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낙후됐으니 세금으로 뭐든 지어줘라? 이게 합리적인가
공정을 위해, 가장 철저하고 보수적이어야 할 정부가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국가가 되었다. 특히 무언가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려 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삶이 팍팍한 국민이 정말 힘들게 모아준, 세금을 가지고 하는 사업일 터이니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숨기는 것이 많아지고, 공개하는 정보의 왜곡과 조작이 이어진다. 가덕도 신공항 추진과정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부산시는 대한민국, 나아가 동북아를 대표하는 선진도시답게 환경보전에도 앞장서는 도시임을 부각하고자 정밀 자연환경조사를 기반으로 한 친환경 도시정책 추진을 표방한다. 친환경 지속가능도시행정을 위해 부산시는 자연환경조사를 시 조례로 지정하여 정기적으로 정밀자료를 구축하고 있다. 부산시가 내세우는 자연환경조사의 목적은 '부산시에서 수행되고 있는 많은 정책들이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정보가 없거나 혹은 분산 관리되고 있어 시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자연환경부문이 소홀이 취급되고 있는 실정일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환경관련 자료들이 단순히 문서자료로만 존재하여 도시계획과 같은 공간적인 정책 결정 시에 자료로써의 이용성이 낮고, 오해나 왜곡이 발생하여 정책결정의 오류를 범할 수 있'으니,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시는 이를 위해 '자연환경보전법' 제30조 3항 및 '부산광역시 자연환경보전조례' 제7조에 따른 자연환경 보전실천계획의 수립 및 시행을 위한 자연환경조사를 매 10년마다 진행하고 있다.
조례에 의한 첫 조사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두 번째 조사는 그 10년 후인 2013년부터 2016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지금은 또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러 3차 자연환경조사가 부산시 전역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직 3차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가장 최근의 부산시 자연환경조사보고서는 2차기 보고서가 된다. 이 조사는 부산시가 밝히는 바와 같이, 부산광역시 전역의 자연환경특성을 정밀하게 조사하여 객관적인 평가를 진행한 후 공간별로 적정한 보전계획 수립에 활용할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특히 이 보고서에는 부산광역시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판단되는, 보전이 필요한 우수생태계지역을 선정하여 제시하고 있다.
3년간의 철저한 조사를 거쳐 확인된 우수생태계지역은 불과 몇 곳 되지 않는다. 개발에 과몰입된 부산시가 그동안 환경보전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동부산권역에서 7개소, 중부산권역에서 6개소, 서부산권역에서는 단 3개소만을 우수생태계지역으로 선정하였다. 대부분 선정된 지역은 면적이 그리 넓지 않기에, 지금은 우수하지만 그리 안정적이지는 않다. 10년 전에 비해 우수한 생태계가 늘어야 하는 게 일반적이겠으나, 오히려 7개소나 줄어든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가덕도는 1차 자연환경조사에서 제시된 우수생태계지역이 무려 5개소가 선정되어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우수생태계지역을 확보하고 있던 지역이다. 부산시는 이 중 한 곳인 가덕도 동백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기념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2차 자연환경조사에서도 가덕도에서 우수생태계지역 2개소가 선정된 바 있다. 이렇게 부산시 전역을 평가한 후 우수생태계지역으로 선정된 곳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으로 보호해야 할 지역이 바로 지금의 공항부지이다. 현 공항부지는 부산시가 이렇게 가장 중요한 우수생태계지역으로 인정하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자연환경부문이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하고자 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후 드러난 부산시의 행정은 도저히 정부기관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줬다.
지난 2021년, 가덕도를 취재하던 한 기자와 통화하면서 겪은 일이다. '부산자연환경조사보고서'에 관한 내용을 얘기하면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가덕도 자연환경 내용에 대해 동일한 보고서를 확인하면서 대화를 하는데, 대화가 되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야 확인된 것은, 같은 보고서인데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인쇄가 된 책자였고 다른 하나는 부산시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PDF파일이었다. 당연히 같아야 할 보고서가 각기 달랐던 것이다. 이유는 부산시가 가덕도의 중요성을 기술한 보고서의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했기 때문이었다.
부산시가 삭제한 문장은 아래와 같다.
