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 女교사가 14세 남학생을…” 美실제사건 옮겨쓴 이 소설 [나쁜 책]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오자 교사는 ‘사자’의 눈빛으로 먹잇감을 고릅니다. ‘수컷이면서 남자는 아닌’ 학생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자,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분들의 표정을 상상해 봅니다. 불쾌와 혐오의 감정이 가득하실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 음란한 교사의 성범죄를 다룬 소설에 세계인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실화사건’에 기반하기까지 했고, 그 윤리성 때문에 큰 논란을 겪었습니다.
오늘은 미국 소설가 앨리사 너팅 장편소설 ‘탬파(TAMPA)’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2005년 미국을 뒤집어놓았던 데브라 라파브 사건을 소재 삼은 이 소설은 왜 논란이었을까요. 깊이 들어가 봅니다.
(※소설 속 노골적이고 외설스러운 문장은 인용에서 제외했음을 밝힙니다.)
그러나 사실 셀러스트는 소시오패스였습니다. 14세 때 처음 성관계를 맺은 이후로 ‘14세 남학생만이 자신을 성적으로 만족시킨다’고 생각하는 악한이었으니까요.
셀러스트가 거주하는 교실은 ‘부속 이동형 교실’이어서 유리창도 없었습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지요. 셀러스트는 그 안에서 남학생을 ‘포획’하는 일에 골몰합니다. 그 결과, 수줍은 표정의 잭 패트릭이 낙점됩니다.
잭은 셀러스트가 원하던 ‘완벽한 표본’이었습니다. 셀러스트는 잭의 집앞에 차를 대놓고 잭을 염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잭의 자위행위 장면을 목격합니다. 셀러스트는 비밀을 잭에게 말하고, 끈질기게 유혹해 잭과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자 셀러스트는 놀랍게도, 벅과도 관계를 맺어버립니다. 의심을 피하면서, 잭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셀러스트는 잭에게 말합니다.
◎ “네 아빠(벅)는 내(셀러스트)가 바지 올리는 걸 봤어. 인간의 뇌는 부정하기 위해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러려면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해. 네 아빠를 약간 기분 좋게 하려면 같이 저녁을 먹고 TV를 보는 것만으로 가능하지만 내가 자기의 10대 아들하고 부엌에서 바지 내리고 뭘 하고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못하게 하려면 그런 걸로는 안 돼.” (244~245쪽)
그러던 어느 날, 벅이 집안에서 사망합니다. 셀러스트의 ‘역겨운 욕망’은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요.
수위가 ‘상대적으로’ 약한 일부 문장, 셀러스트가 ‘성욕’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독백 부분을 옮겨적어 볼까요.
◎ “가끔 나(셀러스트)는 내 생색기가 인공 기관이어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곳에서 끊임없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는 사운드트랙처럼 제 요구를 내 평생에 걸쳐 허밍으로 읊어 댔다. 더구나 눈을 어디로 돌려도 거기에는 어린 사내의 몸이 있었다.” (78쪽)
남학생 제자의 동정(童貞)에 미쳐버린 여성 교사라니, ‘탬파’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상상만으로도 지탄 받아 마땅한 책인데, 그러나 언론과 평단의 평가는 우리네 생각과 차이가 컸습니다.
물론 ‘탬파’ 출간 직후 유통과정이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출판사는 미국에서 이 책의 표지에 ‘CAUTION’이라는 붉은 글씨의 딱지를 붙여 판매했고, 일부 서점은 항의 때문에 판매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 작가 앨리사 너팅은 구역질 나는 소설 ‘탬파’를 왜 집필했을까요.
두 번째 질문, 세간의 역겨운 평가 너머에서 해외 매체들은 ‘탬파’의 문학성을 왜 높게 봤을까요.
그 비밀은, 지금 독자분들이 지금 이 글을 읽으시면서 느끼시는 바로 그 ‘불편한 감정’에 답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더 깊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문제의 여성은 1980년생으로 모델 출신의 여성 교사 데브라 라파브(Debra Lafave). 라파브는 남편을 둔 학교 선생으로 ‘만 14세 남학생’과 교실과 집, 그리고 차량 뒷좌석에서 여러 차례 성관계를 맺었다가 피해 학생의 친척에게 적발되어 미국 내에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사건 당시 그녀의 나이는 ‘탬파’의 셀러스트와 동갑인 26세였습니다.
