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약속의 책임 일깨운 최태원-노소영 이혼 판결 [배정원의 핫한 시대]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2024. 6. 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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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과 동거인이 노씨에게 심각한 불명예 안겨준 행동 꾸짖어
‘유교적 혼인 지상주의’ 대변하는 판결로 해석되진 말길

(시사저널=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지금 대한민국은 한 재벌 가정의 이혼과 그에 따른 재산분할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다. 재계 2위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그의 아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그것이다. 지난 1심에서 재판부는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SK 재산의 고작 1.2%로 판단해 논란이 되었다. 35년이란 긴 세월을 부부로 살아오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재계 2위 재벌의 아내로서 가사를 전적으로 지휘하고 이끌어 왔으며, 남편의 공개적인 외도로 배신감과 자괴감 등 심신의 고통을 감당해 왔던 그녀에게 재산분할 665억원과 1억원의 위자료는 일반의 눈으로도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5월30일 최-노 부부의 이혼소송 항소심의 선고가 내려졌고, 이들의 이혼 공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잖아도 이 부부의 이혼에는 말이 많았다. 일단 최태원 회장의 불륜 인정과 동거인과의 유별난 행적이 꽤 오래전부터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08년쯤 최 회장은 자신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렀다며 이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그에 대해 노소영 관장은 결혼의 약속과 가정을 지키겠다며 한사코 이혼을 거부했다.

4월1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이혼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 참석하고 있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오른쪽 사진) ⓒ시사저널 박정훈

최 회장의 '외도 공개' 편지의 잔인함 지적도

그러자 급기야 2015년 12월, 최 회장은 한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우리의 결혼이 이미 파경에 이르렀으며,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여인과 혼외자가 있다'고 공개했다. 마치 고백서 같은 이 편지는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살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 혼외자도 있다는 것, 종교적 신념으로 더 이상 숨기지 않고 혼외자와 함께 살겠다는 내용으로 사회를 놀라게 했다. 최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동거녀 김아무개씨에게 재단을 차려주어 이사장직을 맡게 하고, 배우자처럼 대접하며 외부 사교행사에도 김씨를 대동했다.

이에 2019년 노소영 관장은 '남편이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세계로 그를 보내줘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끝으로 이혼소송에 돌입했다. 사실 최태원 회장은 일부일처제를 헌법으로 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책 배우자임이 분명하다. 결혼이 파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노 관장은 가정과 결혼을 지키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고, 최 회장과 동거인 김씨는 여러 행위로 그녀에게 심각한 불명예를 안겨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최 회장과 김씨의 행동에 대해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맹렬하게 꾸짖고, 그들이 그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혼의 다른 당사자인 노 관장에게 고통을 주어왔던 것에 대해 일일이 보상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2008년 옥중에서 노 관장과 그의 자녀들에게 보낸 '나의 불륜을 고백하고 인정하며 지속하겠다'는 편지의 잔인함과 이혼소송 이후 생활비를 안 주고 카드 사용을 막은 그간의 졸렬한 행동들에 대해 조목조목 잘못을 물었다. 긴 결혼생활 동안 노 관장의 가사 기여도도 인정되었다.

기실 최 회장의 행동은 '일부일처제'를 헌법으로 정하고 혼인의 위중함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비난받을 만한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이미 남인데도 쇼윈도 부부 역할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거짓 없이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다는 것이 최 회장의 진심이었다 해도 그의 방식은 어리석고 경솔했으며 지극히 폭력적이었다. 외도는 새로운 관계의 당사자들에겐 사랑이고 행복일지라도 반대편의 배우자에겐 너무나 치욕적이고 잔인하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파경에 이르렀던 간에 헤어지는 순간까지는 상대의 인생을,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자로서가 아니라, 재벌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노소영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또 자식들의 어머니로서도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 도리였을 것이다. 아무리 지금 새로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고 그녀의 자존감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싶더라도 어쨌거나 먼저 결혼의 약속을 깬 당사자들로서 관계가 종결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는 염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두 불륜 당사자에게 많은 보상을 치르도록 요구한 이번 판결은 그동안 남편의 일방적인 외도와 그로 인해 가정이 깨지고 보잘것없는 위자료를 받고 억울하게 축출되어 왔던 한국의 많은 여성에게 속 시원한 사건이기도 했고, 앞으로 비슷한 재판에서 그녀들을 보호할 장치가 될 것이란 기대도 갖게 만든다.

다만 이번 판결이 유책주의가 아닌 파탄주의로 가고 있는 오늘날 이혼의 현실적 흐름을 막지는 않았으면 한다. 또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현세대의 변화하는 결혼과 이혼 방식을 거스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이번 항소심이 어떤 면에서든지 결혼 유지가 절대선이고, 그 안에서 한 구성원이 불행하더라도 약속했으니 무조건 감수해야 한다는 유교적 혼인 지상주의를 대변하는 판결로 해석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노태우 비자금, 공적 차원에서 결자해지해야

이번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노소영 관장에게 665억원의 재산분할과 위자료 1억원이 선고되었던 1심을 뒤엎고, 무려 20배 높은 액수인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모두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번 재판부가 그렇게 판결한 데는 노 관장의 아버지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의 전신인 선경에 300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주었고, SK가 1990년대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며 승승장구하는 데 노 전 대통령이 보호와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는 노 관장 측의 새로운 대응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딸이 선경의 며느리가 되자 노 전 대통령은 300억원의 비자금을 사돈인 최종현 당시 SK 회장에게 전달했으며, 그 증표로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받았는데, 그를 기록하고 수십 년간 비밀리에 보관해온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재판부에서 비자금의 실체로 인정한 것이다.

김 여사가 내놓은 비자금 메모가 증거로 받아들여진 데 대해 최 회장은 많은 직원과 자신들의 노력 및 도전으로 키워온 회사에 불명예를 씌웠다고 항변하는 중이지만, 이로부터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부부의 이혼은 개인사지만, 그들이 이룬 부(富)에서 노 전 대통령의 부정한 비자금이 노출된 이상 이것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결자해지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들의 이혼은 이제 사사로운(대한민국 재계 2위인 SK그룹 회장 부부를 사사롭다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가정의 이혼소송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섰다. 믿음이 좋고 검소하며 바른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노소영 관장이 이제야 드러낸 노태우 비자금의 존재와 용처에 대해, 국민이 권력의 무도함에 느낀 모멸감에 대해 사과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사회 환원의 방법도 궁리해 준다면 결혼 안에서 나와 새로운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갈 노 관장을 많은 이가 박수로 응원하지 않을까.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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