가덕도권역에는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Ⅱ등급인 대흥란이 서식하고 있었다. 한국의 희귀식물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6개 범주 중 위기종에는 대흥란 등 1종, 취약종에는 애기등, 야고, 세뿔석위 등 3종, 약관심종에는 개족도리풀, 아팝나무, 두루미천남성, 검팽나무 등 4종, 자료부족종에는 토현삼, 옥녀꽃대 등 2종이 조사되었다. 가덕도권역은 서부산권역에서 가장(많은)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또한 보호종 및 희귀종도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해당 문구 아래에는 '가덕도권역에 서식하는 주요 식물'이라는 제목으로 한 열에 4장씩 2열로 8장의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 중 멸종위기종으로 법적 보호대상이 되는 대흥란이 포함된 윗열 4장의 사진이 통째로 삭제되어 있었다. 원 보고서에 있었던, 가덕도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대흥란의 서식을 알리는 내용이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보고서는 한 곳만이 아닌, 여러 곳에서 수정된 내용이 확인되었는데 하나같이 모두 가덕도의 중요성을 언급한 부분이었다. 바뀐 내용을 한 곳만 더 보자.
...... 가덕도의 어음포골 계곡 주변부에는 또 다른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인 대흥란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
라는 원문보고서에서 '가덕도의 어음포골 계곡 주변부'라는 구체적인 위치 대신 '서부산권역'이라고 바꿔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또 다른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인 대흥란이 서부산권역에 서식하고 있었으며, ......
이렇게 보고서의 내용이 뒤바뀌면서 응당 가덕도에 있음을 알아차려야 하는 멸종위기생물종이 부산 어딘가에 있다는 식으로 뒤바뀌게 된 것이다.
이번에 다시 진행되는 제3차 부산자연환경조사보고서에는 가덕도의 이 곳을 어떻게 기술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과연 20년 동안 부산 최고의 우수생태계를 유지하는 지역이라 했던 곳이고, 지난 조사이후 10년 간 어떠한 훼손도 없이 더욱 안정적으로 발달한 곳을 말이다.
부산시의 이런 정책은 비단 가덕도 공항건설예정지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부산시는, 국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전문가들이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동북아를 대표하는 물새서식처인 낙동강하구 보호지역을 가로지르는 교량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서 제출당시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었다. 교량건설이 멸종위기종인 고니류의 서식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는 연구논문을 인용하면서, 개발에 따른 부정적 환경영향이 거의 없다는 주장이 마치 학술적으로 인정된 것처럼 적시하여 낙동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하였다. 확인해보니, 해당 인용문건은 당시 그 어디에도 출간된 바 없는, 즉 어느 것도 검증되지 않은 유령문건이었다. 더 살펴본 결과, 이 내용은 부산시 환경분야를 책임지는 고위직 공무원 한 사람이 책임저자로 작성한 문건으로, 교량건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의도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결국, 부산시는 고위공무원을 동원하여 있지도 않은 문건을 마치, 공신력 있는 학술지에 게재된 것처럼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던 것이다. 그리고 보호구역을 개발해도 환경문제가 적은 것처럼 평가서를 작성했다. 핵심은, 인용할 수 없는 문건을 활용하여 환경부의 행정을 기만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가 같은 정부의 일원인 부산시의 고위공무원에 의해 벌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울 뿐이다.
