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안’ 망했다…“가족친화 일터 만든다면”[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
“무슨 생각으로 그런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하지만 그게 제 진짜 반응이었죠.”
한 국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 값(0.78명)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Korea is so screwed. Wow!)”라며 머리를 부여잡는 모습으로 화제가 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 법대 명예교수(72)는 과거 자신의 인터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찐(眞) 리액션’은 그 어떤 저출산 기사, 논문보다 우리 사회에 더 큰 경종을 울렸다. 합계출산율 0명대란 이렇게 놀라야 하는 일이라고. 인터뷰는 유명한 ‘짤(meme)’이 되어 많은 언론에도 보도됐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걸 그는 알았을까.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 인생에서 한 번도 인터넷 밈이 돼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방한한 윌리엄스 교수를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다소 호들갑스러운 반응과 달리 답변은 진지했고 태도에선 세련된 기품이 넘쳤다. 과거 인터뷰처럼 머리 잡는 동작을 재현해줄 수 있냐는 기자의 부탁에도 난감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저는 원래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걸요. 그땐 정말 크게 놀라서 그랬어요.”
윌리엄스 교수는 노동법 전문가이자 오랫동안 일터 성차별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연구해온 저명한 사회학자다. 그의 할머니는 존스홉킨스의대 1호 여학생이었지만 결혼과 함께 자퇴해야 했고, 어머니는 지역 신문 기자였지만 세계대전이 끝나고 남자들이 대거 복귀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윌리엄스 교수가 여성 노동과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출산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봐 온 그에게도 한국의 초저출산 상황은 머리를 부여잡을 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8명으로 예측된다. 윌리엄스 교수가 듣고 놀랐던 0.78명에서 0.1명 더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윌리엄스 교수는 “그토록 낮은 수치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매우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부사를 두 번이나 쓰며 강조했다. 그는 “전쟁이나 팬데믹 상황인 나라들에서나 그런 출산율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한국) 거시경제에도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돈독한 관계를 감안할 때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동 전문가인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 초저출산 문제 원인으로 단연 ‘가족 비친화적 일터’를 꼽았다. 특히 ‘장시간 노동’이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OECD 평균 대비 2~2.5배 이상 많다”며 “노동시간이 매우 매우 길다”고 또 부사를 두 번이나 반복하며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일주일에 최대 52시간(주 52시간제)으로 규정된 제한을 풀어 근로시간을 월, 연 단위로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하겠다며 개편안을 내놨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좌초하긴 했지만, 정부는 제도의 틀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경직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면 ‘몰아서 69시간 일’할 수도 있는 대신 그만큼 ‘몰아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어서 결과적으로 근로자에게도 득이라는 설명이었다.
윌리엄스 교수는 제도의 취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한 주는 길게, 다른 한 주는 적게 일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아니냐”며 “만약 (길게 일하는) 한 주 동안 애를 ‘얼려놓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그렇게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러나저러나 길게 일하면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는데, 이런 육아 부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세계 최장 근로시간의 한국이 지금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논할 때는 아니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여성 노동 문제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0% 이상(종사자는 80%)을 차지하는 한국 기업 생태계의 특징을 언급하며 “대기업에선 (근로시간 단축 등 가족친화적 시스템 마련에)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엔 중소기업이 많고 대부분의 여성 역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게 문제”라며 아직 많은 여성이 아이를 키우기에 열악한 상황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나마 대기업에서 많이 이용하는 육아휴직도 ‘아직 이용 시 눈치를 봐야 하는 점,’ ‘남성 이용률이 여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점’이 여전히 문제라고 짚었다. 윌리엄스 교수는 “정말 놀라운 건 (한국) 여성들이 동료들에게 미안해 육아휴직을 못 간다는 것”이라며 “고용주가 돈을 아끼려 대체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을 혹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직한 여성은 불만에 찬 동료들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본 육아는 물론 자녀 교육, 물질적 성공까지, 한국 엄마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책임이 엄마들로 하여금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고 했다. “여성들은 자녀뿐 아니라 남편과 그 부모님까지 돌봐야 한다. …한국 여성은 남자보다 가사노동 8배, 육아 6배를 더 한다. …어느 순간 남자와 자신을 비교해본 여성은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출산과 육아) 더는 사양하겠어(No thanks)!’라고.”
윌리엄스 교수도 두 아이의 엄마다. 수많은 책과 논문을 쓰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건사했을까? 그는 “나는 아마도 미국에서 (일반 가정이) 유모를 둘 수 있던 유일한 시대에 산 사람일 것”이라며 “지금은 (미국에서도) 인건비가 비싸 꿈도 못 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최근 할머니가 됐다. 최근 태어난 손녀는 “생후 4개월 때부터 비싼 돈을 내고” 어린이집(childcare center)에 다닌다고 했다.
“미국에 비하면 한국은 좋은 보육시스템을 가졌다. 정부가 보육과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해왔고 결국엔 결실을 맺었다.” 윌리엄스 교수가 말했다. 하지만 무상보육·교육임에도 긴 근로시간, 치열한 경쟁, 교육 부담 등으로 인해 결국 추가로 돌봄과 교육비용이 들어간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결국 한국에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려면 일터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윌리엄스 교수는 강조했다. 그간 정부가 수많은 저출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가족친화적인 일터가 구축되지 않으면 정책의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쉽게 말해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이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37개 대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연구진과도 협업을 구상하는 중이다. “한국엔 이제 선택권이 없다. 당장 바꿔야 한다”며 “한국을 지금에 이르게 한 방법과 추진력이 지금 상황을 극복하게도 할 것이다.…분명히 출구는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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