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기둥만 뽑히는 게 아니었네”…‘세기의 이혼’에 휘청이는 SK그룹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2024. 6. 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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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혼소송 결과
재산 분할액만 1조3808억원 달해
만일 SK(주) 처분 시 지배구조 영향
2조로 300조원 SK그룹 지배한 崔
지배구조 취약성 드러낸 이혼 판결
정부·여당 상속세 개편 추진 중
경영성과 기반으로 상속세 개편하고
퇴직연금으로 재벌기업 지배해야
최태원 SK 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선고가 5월 30일 내려져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의 재산분할을 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1심과 달리 노 관장이 최 회장의 재산 형성에 이바지했다고 인정하면서 재산분할 금액과 위자료가 크게 올랐다. 사진은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지난 4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사실상 패소하면서 1조3808억원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줘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최 회장의 재산은 약 4조원. 이 중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주) 주식 보유분은 약 2조원(지분 17%) 입니다. 최 회장으로선 SK(주) 주식을 처분할 경우 SK그룹 경영권 전반을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최대한 다른 자산(미술품, 부동산, 비상장사인 SK실트론 주식 등)을 처분해 재산분할 대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2조로 ‘300조 SK그룹’ 지배하는 최태원 회장
이번 이혼소송 판결은 국내 재벌체제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최 회장은 SK(주) 지분 17%(2조원)를 통해 300조원(지난해 말 기준·한국신용평가)에 달하는 SK그룹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SK(주) - 여러 중간 지주회사(SK스퀘어, SK이노베이션, SKC 등) - 계열사 등 ‘3중 구조’를 통해서 말이죠.

SK(주) 주주 구성을 보면, 최 회장 지분 17.73%를 포함해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하면 25.44%. 그리고 SK(주) 자사주가 25%입니다. 둘이 합쳐서 50%를 넘기면서 적대적 M&A에 대해 경영권 방어를 해왔던 것입니다. (2000년대 초 SK그룹은 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의 적대적 M&A 공격시도를 받은 바 있습니다)

‘2조원으로 300조원’을 지배한 상황에서, 최 회장이 총재산 4조원 중 1조3808억원을 떼줘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만일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 짓는다면? 최 회장은 최대한 다른 곳 재산을 빼서 이를 마련해야 합니다. SK(주) 지분을 줄이게 되면 그만큼 SK(주)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하기 때문이죠. (물론 다른 재산도 많기 때문에 최 회장이 SK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날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SK실트론 등 비상장사가 제때 팔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일각에선 SK(주)를 담보로 한 추가 주식담보대출 혹은 SK(주) 지분 매각 등도 거론됩니다. 1조3808억원이 없어서 ‘300조원’ 자산가치를 보유한 SK그룹 지배구조가 영향을 받는 셈입니다.

다만 1조원 남짓의 돈이 부족해 ‘300조원’ 자산가치를 보유한 SK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재벌그룹 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나중에 최 회장 후대로 경영권이 승계된다고 가정하면 막대한 상속세 부담(60%)이라는 난관이 있습니다. 대를 내려갈수록 지배구조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오너일가의 주요 수입원은 ‘경영보수’와 ‘배당’이 있는데, 둘 다 소득세 최고세율(45~49%)을 적용받기 때문에, 아무리 둘을 합쳐서 연간 100억~300억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실제 수령액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조원대(삼성가는 12조원 상속게 납부)를 마련해야 하는 재벌가 입장에선 상속세가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최근 중견그룹인 한미약품 오너일가가 잔여 상속세만 2600억원 이상이 남아 주식담보대출, 지분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회장 재임 시절인 지난 2020년 기자회견을 열고 “4세 경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해당 보도 일자의 매일경제 1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회장 재임 시절인 지난 2020년 기자회견을 열고 “4세 경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경영 저성과 오너는 상속세 더 내게 해야”
그렇다면 취약한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합리적인 해결방안은 어떤 걸까요?

국민의힘(여당)과 정부는 상속세 인하를 적극 검토하고 나섰습니다. 오너일가가 막대한 상속세 부담을 피하려고 지주회사 주가를 억누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또는 가업상속공제 확대 등 기업 상속세제 완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속 부담을 낮춰서 재벌가 4세·5세가 경영 전반에 나서는 것이 과연 한국경제의 혁신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한 국내 사모펀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재벌 오너일가에게 책임을 덧씌우는 바람에 재벌 오너 3세가 도전보다는 문제를 안 만들려는 현상 관리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상속세율을 어느 정도 합리적인 범위로 낮추되, ‘경영 저성과자’(PBR 1 이하)로 분류되는 재벌 오너일가에겐 실효 상속세율을 높이자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이를테면, 강성부 KCGI 대표는 PBR 1배 이하인 기업들은 장부가를 기준으로 상속세율을 정해야 한다고 말하죠. 만일 상속세율을 30%로 낮추되 PBR 1 이하는 장부가 기준으로 상속세를 매긴다면? 상속세율이 절반이 된다고 하더라도 PBR 0.5배 이하 기업들은 오히려 상속세를 더 많이 내야 합니다.

국민 퇴직연금 활용한 재벌 보유방안 검토 필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키우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미국 대표기업들(애플, MS,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등)의 주요 주주는 뱅가드, 피델리티, 스테이트스트릿, 블랙록 등 미국 대표 자산운용사입니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인이 투자하는 뮤추얼 펀드, 그리고 401K 등 퇴직연금이 이들 자산운용사의 주요 재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미국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과 2위 자산운용사인 뱅가드(Vanguard)는 각각 10조 달러, 8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자금의 출처는 바로 미국인의 투자자금입니다.

미국의 선례를 보면,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일례로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가 국내 투자자로부터 주식·ETF·퇴직연금 등을 유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LG에너지솔루션 등 각 그룹의 핵심 계열사의 주요 주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후 이들 여러 자산운용사가 이사회서 표를 행사하며 팀 쿡 애플 CEO와 같은 전문경영인을 선임하는 것이죠.

이 같은 ‘미국 모델’은 미국인들은 퇴직연금·개인연금 그리고 주식투자 등을 통해 자국 대표기업에 ‘간접 투자’하면서 노후 자산을 두둑이 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입니다. 국내의 경우 퇴직연금이 2030년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유일하게 적립액이 늘고 있는 퇴직연금을 활용한 재벌 지배구조 개편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일 저평가된 각 재벌그룹의 지주회사를 퇴직연금이 사들인다면? 주가 밸류업 정책을 통해 지주회사 가치를 끌어올리면 현재 0~2%에 불과한 퇴직연금의 연(年)수익률이 개선되면서 동시에 국민이 간접적으로 재벌기업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최태원·노소영 이혼 판결은 ‘1조원대 재산분할’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재벌 기업 체제의 취약성 그리고 향후 어떻게 국내 대표 기업들을 운용해야할지에 대한 사회적 물음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오너의 능력을 더욱 발휘하게끔 하는 상속세 개편 (채찍과 당직)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향후 국민의 퇴직연금을 활용해 재벌 기업을 소유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면서 전문경영인을 주로 키워낼 수 있을지 등이 관심사입니다.

확실한 건 오너일가든 전문경영인이든 기업을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 선발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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