라파브는 ‘30년 징역형’이 거론됐지만 실제로는 3년간의 가택연금, 7년간의 보호관찰을 판결 받았습니다. 하지만 7년을 채우기도 전에 대법원은 보호관찰을 종료해 버리지요. 18세 미만의 청소년과는 ‘감독 없이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조건이 붙었는데, 그녀는 이 규정을 어겼다고도 외신은 전합니다.
라파브는 흔히 ‘서양 미인’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백색 금발에 커다란 푸른 눈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당시 그녀가 법정에 서거나 청문회에 설 때마다 미국 언론은 라파브를 찍은 사진으로 지면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발견됩니다.
‘탬파’의 작가 앨리사 너팅과 전직 교사 출신의 성범죄자 데브라 라파브는 ‘고교 시절 친구’였습니다.
이 문제는 정말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기억하시는지요. 뉴욕 출간된 직후 외설성 때문에 법적 논쟁을 거쳤지만 그와 동시에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최소 5000만부 이상), 동시에 평단에서도 극단의 호평을 받아 ‘20세기 고전’으로 평가받는 명저입니다.
특히 ‘어린 소녀에 대한 남성의 성적 동경’을 뜻하는 롤리타 신드롬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냈지요. 심지어 두 차례나 영화로 제작된 바 있습니다.
‘30대 후반의 남성 험버트가 12세 소녀 롤리타의 육체에 첫눈에 반한다 → 험버트는 소녀의 몸을 갈구하다 소녀의 어머니 헤이즈와 결혼한다 → 새 남편(험버트)이 자신이 아니라, 실은 자신의 딸을 원한다는 걸 알게 된 헤이즈가 충격과 혼돈 속에서 자동차 사고로 즉사한다 → 험버트는 헤이즈의 죽음을 롤리타에게 숨기고 전국의 모텔을 떠돌면서 의지할 곳이 없는 롤리타와 성관계를 맺는다.’
앨리사 너팅의 소설 ‘탬파’는 명백하게도 나보코프 소설 ‘롤리타’의 미러링 문학(mirroring literature)입니다. 그 이유는,
① 소녀의 몸을 탐하는 30대 후반의 남성 험버트는 26세 여성교사 셀러스트로,
② 성인의 성적 대상물이 되는 12세 소녀 롤리타는 14세 소년 잭 패트릭으로,
③ 롤리타의 어머니의 사고사는 잭의 아버지 벅의 돌연사로
변용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롤리타’에 대해서는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칭송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이 소설 ‘탬파’에 대해서는 도저히 수용 불가능한 내용의 끔찍한 소설이라고 비판한다는 점입니다. 독자분들께서 위의 내용을 읽으셨던 ‘불편한 감정’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저 소설 속 주인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을 뿐인데(성별의 전환), 이 소설 ‘탬파’를 특히 거북하게 느끼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심지어 ‘롤리타’는 20세기 한 작가의 상상에 기반한 허구였지만 ‘탬파’는 21세기에 벌어진 실제 범죄 사건을 기반으로 집필됐습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현실을 토대로 창작되는 예술이라고 볼 때, 인간의, 일견 추악해보이기까지 하는 상상으로 쓴 가상의 소설과 실재의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 쓴 소설 가운데 무엇이 더 그럴듯한(핍진성) 문학이라고 평가하게 될까요. 그런 점에서, 저 ‘변태적인’ 두 편의 소설 가운데, ‘탬파’를 둘러싼 소설의 윤리성 수준이 ‘롤리타’의 그것보다 과연 낮다고 평가하는 건 치명적인 모순이 아닐까요?
소설 ‘탬파’는 ‘여성 교사-소년’의 성관계 상황을 독자로 하여금 하나의 ‘성적 페티시(성도착증)’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런데 만약 이 소설의 설정이 남성 교사와 여고생 혹은 여중생의 성관계라는 설정이라면, 독자는 ‘남성 교사-소녀’의 성관계를 페티시화(化)하지 않고 오히려 역겨워 하며 지탄했을 겁니다.
따라서 ‘남학생의 동정을 통해 이뤄지는 20대 여성교사의 충실한 자기 본능의 음란성’을 페티시화해버렸기에 이 소설은 관심을 더 끌었던 것이지요.
데브라 라파브 사건을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또 다른 여성 성범죄자가 있으니, 바로 토니 린 우즈(Toni Lyn Woods)라는 여성 성범죄자입니다.
