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 건넌 고양이...털끝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났어요” [퇴근 후 방구석 공방]
이승환 기자(presslee@mk.co.kr) 2024. 6. 8. 18:00
[퇴근 후 방구석 공방- 56화 동물 피규어 작가 이건학]
반려동물 떠나보낸 사람들 발길 이어져
“표정 밝아져 돌아가는 모습 볼 때 뿌듯”
반려동물 떠나보낸 사람들 발길 이어져
“표정 밝아져 돌아가는 모습 볼 때 뿌듯”
위로를 주는 피규어
“수강생의 70~80%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추모 목적으로 오시는 경우가 많고 본인이 직접 참여해서 만들었다는 부분에서 만족도도 높아요. 반려동물의 털을 잘라서 피규어 안에 넣어 만들어주길 원하신 분도 계셨어요. 주인들에게는 의미 있는 피규어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렇게 처음에 오실 때는 우울해져서 오셨다가 완성된 피규어를 보고 위로받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반려동물 피규어 나라 ‘꼭두나라’
“‘꼭두’는 ‘인형’이라는 단어 이전에 쓰이던 순우리말이에요. ‘최초’의 의미도 있구요. 이런 뜻을 함축해서 꼭두를 만드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꼭두나라’라고 지었어요. 2014년 꼭두나라를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미술 전공자는 아닌데 어릴 적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처음엔 아파트 단지 내에 작은 공간을 얻어서 시작했는데 수강생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안 돼서 지금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다 ‘직장이 아닌 내가 평생 할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막연히 동경하고 있던 피규어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피규어를 배우러 다녔어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실패할 거란 생각도 안 했던 것 같아요.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동안 직장을 다녀서 모아놓은 돈도 있었고 2012년 1월에 KBS ‘1대100’이라는 퀴즈쇼에서 최후의 1인이 돼서 우승했는데 이 상금은 뭔가를 배우는 데 투자해야겠다 싶었죠. 결심이 쉽지는 않았지만 정말 이 일에 몰두해야겠다고 맘 먹고 집중해서 매달렸더니 결과물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때부터 연습, 연습, 또 연습. 속도가 붙으면서 완성품 퀄리티도 좋아져 갔어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피규어 조형
“학교 자유학기제 강의, 성인반 수업, 의뢰작업, 개인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과목으로 피규어 조형을 가르치고 있는데 처음에는 성인 대상으로 취미 강좌를 열어보려고 지역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는데 마침 회원분 중에 자유학기제 관리하시던 선생님 눈에 띄게 돼서 시작하게 되었죠. 점점 참여 학교가 늘어서 주중에도 바쁘게 지내고 있네요.”
“학교마다 일주일에 2시간씩 진행하는데 학생들이 꽤 재밌어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나 게임 캐릭터를 선택해서 한 학기에 1인당 2개 작품 정도 만들고 있죠.”
“개인 수강생들은 내 강아지, 내 고양이의 피규어를 간직하고 싶으신 분들의 참여가 많습니다. 이게 음식 레시피처럼 보고 따라해서 바로 결과물이 나오는 게 아니다 보니 철사로 뼈대 만들고 점토로 살 붙이고 기본 색칠 정도 수강생이 진행하면 표정의 세밀한 묘사나 명암 도색은 제가 도와드리죠.”
“반려동물들에게는 정말 오랫동안 같이 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미세한 특징들이 있거든요. 저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특징들을 대화하면서 함께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사진을 보고 만드는 것보다 훨씬 싱크로율이 높아요.”
특징 있는 나만의 피규어
“강아지, 고양이도 종(種)이 같아도 비슷하긴 하지만 전부 다 다르게 생겼어요. 개인 작업을 할 때 검색해서 예쁜 강아지 사진들을 조금씩 참고하고 섞어 만드는 것보다 실제 키우는 강아지들을 모델로 해서 키우는 분들의 피드백을 받아서 탄생된 결과물이 상대적으로 훨씬 만족스러워요.”
“정면, 양측면, 뒷모습, 꼬리, 그리고 고양이들 같은 경우에는 발바닥, 젤리라고 하죠. 이게 색깔이 다르거나 무늬가 있는 경우가 있어서 발바닥 사진까지 다 참고해서 만들어요. 정수리나 뒤통수, 가르마, 색깔, 무늬가 특이하다 싶으면 그런 특징을 찾아내기도 하고요.”
“기존 기성품들을 보면 밑부분에 디테일이 대부분 없어요. 그냥 바닥에 닿는 쪽은 매끈하죠. 그걸 보고 안 보이는 부분까지 다 묘사해야겠다 싶었어요. 특히 고양이 키우는 분들은 젤리라고 불리는 발바닥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본인이 키우던 ‘페럿’을 의뢰 주신 분이 계셨거든요. 다 완성품을 받고 연락이 왔는데 발톱 하나가 부러진 채로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포장을 잘못했던 것 같아요. 저도 당황해서 사과드리고 새로 만들던 수리를 하던 원하시는대로 처리해드리겠다고 했는데 이 분 대답이 의외였던 게 그냥 그대로 간직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키우던 페럿 발톱이 실제로 하나 빠졌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는 것 같다며 이대로 간직하겠다고 하셨던 사연이 기억나네요. 그 뒤에 포장 방법을 바꿔서 지금까지 사고없이 잘 발송되고 있어요.”
해외 주문도 이어져
“해외 주문은 야생동물이 주로 들어와요. 미국 고객 중에 야생동물 피규어가 시중에 잘 나오지 않으니 만들어달라거나, 나왔더라도 좀 퀄리티가 조악한 것들을 새로 조형해달라는 의뢰가 대부분이에요. 아프리카 카라칼이라는 고양이과 동물이 있는데 모델이 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꼭 사겠다고 해서 제안을 받아 제작을 했는데 그래도 좀 찾는 분들이 계셔서 대상을 선택하는 시야도 좀 넓어졌어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동물 제품군은 계획에 없었어요. 밀리터리나 히스토릭 인물 피규어가 목표였거든요. 처음 테스트 작품으로 어린 아이랑 아기 고양이가 엎드려서 서로 쳐다보고 있는 따뜻한 느낌의 피규어를 구상했는데 만들어 놓고 보니 오히려 고양이 피규어가 더 맘에 들더라구요. 이걸 그냥 상품화시켜도 괜찮겠다 싶어 출시했던 게 시작이었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피규어 제작
“10년간 동물 위주로 했는데 영역을 좀 넓히려 하고 있어요. 근대 이전 중세의 초상화들을 보면 색감도 화려하고 정말 아름다운 초상화들이 있거든요. 그런 걸 입체화시키는 작업을 계획 중입니다.”
“오시는 분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만들면서 진행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 나가실 때는 표정이 처음 오실 때보다 밝아져서 가세요. 그럴 때 보람도 느끼고 ‘내가 참 괜찮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 그때인 것 같네요.”
“길고양이라도 한 번 더 관심 있게 바라보게 되고 작업 대상물에 대한 애정이 생기다 보니까 그 전과는 달리 애정을 갖고 보게 되면서 성격도 바뀐 것 같고요. 처음에는 제가 피규어를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피규어가 저를 좀 다른 사람으로 바꿔준 것 같은 느낌도 있어요.”
*꼭두나라 공방 -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일현로 29 (탄현동) 예일프라자 5층 510호
*꼭두나라 - https://kkokdunara.co.kr/
*이건학 작가 블로그 - https://blog.naver.com/fmlife1979/221997817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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