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살인 전과자의 속죄...공단 지원으로 자립 “두 배 더 베풀며 살겠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주거 지원 받으며
식당·화물 운전으로 가정 꾸려
김성수(가명·50)씨는 1999년 8월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해 여름, 김씨는 사람을 죽였다.
살인. 그건 김씨가 한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창원의 한 기계 공장에 다니던 그는 그날 회사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소한 시비가 발단이 됐고 술기운이 일을 키웠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한 사람의 삶을 앗아갔다. 김씨는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그해 그는 스물 다섯이었다.
김씨는 순식간에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공간으로 추락했다. 육신의 구속보다 힘들었던 건 자신이 용서를 구할 사람이 세상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참회와 두려움이 엄습했다.
김씨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방법이 없을지 하루에도 수십번씩 고민했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감옥에서 나가면 그 사람 몫까지 더해 인생을 더 반듯하게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김씨는 2017년 출소했다. 동남아 국적 아내도 만났다. 그러나 18년 만에 다시 마주한 사회는 살인 전과자에게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배달, 서빙, 청소 등 가능한 일을 닥치는 대로 찾았지만 두 사람을 먹여 살리기는 역부족이었다. 여러 사회복지기관을 찾아봤지만 김씨의 전과를 듣더니 ‘지원 불가’ 통보를 내렸다. 담장 안에서 꿈꿨던 재기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마지막 희망을 놓기 직전, 그는 우연히 담장 안 소지품을 뒤적였고 출소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법무부 산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연락처를 발견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혹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김씨는 2018년 초 공단 부산지부에서 트럭 운전 직업훈련을 받았다. 공단 관계자는 김씨의 주거가 불안정하다는 점을 고려해 주거지원 사업을 추천해줬다. 그는 공단 도움으로 약 20평 다세대주택을 저렴한 월세로 10년 간 장기 임차했다. 보증금 1000만원 중 700만원은 공단이, 300만원은 김씨가 냈다.
주거 문제가 해결된 뒤 김씨는 꾸준히 식당 서빙과 화물기사 일을 병행하며 돈을 모았다. 2021년 11월에는 공단 도움으로 다른 출소자 6명과 함께 ‘합동 결혼식’도 올렸다.
지난 3월 김씨는 6년간 살던 집에서 자진 퇴거했다. 부산의 한 아파트를 자가로 매입한 것이다. 공단 부산지부 관계자는 “주거지원 사업에 선정되면 10년간 거주가 가능해 자진 퇴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김씨가 먼저 ‘나가겠다’고 말해 놀랐다”고 했다.
그간 김씨는 홀서빙 하던 음식점을 인수해 사장님이 됐고, 동시에 직원을 채용해 화물 트럭 2대를 운영하는 작은 사업장도 냈다. 경제적으로 완전 자립한 것이다.
김씨는 최근 공단에 “남들보다 두 배 더 베풀며 살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김씨는 “공단의 도움으로 합동 결혼식을 올린 직후 눈물 흘리는 아내를 보면서 ‘내가 공단에서 받은 만큼 베풀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면서 “저는 남들보다 두 배 더 노력하고, 두 배 더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25살의 철 없던 청년이 다시 평범한 사회인이 되기까지 25년이 걸렸다”면서 “좌절에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나를 희망으로 이끌어준 공단, 아내,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그 사람(피해자)을 위해 반듯하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사장 황영기)은 김씨 같은 출소자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고 재범을 방지하는 사업을 펼치는 기관이다. 주거 지원과 직업 훈련·취업 알선을 비롯해 학습 지원, 긴급 지원, 심리 상담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공단이 직접 생활관을 운영하며 지원 대상 출소자를 대상으로 최대 2년간 숙식을 제공하고, 전국 7곳의 기술교육원에서 각종 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한 해 동안 1만8965명의 보호대상자가 공단을 통해 총 14만1508건의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 보호대상자 중 재범률은 0.2%(28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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