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에 물류 넘기는 SSG…이커머스 대권 도전 접나
SSG는 사실상 자체 물류 포기…경쟁력 부족
본업인 오프라인에 충실하겠다는 판단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사촌 동맹
5월 말까지만 해도 여름이 오기는 하려나 싶을 정도로 일교차가 큰 봄 날씨가 이어졌죠. 5월 초부터 한여름같은 더위를 쏟아내던 최근 몇 년과는 달랐는데요. 그래서 올 여름은 선선하려나 싶더니, 6월이 되자마자 우리가 아는 그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잠깐만 돌아다녀도 땀이 맺히는 것이 본격적인 계절의 전환을 알리는 듯 싶습니다.
쿠팡과 알리로 점철됐던 유통업계도 6월을 맞아 업계 판도가 바뀔 만한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바로 CJ그룹과 신세계그룹의 MOU 소식입니다. 식품·유통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대기업 둘이 맞손을 잡았습니다. 큰 결단이라면 큰 결단이고, 양 그룹의 총수가 사촌지간이라는 걸 고려하면 또 있을 법한 선택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MOU의 전조였을까요. 양 그룹은 지난해에도 한 차례 손을 잡았습니다. CJ제일제당이 이마트, SSG닷컴, G마켓 등 신세계 유통 3사와 손잡고 공동으로 상품 개발에 나선 겁니다. 지난해 6월 열린 '신세계 유니버스 페스티벌'에는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가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 볼까요. 이번 MOU의 중심은 SSG닷컴, G마켓 등 신세계그룹의 이커머스 계열사와 CJ그룹의 물류 계열사 CJ대한통운입니다. 우선 CJ대한통운이 자랑하는 '오네(O-NE) 서비스'를 G마켓에 도입합니다. 오네는 당일배송·새벽배송·익일배송·일요배송 등을 지원하는 배송 솔루션입니다.
G마켓도 기존에 익일배송을 제공하는 '스마일배송'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업계 최고 수준의 배송이라고 보긴 어려웠죠. 익일도착 역시 '보장'이 아니어서 하루이틀씩 늦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오후 8시까지 주문해야만 익일 배송이 되는 것도 소소한 불편함이었습니다.
신세계는 오네 서비스가 도입되면 배송 서비스의 퀄리티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익일배송 주문 시간이 밤 12시까지로 4시간 늘어납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퇴근 후 심야 시간에 모바일 쇼핑을 즐긴다는 걸 고려하면 이 4시간은 큽니다. 스마일배송의 '도착 예정'과 달리 오네는 '도착 보장'입니다. 이 역시 큰 차이입니다.
SSG닷컴에도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쓱배송과 새벽배송, 물류센터 등 시스템 운영의 상당 부분을 CJ대한통운이 맡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김포 NEO센터 두 곳과 오포에 지은 첨단 물류센터는 아예 CJ대한통운에 단계적으로 이관할 계획이라는 설명입니다. 사실상 SSG닷컴이 직접 물류를 포기하고 CJ대한통운에 '외주'를 주는 셈입니다.
소소하게는 멤버십·상품 협업도 이뤄집니다. 신세계포인트와 CJ-ONE 포인트를 통합해 양 쪽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든지, CJ제일제당과 이마트가 단독 판매 상품을 함께 만든다든지 하는 일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목표는 쿠팡 아닌 '생존'
처음 양 사의 협업이 발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쿠팡이 떠올랐을 겁니다. 양 그룹은 모두 쿠팡과 경쟁하고 있는 곳이죠. 신세계는 SSG닷컴과 G마켓, 옥션이 이커머스 부분에서 경쟁 중이고 CJ는 물류의 대한통운뿐만 아니라 제조사-유통사 관계로도 대립하고 있습니다. 양 그룹이 쿠팡을 잡기 위해 손을 잡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오히려 신세계그룹이 도전이 아닌 '생존'을 선택했다고 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현재 이커머스 업(業)의 핵심인 물류를 내줬기 때문입니다. SSG닷컴은 현재 NEO센터 3곳과 오포 물류센터 등 4개의 물류센터를 운영 중입니다. 이 중 3곳이 넘어가면 사실상 자체 물류 동력 확보가 불가능해집니다. 이미 SSG닷컴은 1조7000억원을 들여 NEO센터 10곳을 확보하겠다던 계획을 폐기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에야 CJ대한통운의 배송 서비스가 도입되면 더 빠른 배송 등을 제공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체 배송 노하우의 상실이나 고객 클레임 시 책임 주체 문제 등이 누적될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서비스 확장을 꾀할 때도 CJ대한통운과 손발을 맞춰야 하니 경쟁사들보다 한 발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습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정용진 회장이 성장이 정체된 SSG닷컴을 무리해서 키우기보다는 현재 수준의 SKU를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틀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실제로 SSG닷컴은 출범 초기 2023년까지 이커머스 1위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지난해엔 처음으로 매출이 뒷걸음질치기도 했죠.
물류센터를 내주고 신세계가 얻을 수 있는 건 당장의 현금 조달입니다. 신세계그룹은 현재 현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연말까지 1조원에 달하는 SSG닷컴 지분을 매입할 새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면 그룹이 되사야 합니다. 신세계 측은 투자자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때 SSG닷컴의 물류센터는 좋은 현금화 수단입니다.
물론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당장 올 여름이 사상 최악의 폭염이 쏟아지는 해가 될 지, 길고 긴 장마의 해가 될 지도 알 수 없는데 10년, 20년 후 기업의 미래를 점치는 건 더 어려운 일입니다. 혹시 모르죠. 정용진 회장의 이번 결단이 위기에 빠진 그룹을 건져내는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10년 후에 뵙겠습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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