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최초 '편백 치유의 숲'…자연에게도 치유 공간일까 [하상윤의 멈칫]
서울 북서쪽 가장자리에 봉산이라는 이름의 나지막한 산이 있다. 높이 약 209미터의 봉산은 서울 은평구 수색동을 시작으로 구산동까지 남북으로 길쭉한 띠 모양으로 이어진다. 산 능선을 중심으로 서쪽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동쪽은 서울 은평구와 접해 있다. 지명 자체는 다소 생소하지만, 봉산은 지난 2020년부터 거의 매해 대벌레,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등 곤충이 집단 발생하며 미디어에 여러 번 노출된 바 있다. ‘특정 자연현상(곤충 대발생)이 한 지역에서 집중하여 발생하는 데는 어떠한 원인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봉산을 들여다봤다.
봉산을 끼고 있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심심찮게 ‘편백나무’가 언급되고 있었다. 은평구가 2014년부터 진행 중인 ‘봉산 편백나무 치유의 숲(힐링 숲)’ 사업의 영향이다. 이 사업은 기존 산림을 베어낸 자리에 편백나무 숲을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은평구는 ‘서울시 최초의 편백나무 숲’ 타이틀을 걸고 지난 10년 동안 봉산 내 6.5㏊ 규모 산지에 약 1만3,400그루의 편백나무를 심어왔다. 이와 더불어 은평구는 ‘봉산 무장애숲길’이라는 이름으로 봉산을 가로지르는 총 9.8㎞ 길이의 대규모 덱길(휠체어 산책로)을 조성 중이다. 이런 사업에 대해 구청이 발행한 보도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대체로 새롭게 조성된 공간의 가치를 수치화해 강조하고 있었다. 원래 있던 숲이 다 사라졌다는 사실은 '1만3,400그루', '9.8㎞' 등 압도적인 숫자들에 대부분 가려져 있다.
봉산 편백 숲을 다룬 기사마다 따라다니는 ‘서울시 최초’라는 수식은 어떠한가. ‘기후 특성상 서울에 자생하지 않는 종을 외부에서 가져다 심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또한 마냥 추앙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현장을 찾은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장은 30~40도에 이르는 경사지에 식재된 편백나무를 가리키며 “수분·양분 요구도가 높은 편백나무는 배수가 빠르고 수분 함량이 적은 경사지에서는 제대로 자라기 어려운 수종”이라며 “대부분 개체가 극심한 수분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인공 급수가 없으면 자생할 수 없는 상태다”라고 지적했다.
영양생장에 집중해야 할 시기의 어린 편백나무들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이를 본 엄 소장은 “묘목들이 생식생장을 보이는 건 ‘나 여기서 못 살겠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토록 건조하고 경사진 땅에 편백을 고집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4일 봉산 동쪽 사면 가좌로 방면 벌목·조림지의 지표면 온도를 측정한 결과, 오후 1시 기준 49.8도까지 상승했고 습도는 20%를 나타냈다. 같은 시간대 동일한 사면에 위치한 자연림은 온도 25.9도, 습도 31%를 기록하며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치유의 숲’이라는 명칭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사업은 자연에서 사람으로 향하는 서비스(피톤치드, 심미성)에 집중돼 있다. 편백나무 숲을 조림하고 휠체어 산책로를 건설해 이들을 토대로 사람들이 ‘힐링’하는 동안 동일한 면적의 숲이 통째로 사라졌지만, '숲을 치유하자'는 목소리는 소수에 그친다. 그 뒤 나타난 대벌레 집단 발생에 대한 후속조치로 살충제 희석액 9,200리터가 봉산 일대에 뿌려졌다. 그러곤 곧이어 러브버그가 대발생했다.
