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물가 안정돼야 민생 안정된다 [양재찬의 프리즘]
물가상승률 2%대 들어왔지만
체감물가는 이보다 훨씬 높아
‘금배’ 등 과일 가격 고공행진에
석유류 석달 연속 오르고 있어
체감물가 안정으로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부 정책 과제 남아있어
5월 물가상승률이 정부의 관리목표 범위(2%대)에 들어왔지만, 체감물가는 이보다 훨씬 높다. 특히 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비싸다. 석유류도 석달 연속 오르는 등 물가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4일 발표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 2~3월 두달 연속 3%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수치상 오름세는 주춤해졌다. 하지만 실제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여전히 높다.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인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1% 올랐다. 특히 식품 물가상승률은 3.9%로 평균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관건은 농산물이다. 5월 농산물 물가는 19.0% 올랐다. 소비자물가지수를 0.69%포인트 끌어올렸다. 사과 값은 80.4% 올랐다. 3월(88.2%), 4월(80.8%)에 이어 3개월 연속 80%대 상승률이다. 배 가격 상승률은 사과보다 높은 126.3%로 사상 최고다.
대형마트에서 사과 한개에 3000원이 넘고, 배 하나에 거의 1만원꼴이다. '금배'로 불린다. 귤(67.4%)과 복숭아(63.5%), 감(55.9%) 토마토(37.8%) 등의 가격 상승률도 높다. 과일 판매대를 쳐다만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적잖다.
신선과일 값이 고공행진하자 정부는 바나나ㆍ파인애플ㆍ망고ㆍ자몽ㆍ키위ㆍ아보카도 등 수입과일 28종에 관세를 낮게 매기는 것을 하반기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최근 가격이 급등한 오렌지ㆍ커피농축액 등 식품 원료 7종에도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석유류는 5월에 3.1% 올랐다. 지난해 1월(4.1%)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석유류는 5월에 3.1% 올랐다. 지난해 1월(4.1%)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국제유가가 최근 떨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중동 분쟁이 언제 다시 격화하며 석유류 값을 자극할지 모른다.
과일뿐만 아니라 외식 물가도 가계에 큰 부담이다. 정부가 압박해 두차례 인상 시기를 늦춘 국내 치킨 점포 수 1위 업체인 제너시스 BBQ가 4일 23개 제품 가격을 3000원씩 올렸다. 배달비까지 포함하면 한마리에 3만원을 웃도는 메뉴도 등장했다.
회사 측은 올리브유ㆍ밀가루ㆍ소스 등 원부자재 가격이 상승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자 소비자단체는 치킨의 주재료인 육계 가격이 지난해보다 14% 하락했는데, 기타 원부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소비자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지나치게 기업이익만을 생각하는 처사라고 비판한다.
대표적 간식인 떡볶이 등 분식 값도 올랐다. 신전떡볶이는 6월 들어 1인분 가격을 3500원에서 4000원으로 14.3% 인상했다. 6월 첫날 초콜릿과 음료, 김, 간장 등 가공식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4월 총선과 5월 가정의 달을 의식해 자제했던 가격인상이 본격화한 모습이다.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3월에 정점을 찍었고, 하반기로 갈수록 안정돼 2% 초중반에 머물 것으로 기대한다. 문제는 하반기에도 물가상승 압박은 여전하고, 가계 부담도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는 11일 정부와 낙농가들이 가공우유의 원료인 원유原乳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간다. 그 결과에 따라 우유가 들어가는 빵과 아이스크림 값이 연쇄적으로 오를 수 있다.
하반기 물가를 자극할 변수들도 다수 대기하고 있다. 6월말까지 연장한 유류세 인하 조치가 세수 부족을 고려해 종료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동결 기조를 유지해온 전기ㆍ가스 요금도 인상 시점을 찾고 있다. 에너지 공공기관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일정 부분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올여름 폭염ㆍ폭우 등 이상기후가 예년보다 심할 것으로 예보돼 농산물 수급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고물가는 가계의 소득 감소와 내수 부진을 초래한다. 물가가 오른 만큼 실질소득이 감소하므로 '인플레이션은 숨은 세금'으로 불린다. 1분기 경제가 반도체 수출 호조 덕분에 1.3% 깜짝 성장했지만, 가구당 실질소득은 1.6% 감소했다. 3월에 1.1% 증가했던 소매판매도 4월에 1.2% 감소로 꺾였다.
내수를 회복시키는 데에는 금리인하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미국에 앞서 단행하기 어렵다. 미국의 금리인하 시점이 3분기 말, 9월께로 밀리면서 국내 기준금리 인하는 10월, 11월에나 가능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표물가 내림세가 체감물가 안정으로 이어지기까지 여러 정책과제가 남아 있다. 정부는 기업에 원가 절감을 통해 인상요인을 흡수함으로써 물가안정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유통구조 개혁과 이상기후에 대비한 품종 개량 및 재배환경 개선 등 정부가 할 일부터 제대로 해 성과를 내야 한다.
기업들도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올릴 때 손쉽게 '1000원' 단위로 해온 관행에서 벗어나자. '100원' '10원' 단위로 가격을 조정하며 구체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주된 재료의 시세가 하락하면 제품 가격도 인하함으로써 소비자 신뢰를 얻어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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