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행세에 대리 출산 시도…신생아 5명 판 여성의 대담한 범행 [사건 플러스]
휴대전화 복구 후 충격적 범행 드러나
수년간 아동매매 이어 대리모 출산도
주범, 1심서 징역 5년… 쌍방 항소 2심
지난해 3월 대구에서 일어난 산모 바꿔치기 사건은 경찰 수사 초기만 해도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미혼모와 불임 등의 이유로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여성이 공모해 저지른 범죄로 여겨졌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나온 휴대전화 문자 한 줄로 모든 게 뒤집혔다. 문제의 메시지는 남편이 산모 연기에 실패해 경찰에 붙잡힌 아내 A(38)씨를 비하하고 타박하는 내용이었다.
‘부부의 대화가 상식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경찰은 삭제된 휴대폰 메시지를 복구해 분석하는 디지털 포렌식 작업에 착수했다.
피의자로 입건된 부부는 경찰 조사에서 줄곧 “형편이 어려운 미혼모의 아이를 키우려던 선의에서 비롯된 불찰”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사건을 보도한 본보 등 여러 신문사에 메일을 보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거나 “아기를 낙태할 수 없어 수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일”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석 달간의 경찰 수사 결과, A씨 부부는 산모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수년에 걸쳐 돈을 받고 신생아를 매매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 ‘아동 브로커’였던 셈. 이뿐 아니다. A씨는 과거 수천만 원의 돈을 받고 대리 출산까지 했다는 사실도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드러났다.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온 여죄
A씨의 범행은 2020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 ‘불임부부인데 도와달라’는 글을 본 그는 작성자에게 곧바로 연락했다. A씨는 5,5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아이를 낳아 부부에게 건네기로 했다.
같은 해 9월 임신을 확인한 A씨는 대리모 계약을 한 불임부부 아내의 이름으로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간 뒤 정기적인 진찰을 받았고, 2021년 3월 출산했다. A씨가 임신부터 출산 후 퇴원까지 불임부부의 인적사항을 이용해 이 부부는 아이를 데려와 아무런 제약 없이 출생신고를 마쳤다.
A씨는 불임부부와 거래하면서 이번엔 반대로 미혼모와 미혼부도 찾아다녔다. 유명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 ‘형편이 어려워 아기를 키울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자, A씨는 당시 미혼이었으면서도 “불임부부인데 아이를 주면 출생신고를 하고 잘 키우겠다”는 거짓 쪽지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친구 B(37)씨도 끌어들였다. 며칠 뒤 친구 B씨가 해당 미혼모를 만나 현금 150만 원을 건네고 아기를 데려왔다. 이후 미혼모가 ‘몸이 좋지 않다’고 하자, A씨는 40만 원의 돈을 추가 송금했다. B씨는 두 달 뒤인 2020년 11월, 데려온 아기를 가정분만으로 낳은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는 남편과 함께 관할 구청을 찾았고, 출생신고를 마쳤다. 출생신고에 필요한 임신확인서와 진료확인서는 또 다른 만삭 임신부 한 명에게 부탁해 B씨의 이름으로 진찰받는 방식으로 확보했다.
A씨는 생후 19개월 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부에게도 또 접근했다. 아이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500만 원을 제시했고 선금 일부를 지급한 뒤 아이를 건네받았다.
대리모까지 제안… 더 대담해진 범행
신생아 거래에 여러 차례 성공한 A씨의 범행은 대담해졌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미혼모나 미혼부에게 접근했다면, 이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을 상대로 아이 매수에 나섰다. 의료인도 아니면서 대리출산 시술을 시도하기도 했다.
A씨는 앞서 접촉했던 미혼모에게 아기를 건네받고 불과 3개월 만인 2020년 12월 재차 연락했다. 그는 “정자를 몸에 주입해 임신이 되면 출산까지 매달 30만 원에 거주할 집과 월세, 관리비까지 부담하겠다”고 제안했다. 미혼모가 수락하자,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성에게 받은 정자를 주사기에 담아 자궁에 주입했다. 그러나 A씨가 전문 의사이거나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었던 탓인지 미혼모가 임신에 실패하면서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A씨는 이듬해 5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접속해 원치 않는 임신으로 아이 양육을 고민하는 임신부를 물색했다. 만삭 임신부 한 명을 구한 그는 밥값과 고시원 생활비, 몸조리 비용으로 총 325만4,800원을 주고 자신의 이름으로 출산하도록 한 뒤, 퇴원하는 날 산모 행세를 하고 아기를 받아갔다.