이런 황당한 상황은, 교량건설이 멸종위기야생조류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부산시의 주장과 전면 배치되는, 낙동강하구에서 고니류의 안정적 서식을 위해서는 교량이 없는 일정길이(약 4km 이상)가 필요하다는 학술연구결과가 나온 직후 벌어졌다. 해당 연구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급조한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호지역 관통 교량건설에 차질이 생길 우려에 고위공무원이, 객관적이어야 할, 환경부에 제출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오염시킨 것이다.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을 관통하는 또 다른 교량건설 추진과정에서도 후진적인 부산시의 행정문제는 고스란히 발생했다. 멸종위기종서식처 훼손 문제의 심각성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문제가 없다는 부산시의 대립을 중립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환경부는 각각 추천 전문가를 초빙하여 공동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 조사과정에서 고니류는 부산시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지역에, 시민단체가 제시한 곳에서 압도적으로 관찰되고 있었다. 이러한 관찰결과가 이어지자 부산시는, 고니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배를 몰아 돌진해 모두 쫓아버리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한겨울 추위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견디는 고니들을 위협해 쫓아내면서까지 조사결과를 오염시키려 했던 것이다. 환경변화에 민감한 멸종위기종은 이렇게 몇 차례 위협이 가해지면 그 지역을 찾지 않게 된다. 이 장소는 다름아닌 부산시가 보호지역 내에 교량을 건설하려 하는 그 지점이었다. 휴식을 취하는 고니들에 부산시의 배가 돌진하는 현장을, 마침 해당 지역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다른 전문가에 의해 고스란히 영상으로 찍혔음에도 뻔뻔함은 그대로였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개체가 찾아오던 낙동강하구의 고니는 환경적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틀에 박힌 평가서를 제출한 을숙도대교 건설이후 단 몇 년 만에 급감하여 이제는 낙동강하구 전역에서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이렇게 검증되었음에도 또다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객관적 업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자료를 오염시키면서,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개발행위를 추진하려 하는가? 만약 개발 행위가 정당하다면 모든 정보는 당연히 모든 국민에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스스로 부정한 일들을 저지르면서까지 사실을 숨기는 것은 추진하는 행위가 정당하지 않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임을 방증하는 것일 뿐이지 않은가?
신공항 계획에서 후보에도 없었던, 갑자기 툭 튀어나온 가덕도신공항은 그 진행과정 자체가 모순덩어리다. 2016년 6월, 국토부의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에서 타당성이 가장 높다고 한 김해공항의 확장계획은 왜 사장되었을까? 절대 그렇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영남권에 신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면, 타당성이 높은 곳을 배제하고 굳이 타당성이 낮은 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항건설의 타당한 이유가, 객관적 정보를 숨긴 목소리 큰 몇몇 사람들의 주장이라 한다면 세상 그 어떤 개발이 타당성이 없겠는가?
2011년에는 동남권신공항 후보지 모두가 환경훼손 우려가 크고 경제성이 미흡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대체 백지화되었던 대규모 토건사업이 선거때만 되면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온갖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은 없고, 오직 왜 부산시민의 숙원사업을 반대하는가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난만 있을 뿐이다.
"타당성을 면제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자연스럽게 "타당성이 없다”라고 읽힌다. 타당성이 없음에도 해야되는 이유를 정당하게 제시할 수조차 없으니, 아예 대놓고 타당성 같은 것은 보지 말자고 하는 것 아닌가? 타당성이 없는 사업을 왜 전국의 모든 국민이 낸 세금으로 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동네는 낙후되었으니 세금으로 아무거나 지어줘라'는 주장이 어떻게 타당하고 합리적인가?
지금 필자가 거주하는 곳은 버스조차 잘 다니지 않는다. 대중교통 이용 자체가 원활할 리가 없는 그런 곳이고, 한번 버스를 타려면 제대로 된 도착시간조차 없어 정류장에 나가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동네 어르신들은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계신다. 비행기를 타려면 김해공항을 이용한 환승조차 불가능하다. 당연히 동네에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과거 천 명을 넘어가던 초등학교 학생은 이제 폐교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런 동네가 되었다.
그래서, '이 곳은 낙후되었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도농 균형발전을 위해 지하철을 건설해달라'라는 주장이 그 어떤 설득력을 얻는단 말인가? 지하철이 이 마을에 건설되면 균형발전이 되는건가?
시대에 뒤떨어진 대규모 건설사업이 먼저가 아니라, 젊은 청년들이 오게 할 청년복지가 먼저인 이유이다. 그래서 공항을 건설할 비용으로 청년행복수당(어떤 용어라도 좋다)을 지급해주자고 주장하는 바이다. 오랫동안 소외받아온 부울경 청년들에게 말이다. 그게 부산시가 젊은 도시로 탈바꿈하는 방법이자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들의 미래를 그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지원하자. 도시는 우리 세대가 살아갈 미래가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도시는 선진도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덕도는 우리가 미래세대에 남겨줄 부산에 단 하나뿐인 해안가 극상림이며, 과거 부산시가 스스로 인정한 훌륭한 자연자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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