화학적 방제(살충제 살포)가 다른 생물들에게 예측 불가한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오자, 2022년부터는 구청이 주도해 '친환경' 방제 수단으로 등산로 주변 나무마다 끈끈이롤트랩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대벌레를 방제하는 데 성공했고 '생태계 건강성 유지에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도 나왔지만, 실제 현장에서 확인한 이 끈끈이롤트랩은 대단히 '비특이적'이어서 숲에 사는, 나무를 통로로 삼는 곤충들을 무작위로 잡아내고 있었다.
봉산은 짧은 기간 급격한 환경변화를 겪어왔다. 그 숲을 보금자리 삼았던 뭇 생명들이 받았을 악영향은 자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대벌레를 비롯한 곤충들, 변온성 동물들은 온습도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면서 “넓은 잎을 가진 활엽수종과 달리 편백나무 같은 침엽수는 태양광을 그대로 통과시키면서 지표면의 복사열을 높이는데, 자연히 고온에 내성이 있는 곤충이 더 번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봉산의 숭실고 방면 급경사지에서는 꽃잔디를 식재하는 ‘꽃동산’ 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사람들이 물 호스와 스프링클러를 동원해 수시로 급수에 나서고 있지만, 가파른 경사 탓에 활착률이 낮아 꽃동산은 민둥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현장 관계자는 “원래 편백나무를 심으려고 나무를 다 밀었는데 밀고 보니 암반 지대라 편백은 실패하고 대신 꽃잔디를 심었다”면서 “비록 2~3주지만 그때 피는 꽃이 아름다워 너무 좋다”고 귀띔했다.
한편, 본 기사가 보도된 뒤 은평구청은 10일 해명자료를 내고 “편백나무를 심은 지역은 (기존 수목) 대부분이 4영급(31~40년생) 이상으로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위해 (노령화된 나무를 어린나무로 교체하는) 영급 관리가 필요한 지역”이라며 “노령화된 나무는 강풍, 집중호우 시 쓰러지기 쉬워 안전상 위험하기도 하지만 쓰러진 후에는 이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과 인력의 투입이 필요하다”라고 기존 숲을 벌목하고 편백 숲을 조림하는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또한 “편백나무는 어린 묘부터 중부지역(포천)에서 성장해 기후환경에 순화된 수목을 도입·식재해 현재는 (식재 초기와 달리, 인공 급수 없이도) 양호한 활착 상태를 보이고 있고, 이른 봄에 개화해 현재는 꽃이 진 상태인 꽃잔디 또한 활착률이 90% 이상을 보이고 있다”라며 ‘편백 생육이 부진하고, 꽃잔디 활착률이 낮다’라는 기사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은평구는 정종국 강원대 교수 자문 내용을 바탕으로 편백나무 식재와 러브버그·대벌레 대발생 사이에 연관성이 발견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 의견서에서 “국내외에서 유사한 시기에 (대벌레가) 대발생을 하였음을 감안하면 기후적인 요소(겨울철 기온 상승, 여름철 장마 기간의 변화)가 대벌레의 대발생에 관여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라며 “대벌레의 대발생이 봉산 편백나무림 조성에 따라 촉발된 현상이 아니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언론보도에서처럼 편백나무림 조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할 학술적 근거 역시 매우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반론보도]
[반론보도] <서울 최초 '편백 치유의 숲'···자연에게도 치유 공간일까> 관련
본 신문은 2024년 6월 8일 지면 및 인터넷에서 <서울 최초 '편백 치유의 숲'··· 자연에게도 치유 공간일까> 라는 제목으로 은평구가 2014년부터 진행 중인 '봉산 편백나무 치유의 숲(힐링 숲)' 사업의 영향으로 원래 있던 숲이 사라지고, 은평구가 설치한 끈끈이롤트랩이 무작위로 곤충을 포획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은평구는 "생육이 불량한 수목이 다수 있어 건전한 산림을 가꾸고자 시범 식재한 것이고, 끈끈이를트랩은 타 자치단체에서도 널리 시행되는 친환경 방제방법으로 2022 산림청 산림병해충 방제 모범사례에도 선정된 바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편집자주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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