁어대며 호화생활
당시 22세였던 김근우는 준수한 외모의 모 유명 대학교 연극영화과 휴학생이었다. 김근우 역시 아무렇게나 발급받은 신용카드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는데, 여자 친구에게 200만 원짜리 옷을 선물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펐다.
김근우의 카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만큼 아들과 부모 사이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2022년 4월 아버지는 결국 연금까지 해약해 아들의 4000만 원 카드 빚을 해결해 줬으나, 김근우는 신용불량 해제 직후 또다시 카드를 발급받았다.
김근우는 자신의 카드는 물론 아버지 카드와 여자 친구 아버지의 카드까지 갖다 쓰면서 다시 8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만들어냈다. 김근우는 또 부모에게 빚을 해결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더 이상 부모도 빚을 감당할 수 없었다. 김근우는 뜻대로 되지 않자 2002년 12월 가출했고, 고시원을 떠돌았다.
◇ 엄마, 할머니 순식간에 살해한 후 형, 아버지 기다렸다
빚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았던 김근우는 2003년 6월 9일 밤 10시께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빚을 갚아달라고 요구하다 다툼을 벌였다.
어머니가 부탁을 거절하며 자신을 나무라자, 김근우는 팔로 어머니의 목을 감아 질식시킨 후 베개로 얼굴을 눌러 확인 사살까지 했다. 이어 작은방으로 들어간 김근우는 할머니마저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약 한 시간 뒤 형이 귀가하는 소리가 들리자, 김근우는 부엌에서 18㎝ 길이의 칼을 가져와 현관문 옆에 숨었다. 김근우는 방으로 들어가는 형의 뒤에서 15차례나 칼을 휘둘렀고, 형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졸도해 버렸다.
뒤이어 술자리를 가진 후 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집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김근우는 집안의 모든 불을 끈 후 아버지를 기다렸다. 갑자기 불이 꺼진 걸 수상하게 여긴 아버지는 문을 열려고 하다가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해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아버지, 빨리 들어오세요. 안 들어오면 형이 죽어요"라고 협박하는 둘째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잠시 갈등했으나 바로 도망쳐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이 집에 도착했을 때 김근우는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김근우 도주 후 병원으로 옮겨진 형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 카드 빚 패륜아, 살아남은 가족에게 탄원서도 요구했으나 사형 선고
김근우는 부천과 인천 일대의 PC방을 전전하는 도피 생활을 하며 여자 친구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는 범행 1시간 반 만에 보낸 메일에서 "오늘 식구들 '작업'했다가 실패했어. 엄마랑 할머니까지 성공했고 형도 거의 성공해서 아빠만 남았는데 아빠가 현관에서 도망갔네"라며 일말의 반성조차 없는 모습을 보였다.
김근우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인적 사항으로 메일을 보냈다. 또 "아빠가 경찰에 신고해서 자기한테까지 연락이 들어갈지 모르니까 이거 바로 지워"라며 증거인멸을 부탁하기도 했으나, 닷새 만에 PC방에서 자신에 대한 뉴스를 검색하던 중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김근우는 "아버지는 어떻게 자식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전혀 신경 안 쓰고 자기 체면만 차리냐, 그걸로 처음에 싸움이 시작됐다"며 "진작에 돈을 줬으면 안 그랬을 거 아니냐. 돈을 안 줘서 죽였다"고 말해 형사들을 경악게 했다.
재판 과정에서 김근우는 뻔뻔하게도 살아남은 아버지와 형에게 탄원서를 부탁했으나, 가족들은 거부했다. 결국 김근우는 1·2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고 2004년 6월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해, 김근우는 현재 미집행 상태로 수감 중이다.
syk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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