데브라 라파브는 14세 학생과 관계를 맺었다가 ‘가택연금 3년, 보호관찰 7년’을 받았는데 토니 린 우즈는 미성년자 성범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외모가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이 늘 뒤따르지요. (이것은 심각한 성범죄 사건을 가해자 데브라 라파브의 ‘외모’와 엮어 페티시화해버린 결과라는 지적과 유관합니다.)
문학적인 장치도 상당히 많습니다. 612명의 처녀를 죽인 뒤 그 피로 목욕했다고 알려진 중세의 악녀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일화가 소설 ‘탬파’의 저변을 이룹니다. 또 비행기에 탄 채 어디론가 이송되던 소년들이 불의의 사고로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 대왕’(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도 인용됩니다.
어쨌든, 작가 앨리사 너팅이 치밀하게 계산해 세상에 내놓은 작품 ‘탬파’가 나보코프 최고의 작품 ‘롤리타’에 비해 문학성이 낮다고 볼 만한 여지는 적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롤리타’에는 하나같이 열광하면서 ‘탬파’는 거부하지요. 그것이 ‘탬파’ 논란의 본질일 겁니다.
가상국가인 ‘이갈리아’는 가부장제가 아닌 가모장제 사회로, 여성이 권력을 가진 세계입니다. 여성이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현실과 달리, 이갈리아에선 남성이 음경의 모양을 잡기 위해 ‘페니스홀더(일명 페호)’를 착용합니다.
남성들은 여성 대신 피임약을 먹어야 하고, 월경은 여성이 숨겨야 하는 일이 아니라 ‘월경 축제’를 벌일 만큼 공개적인 행위입니다. 음경 때문에 바지 착용이 불편한 남성들은 바지 대신 치마를 입습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이처럼 성역할이라는 사회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미러링 소설이지요.
‘탬파’ 역시 미러링 소설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의 한쪽 성을 어떻게 ‘피해자’로만 만들었는지를 직시하게 해줍니다.
소설 ‘탬파’는 성욕의 주체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는 설정을 통해 ‘성의 주체’라는 문제를 건드리는 일종의 금기 위반을 범했습니다. ‘탬파’의 대척점에 선 소설 ‘롤리타’의 대척점에서 말이지요.
물론 ‘롤리타’의 문학성을 폄훼하는 것이 소설 ‘탬파’의 목적은 아닐 겁니다. 이 글의 목적도 ‘롤리타’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님은 독자분들도 알아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롤리타’가 수용되는 세상에서는 ‘탬파’도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지 않을까요.
※ 다음주에는 김병익 선생의 《지성과 반지성》을 다룹니다.
하단 기자페이지에서 ‘+구독’을 누르면 [나쁜 책, 시즌2]를 쉽고 빠르게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기자Talk나 댓글로 금서를 추천해주세요. 독자분들과 함께 공부하듯이 쓰겠습니다.
“금서는 이중적인 드라마다. 하나는 책 내부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드라마이고,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이 독자를 만나기까지 치렀을 과정을 상상할 때 벌어지는 드라마다.” (『나쁜 책』, 글항아리, 2024)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영어 배울 필요 없겠다”…카톡서도 실시간 통역 서비스, 갤Z6 놀랍네 - 매일경제
- “어디 XX 있나 보자”…50대男, 식사 자리서 여자경찰에 한 짓 ‘경악’ - 매일경제
- “찾는 사람도 없는데 처분도 못해”…‘김호중 사건’에 남아도는 앨범, 어쩌나 - 매일경제
- “짧은 머리에 볼 홀쭉”…대학 캠퍼스서 포착된 전두환 손자 ‘깜짝근황’ - 매일경제
- [단독] “갑자기 돈 빠져나가면 큰일”…새마을금고에 한은 ‘즉각지원’ 길 연다 - 매일경제
- “오빠 살려주고 조용히 현장 떠났다”…장례식장서 생명구한 女공무원 ‘감동’ - 매일경제
- “동해가스전 매우 유망, 세계 석유회사들 주목”…의문점 해소 나선 美자문업체 - 매일경제
- “머리뼈는 없지만 좌절은 없다”…승무원 출신 유튜버, ‘희망 메신저’ 됐다 - 매일경제
- 명문대 진학 ‘바늘구멍’ 뚫어라...역대 최다 1300만명 응시한 中 수능 ‘가오카오’ 천태만상 [
-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도쿄올림픽이지만…” 17년의 국대 여정 마침표 찍은 배구여제, 12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