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는 노예? 한국사 강사 황현필이 조선일보에 "사과하라" 한 이유

금준경 기자 2024. 6. 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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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노비', '노예'로 규정해 현대사 의미 강조
노비제도 한계 뚜렷하지만 '노예'와 차이 적지 않아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 쇼츠 콘텐츠 갈무리

조선시대 노비 제도를 둘러싼 공방이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가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황현필 한국사 강사(역사바로잡기 연구소장)가 조선시대 노비제를 옹호한다며 그를 '국뽕 강사'라고 비난하고 나섰고, 황현필 강사는 반박하며 송 교수를 '친일매국사관'이라고 응수했다. 황현필 강사는 조선일보를 가리켜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이런 게 무슨 언론이야”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국뽕 강사' 비난 vs '친일매국사관' 반발

발단은 지난 1일 조선일보의 <거짓, 과장, 허언, 선동… 어느 “국뽕” 한국사 강사의 마지막 수업> 칼럼이다. 이 글은 송재윤 교수의 연재 칼럼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의 한 편이다.

송재윤 교수는 황현필 강사의 유튜브 콘텐츠 중 노비제를 옹호하는 내용이 있다고 지적하며 반박한다. 송재윤 교수는 “(황현필) 유튜버가 조선 500년을 통틀어서 양반 주인이 노비를 살해한 기록이 10건 이상 나오면 강의를 그만두겠다고 공언했다”며 관련 기록 13건을 제시했다.

송재윤 교수는 “'국뽕' 중독의 그 유명한 한국사 강사는 이제 스스로 공언한 대로 마이크를 놓고 강의를 그만둬야 할 것”이라며 “역사 교사를 자처한다면 부디 100만 구독자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공언한 바를 그대로 지키길 바란다”고 했다. 관련 기록 10건 이상 나오면 강의를 그만두겠다고 했으니 강의를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칼럼은 전제가 잘못됐다. 황현필 강사가 유튜브를 통해 언급한 내용은 “조선 500년을 통틀어 양반 주인이 노비를 살해하고도 처벌 받지 않은 기록이 10건 이상 나오면 강의를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황현필 강사는 '노비를 살해하고도 처벌 받지 않은 기록'을 말한 반면 송재윤 교수는 '노비를 살해한 기록'으로 대응한 것이다.

▲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 콘텐츠 갈무리

황현필 강사는 유튜브 반박 영상을 통해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이런 게 무슨 언론이야”라며 “허위보도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하시고 정정보도하라”고 했다.

그는 “언제 노비제도를 옹호했냐”며 과거 영상에서 '신분제도는 안타깝다'고 밝힌 대목을 다시 언급했다. 황현필 강사는 일각에서 일제강점기 들어 인권문제가 크게 개선된 것처럼 일제강점기를 정당화하고 조선을 폄하하는 상황에서 실제 조선의 노비제는 편견과는 차이가 있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송재윤 교수가 영화 '건국전쟁'에 출연한 점 등을 언급하며 “친일매국적 사관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했다.

송재윤 교수는 지난 3일 칼럼을 통해 “꼼꼼히 그의 강의를 다시 청취하지 못한 점은 나의 잘못이다. (중략)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면서도 노비 살해 후 제대로 처벌 받지 못한 사례를 제시하며 재반박했다. 그러자 황현필 강사는 유튜브 커뮤니티 게시글을 통해 다시 반론을 올리면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노비제 논쟁, 왜?

조선의 노비제를 둘러싼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의 노비를 인권이 완전히 박탈된 '노예'와 동일하게 볼 것이냐가 주된 쟁점이다.

송재윤 교수는 칼럼을 통해 “조선은 노비의 법적 권리를 완전히 박탈한 노예 국가”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초 막말 논란 끝에 사임한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은 “여성노비는 외거를 하더라도 양반 주인이 수청을 요구하면 함께 밤을 보내야 하는 처지였다는 것은 역사학계에서는 일반화된 이론”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대표적인 뉴라이트학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이승만TV' 유튜브를 통해 “조선왕조의 정체는 노예제 사회”라고 했다.

▲ 송재윤 교수의 조선일보 칼럼 기사 갈무리.

'노예'라는 점을 강조하면 조선은 근대까지도 자국민 30% 이상을 노예로 부린 아주 이례적인 후진적 국가라는 점이 강조된다. 이 논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건국'의 가치에 방점을 찍는 식으로 이어진다. 송재윤 교수가 해당 칼럼을 통해 “자유, 민주, 독립, 인권, 법치 등을 건국이념으로 내건 대한민국은 주자학을 선양하면서 가혹한 노비제를 유지·강화했던 조선왕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나라”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황현필 강사처럼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쪽에선 이 같은 주장이 조선을 의도적으로 폄훼한 것이라고 본다.

조선의 노비는 '노예'였을까

진영에 따라 역사적 공방이 팽팽한 경우가 많지만 조선의 '노비'를 외국의 '노예'와 같은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근거들이 있다.

2022년 김성회 전 비서관의 주장에 조선사 전공자인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노비들은 양반 신분의 자기 주인에 맞서 대등한 재판을 벌일 수 있는 소송권을 가졌고, 남녀 모두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소유권도 지녔다. 노비 여성 전체가 양반의 성노리개였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노비의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있지 않았다. 법으로 보호를 받았다. 이것이 그리스로마 이집트의 노예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했다.

실제 조선의 노비는 다양한 범주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김종성의 저서 <조선 노비들>은 “노비가 주인과 사회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느냐는, 개별 노비가 노예에 가까운지 농노에 가까운지에 크게 좌우됐다”며 “솔거노비로서 노예에 가까울 경우에는 주인이 함부로 대하기 쉬웠지만, 외거노비로서 농노에 가까웠을 경우에는 주인이 함부로 대하기가 힘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의 사노비는 주인과 함께 사는 솔거노비와 따로 사는 외거노비가 있었는데, 외거노비는 사실상 농노와 유사했다는 내용이다.

재산을 증식해 부자가 된 노비들도 있다. 태종실록엔 불정이라는 노비가 장사를 해 큰 돈을 벌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노비들> 책은 “부자가 된 노비들 중 일부는 축적한 재산으로 토지나 가옥 등을 매입했다”며 “(소수지만) 노비가 노비를 소유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조선의 노비제: 노예인가, 농노인가> 논문은 17세기 경상도 일대의 호적 분석을 토대로 주인 집안에서 독립된 외거노비의 증가, 병작노비(땅을 빌리는 대가로 수확물의 일부를 바치는 방식)로의 이행이 주요한 추세였다는 점을 언급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예와 거리가 먼 노비가 늘어나는 추세였다는 것이다.

조선시대가 엄격한 신분제 사회를 유지하고 있었고 변화에 능동적 대응을 하지 못한 한계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노비의 형태를 '노예'로 동일시하기는 차이가 적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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