A씨는 임신부와 거래하며 동시에 아기를 원하는 불임부부를 찾았다. 이어 입양을 하고 싶어도 조건을 갖추지 못해 고민하는 불임부부 한 쌍과 접촉했다. 그러고는 먼저 만난 임신부가 낳은 아이를 자신이 낳은 것처럼 속인 뒤 700만 원을 받고 넘겼다. 아기는 불임부부의 남편이 A씨와 불륜을 저질러 태어난 것으로 출생신고 처리됐다. 이어 아내가 양자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이 부부의 아이로 바뀌었다.
병원 직원 눈썰미로 끝난 범행
A씨 범행이 탄로 난 건 지난해 3월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다. 그사이 결혼을 한 A씨는 이번에는 남편과 공모하기 시작했다. A씨 부부는 함께 인터넷 게시판을 뒤져 미혼모 D(34)씨에게 접근했다. 이전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병원 진료를 받게 한 뒤 성공적으로 출산을 마치면, 몸조리 등에 필요한 비용을 합쳐 약 284만 원을 건네고 아이를 받는 조건이었다.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하던 부부의 범행은 대학병원 직원의 예리한 눈썰미로 틀어졌다.
A씨는 태연하게 생모인 척 아기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직원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당황한 A씨는 “사실은 내가 생모의 친언니”라며 횡설수설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판단한 직원은 인계를 거부하며 112에 신고했다. 지난 3년간 아이들을 물건처럼 사고팔았던 그의 범행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A씨는 구속된 상태에서 아동복지법상 아동매매 등 혐의로 지난해 6월 말 재판에 넘겨졌다. 또 범행을 도운 A씨의 남편과 공범인 친구 B씨와 B씨의 남편, A씨에게 돈을 받고 아이를 건넨 미혼모 C씨와 D씨, 또 A씨가 낳은 아이를 거짓 출생신고한 불임부부까지 10명이 나란히 법정에 섰다.
반년간 이어진 재판 끝에 A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범행을 부인한 A씨의 남편도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또 불법으로 아동을 입양한 부부 등 나머지 8명은 가담 정도에 따라 징역 1~3년에 집행유예 2~4년씩을 선고받았다.
A씨 부부와 검찰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검찰은 “이 사건이 사회적 약자인 아동에 대한 인신매매 범행으로 반윤리적 범죄인 점과 피해 아동이 5명에 이르는 점, 피고인들이 계획적으로 준비한 점 등을 고려해 더 중한 형을 받아야 한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A씨는 경찰 수사에 줄곧 비협조적이었고, 재판에서도 아동매매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디지털 포렌식으로 삭제된 메시지를 복구해 확실한 증거가 나와야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로 인해 A씨 등에게 돈을 받고 아이를 넘긴 미혼모 한 명과 아이를 넘겼다가 다시 데려간 미혼부 한 명, 임신확인서를 위조하기 위해 대리 진찰을 받은 만삭 임신부 한 명은 끝내 인적 사항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A씨 부부는 항소심 첫 재판에서도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 관계자는 “여죄 대부분이 시간이 꽤 지난 일인 데다 이들이 여러 지역을 다니며 범죄를 저질러 혐의 입증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거래한 건 아닌지 의심되지만, 복구한 자료로 범행을 밝혀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5명의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나
A씨가 불임부부를 대신해 출산한 뒤 돈을 받고 넘긴 아이는 거짓 출생신고를 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미혼모 C씨가 낳은 아이는 A씨와 공모해 서류까지 위조한 친구 B씨 부부가 양육 중이다. 또 A씨가 자신의 이름으로 진찰을 받게 한 뒤 출산 후 돈을 주고 아이를 데려와서는 다시 불임부부의 남편과 외도로 낳은 것처럼 위장해 넘긴 아이는 양부모와 해외에서 살고 있다. 미혼부 손에서 자라다 A씨에게 매수된 생후 19개월 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친부의 품으로 돌아갔다. A씨가 퇴원수속 과정에서 꼬리가 밟힌 미혼모 D씨의 아이는 임시보호조치로 위탁가정에서 양육하고 있다.
대구=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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