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르포] '학창 시절 추억'과 함께 사라지는 우리 동네 문구점

서예원 2024. 6. 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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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대형 유통기업 진출' '학습 준비물 지원제도'도 쇠퇴에 한 몫

2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문구점 '색연필'을 운영하던 류 씨가 지난달 8일 본인이 직접 작성한 폐업 안내 문구를 매장 천막에 붙이고 있다. /서예원 기자

폐업을 보름 앞둔 문구점에 '전 품목 할인판매' 문구가 붙어있다.

[더팩트ㅣ서예원 기자] "그만하시는 거예요?" "추억이 있는 곳인데 너무 아쉽네요"

지난달 8일 아쉬운 마음에 질문을 퍼붓는 손님들을 뒤로하고 문구점 '색연필'의 점주 류 모 씨는 안쪽 서랍에서 색지 두 장을 꺼내며 펜을 들었다. '20년 동안 색연필을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5월 15일까지 점포 정리합니다'

내심 아쉬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적은 감사 인사를 매장 입구 천막에 붙였다. 이곳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새 학기를 맞아 학부모와 초등학생들로 붐볐지만, 지금은 적막만 흐른다.

문구점은 과거 등하굣길 학생들이 준비물과 장난감 구매, 오락기 이용, 불량식품을 사 먹기도 하는 그야말로 어린이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그렇게 없는 게 없던 '초등학교 앞 만물상' 문구점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 저출산·코로나·대기업 진출 '3중고'에 동네 문방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35년 동안 운영되고 있는 A 씨의 문구점. 취재진이 3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어린이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 1만 4731여 개이던 전국 문구점 수는 2019년 가파르게 감소해 9468개가 됐다. 한국문구유통협동조합이 지난 3월 발표한 전국문구점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국 문구점의 수는 약 7800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강남구에서 35년 동안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적자로 이어지는 매출에 폐점을 앞두고 있다. 지난 1일 취재진과 만난 주인 A 씨는 "추억이고 뭐고 이제 그런 건 없다"면서 "나이가 들어 할 수 있는 게 마땅치 않아서 문구점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예전에는 근처에 있던 문구점이 7개가 넘었다. 인구가 줄면서 다 없어지고 지금은 나만 남았다"고 말했다. A 씨의 문구점은 초등학교와 약 100m 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인근 초등학교의 총 학생수는 200명 대로 한 반에 20명도 채우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문구점 앞을 지나치는 어린이.

문방구 폐업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주원인으로는 저출산이 꼽힌다. 주소비층인 아이들이 저출산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소년정책분석평가센터는 올해 전국 초등학교 학령인구를 247만3687명으로 예상했다. 20년 만에 39.9% 줄었다. 5년 뒤인 2029년에는 올해보다 25.97% 감소한 183만1251명에 그칠 전망이다.

또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 1학년 예비 소집 인원은 36만 9441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수(4월1일 기준) 40만 1752명에서 1년 만에 3만 명 넘게 줄었다.

대형 유통기업으로 인해 동네 문구점은 경쟁력을 잃었다.

2006년 약 60만 명이었던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2007년 54만 명에서 2008년 47만 명으로 급락한 뒤 등락을 반복해 왔다.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감소하는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취재진과의 만난 A 씨는 "내가 지금 여기서 앉아 있는 자체가..."라고 운을 띄우고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괴롭다"라며 씁쓸해했다.

지난달 문 닫은 강남구 한 문구점 앞에 적힌 편지. "온라인이나 대형마트에 비해 비싼 가격임에도 일부러 찾아주셨던 분들, 참 눈물 나게 고마웠다"고 적혀있다.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외에도 점주들은 대형 유통기업이 동네 문구점을 위협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대형 매장에서는 1000원에서 2000원 정도의 싼 가격에 문구와 과자 등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보니 하교 후 문구점 앞을 서성이던 아이들의 발걸음은 어느새 대형 매장을 향하고 있다.

강남구에서 7년 반 동안 문구점을 운영하다가 지난달 문을 닫게 된 B 씨. 지난 2일 취재진과 만난 B 씨는 "문을 닫게 된 데에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결정타는 대형 유통기업이다"면서 "우리가 5000원 파는 물건을 1000원이나 2000원에 판매하니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며 한탄했다.

대형 매장에서는 1000원에서 2000원 정도의 싼 가격에 문구와 과자 등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생활용품 판매점인 다이소는 지난해 기준 직영점 1022개, 가맹점 497개로 총 151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다이소의 전국 매장 수는 △ 2020년 1339개 △ 2021년 1390개 △ 2022년 1442개로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골목상권까지 확장된 대형 매장의 영향력으로 인해 영세한 문구점들은 경쟁력을 이미 잃어버렸다.
문구점 입구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점주 B 씨의 편지가 붙어 있다.

문구점 입구에는 점주 B 씨가 작성한 편지가 붙어 있었다.

"학원 가는 길에 포켓몬 카드 한 장을 매일같이 사러 오던 초등학생 소년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사무용품을 사러 들르기도 했다"고 추억하면서 "작은 동네 문구점이라 물건도 많지 않고 온라인이나 대형마트에 비해 비싼 가격임에도 일부러 찾아주셨던 분들, 참 눈물 나게 고마웠다"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B 씨의 문방구 계산대 옆에 붙여져 있는 손님의 쪽지.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하시는 일 만사형통 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매장 안에는 단골손님의 답장으로 보이는 쪽지도 보였다. B 씨는 '앞으로 하시는 일 만사형통 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적혀있는 쪽지를 바라보면서 "이 동네 분들이나 아이들과는 다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였다"면서 "(폐업한다고 한 이후에) 먹을 것도 많이 가져다주시고, 지난주 내내 받은 게 너무 많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서울 강북구 '색연필 수유점'을 운영하는 류 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문구점을 찾은 어린이가 학용품을 구매하고 있다.

학교에서 학습 준비물을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학습 준비물 지원제도' 역시 문구점 쇠퇴에 힘을 싣고 있다.

학습 준비물 지원제도란 각 학교가 시도교육청 예산을 지원받아 125개 품목의 학습 준비물을 최저가 입찰 제도를 통해 일괄 구매한 뒤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제도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은 덜어주지만 학교 앞 문구점을 찾을 이유는 사라졌다.

강남구에 위치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4학년 한 학생은 "가끔 문구점을 방문하긴 하지만 학교에서 준비물을 잘 챙겨오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습 준비물 지원제도'로 인해 문구점을 향한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색연필 수유점'의 점주 류 씨가 폐업 인사말을 적고 있다.

앞서 문구소매업은 2015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7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됨에 따라 보호장치가 사라졌고 현재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신청을 해 둔 상태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소상공인들이 생계를 영위하기에 적합한 업종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다. 문구류가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경우 대·중견기업은 관련 사업 진출이 제한된다.

동네 주민들이 폐업 안내 문구를 붙이는 문구점 앞을 지나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없는 게 없던 '초등학교 앞 만물상' 문구점이 사라지고 있다.

장낙전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유통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로 문구점이 매년 500개씩 사라지고 있다"며 "지역 문구 소매점에 대한 보호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존폐 위기에 놓여 줄폐업을 이어가고 있는 문구점.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학습 준비물 구매 시 학교 인근 문구점에서 일정 비율 이상으로 구매를 권장한다거나 지자체의 지원 방안을 모색,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등의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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