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전쟁에서 전면전으로, 이란 VS 이스라엘 충돌···중동 위기 고조되나 (이슈 PICK 쌤과 함께)[채널예약]

손봉석 기자 2024. 6. 9.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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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7시 10분 KBS1 ‘이슈 PICK 쌤과 함께’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그림자 전쟁’과 중동의 끝나지 않는 대립에 대해 알아본다.

올해 5월 19일 이란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를 당해 사망하면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살얼음판을 걷던 중동 정세에 다시 한 번 큰 파장이 일었다. 지난 4월에는 이란과 이스라엘 직접 충돌로 인해 전 세계가 공포에 떨기도 했다. 다행히 소강 상태에 접어들긴 했지만 이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슈 Pick 쌤과 함께’에서는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 교수를 초대해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두 나라의 갈등이 중동 정세, 그리고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란은 4월 13일 밤부터 4월 14일 새벽에 걸쳐 이스라엘에 탄도·순항미사일 수백 기를 발사하고 드론 공격을 강행했다. 패널들은 당시 상황을 영상으로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란, 이스라엘의 전면전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왜 일어나게 된 것인지 다시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강연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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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명확했다는 것이 박교수의 설명. ‘4월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격했기 때문이다.’이라는 것.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해가면서까지 영사관을 공격한 데에는 이란 영사관이 ‘시리아’에 있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박교수는 강조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거리가 1,600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타이완까지의 거리보다 더 먼 것이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그간 전면전이 아닌 대리전, 즉 비공식적으로 상대를 은밀히 공격하는 ‘그림자전’을 펼쳐왔다. 시리아는 이란이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데 있어 핵심 거점이었고, 때문에 이번 영사관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 측은 ‘자신들이 공격한 곳이 친이란 무장조직 헤즈볼라를 관할하는 지휘통제소였다’는 입장이다.

많은 양의 미사일, 드론을 날렸지만 이스라엘이 99% 이상 막아내 한편에서 ‘약속된 공격’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박 교수는 이란의 표현을 빌려 ‘적절히 잘 조율된 공격’이라고 표현했다.

이란은 이스라엘 공습 72시간 전, 주변국에 공격을 사전 통보했고 이 때문에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 이란이 잘 조율된 공격을 한 이유는 확전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또한 이란의 핵 시설이 위치한 에스파한 지역으로 보복 공격을 시도했지만, 이란 측은 피해 사실이 없다고 발표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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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 교수는 사실 이란-이스라엘이 지금과는 달리 1970년대까지만 해도 좋은 관계였다고 하여 패널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페르시아 제국 때, 이란이 예루살렘 유대인들을 보호해주었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인정해준 나라였다고 한다.

이란 팔라비 왕조 시기, 이스라엘은 최대 석유 생산국인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공급받았고, 에일라트-아슈켈론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란에서 들여온 석유를 유럽에 팔기도 했다. 두 나라는 송유관, 항만 시설을 운영하는 합작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란이 이스라엘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기도 했으며, ‘프로젝트 플라워(flower)’라는 탄도미사일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하여 다시금 패널들이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원만했던 두 국가가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기점으로 고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친미, 친이스라엘을 지향했던 팔라비 왕조에 대한 반발이 이란혁명으로 비화돼 팔라비 국왕은 해외로 망명을 하게 되고, 결국 당시 종교지도자였던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혁명정부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호메이니는 이스라엘을 ‘위대한 사탄에 기생하는 작은 사탄’이라고 선언하면서 모든 공식 관계를 단절하게 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직접 개입, 지원을 하기 시작하며 두 국가 간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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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이란의 체제 수호와 반이스라엘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슬람 혁명수비대(ISRG)’라고 강조했다.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정규군과는 별도로 만든 군사조직인데 이슬람 체제 수호를 위해서는 자국 정규군도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군대이다. 혁명수비대는 정규군보다 숫자는 적지만 무기와 전투력은 훨씬 우위에 있고, 건설, 석유, 가스 등 주요 기간산업을 장악하고 있어 매년 움직이는 돈은 이란 GDP의 30%에 해당할 정도이다. 가장 중요한 사용처 중 하나는 이란을 중심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는 시아파 세력, 즉 ‘시아벨트’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란은 1982년 당시 내전 중이었던 레바논의 시아파 중심지인 남부에 반이스라엘 항쟁 조직 헤즈볼라를 만들었다. 이후 자금, 무기, 전투요원 훈련 등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헤즈볼라는 2006년 일어났던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에서 승리하며, 이스라엘의 첫 공식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다. 이란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이라크-시리아-헤즈볼라, 남으로는 예멘반군으로 이어지는 시아벨트가 지금처럼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역할이 있었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집권을 하게 되고, 시리아와 레바논으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리면서 시아벨트가 비로소 완성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이란을 가장 위협적인 적대국가로 여기는 이유는 바로 이란의 핵개발 가능성이다.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의 침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열핵무기를 비롯해 전술핵무기 등을 보유하면서 핵무기 보유에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한편으로는 어떠한 아랍 국가도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테러 등의 방법을 동원해 핵 개발을 저지하는 핵 우위 전략을 구사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2002년 이란 반정부 단체가 (MEK)가 핵 개발 시도 정황을 공개한 이래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 시설로 추정되는 곳을 파괴하고, 이란 핵 개발자 6명을 암살하기도 했다. 국제 사회에서도 이란의 핵무기 보유 움직임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특히 미국은 트럼프 집권 시기인 2018년 이란과의 핵 협정에서 탈퇴하고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의 환율이 급격하게 뛰기 시작해, 지금은 15배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박현도 교수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끝나길 바라고 있지만, ‘하마스를 궤멸’하겠다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의 의지가 꺾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또한 이스라엘의 시온주의가 멸망하는 날짜의 카운트다운을 세는 전광판을 설치할만큼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 박 교수는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중동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라고 전했다. 국제 사회가 팔레스테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행동을 보여야 중동에 평화라는 희망이 싹틀 것이라 강조하면서 강연을 끝마쳤다.

‘이슈 PICK 쌤과 함께’에서 ‘그림자 전쟁에서 전면전으로 이란 VS 이스라엘 충돌–중동 위기 고조되나’를 9일 저녁 7시 10분에 확인할 수 있다. 방송 후에는 KBS홈페이지와 wavve, 유튜브 KBS교양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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