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트럼프’와 ‘2024년 트럼프’는 무엇이 다른가
(시사저널=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마치 《워킹 데드》 같은 좀비 영화나 《사바하》 같은 오컬트 영화 장르를 시청하는 느낌이다. '트럼프 현상' 말이다. 얼마 전 트럼프는 포르노 배우에 대한 입막음용 돈 지불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혐의로 배심원들에 의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 7월11일 판사의 1심 판결로 형량이 결정된다. 과거 미국 정치의 문법이라면 이 유죄 평결로 대선 결과는 이미 결정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선 전망은 안갯속이다. 흔히 미국 정치에서 기사회생에 능한 자들을 '펀치백'이라 불러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아무리 때려도 다시 반동으로 일어나는 펀치백 비유로도 부족하다. 차라리 이성과 도덕 및 적법한 절차를 신성시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영원한 악몽으로서 좀비나 오컬트 장르에 더 가깝다.
트럼프 부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제는 클리셰에 가깝도록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은 책이 출간되었다. 상실감이 큰 백인 노동자들의 기득권에 대한 분노, 우익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의 트럼프 도구론 등 말이다. 하지만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2016년 트럼프와 2024년 트럼프는 무엇이 다른가'다. 그냥 트럼프의 일반적 매력을 강조하다 보면 정작 2024년 트럼프 부활의 비밀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 속에서도 '트럼프 현상' 부활
나는 2024년 트럼프 부활의 핵심이 '혼돈의 에이전트(agent·대리인)'로서 '도전자 브랜드'(2016년)에서 '질서의 에이전트'로서 도전자+재구축(Reconstruction)의 융합 브랜드(2024년)로 전환되었다는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명료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2024년 대선 게임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2016년 트럼프는 전형적인 도전자 브랜드로 승리했다. 즉 기성 질서를 상징하는 1등 브랜드인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로 강렬한 반(反)기득권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걸 파괴하고자 했다. 심지어 그는 집권 후에도 여전히 도전자 브랜드로 국정을 운영했다. 흔히 좌우 후보들은 선거 기간에 좀 더 집토끼의 어젠다(의제)에 부응하고 집권하면 중도로 수렴되곤 한다. 하지만 집권한 트럼프는 이 교과서를 던져 버리고 중요 어젠다에서 여전히 도전자 브랜드로 행동했다. 그는 매우 극단적인 대법원 판사들을 세 명이나 임명했고 철저히 반(反)이민, 반(反)세계화 노선을 견지했다.
하지만 2024년 이전의 도전자 브랜드는 혁신적이긴 하지만 종교적 차원의 마법으로까지 완성된 건 아니었다. 그저 기독교 보수주의 성전의 전술적 도구(비록 트럼프 개인은 비도덕적이지만 낙태 등 그들의 오랜 어젠다에 충실)로서 기능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트럼프는 단지 기득권 도전 정도를 넘어 소위 박해받는 메시아의 출애굽기 서사로 완성되었다. 그를 지지하는 추종자들은 선거 부정론, 미국판 '강남좌파 카르텔'의 사법 살인론, 억압받는 소수자들(백인 문명)을 위한 '메시아론' 등으로 무장하고 강력한 부족주의 서사를 쓰고 있다. 당연히 그들에게는 이 서사를 부정하는 세력들은 합법이 아니라 모든 비합법 수단을 동원해 소멸시켜야 할 악의 무리다. 이 추종자들은 트럼프의 선동하에 판사와 배심원들에 대해 공격적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트럼프의 공약 중 많은 부분이 결국 달콤한 거짓말로 판명되었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이에 대한 한 트럼프 지지자의 대답은 오늘날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래도 트럼프는 우리에게 거짓말이라도 하지 않습니까?"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은 그 지지자의 절실한 심리를 이해하는 자만이 오늘날 세상의 문법을 포착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이나 한국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2016년보다 더 불확실성과 더 극단적 분노(Wrath), 그리고 이를 '해결'할 부족주의 마법의 토끼굴로 굴러 떨어졌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메시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심지어 안다. 하지만 그들은 비록 거짓말을 할지라도 기성 질서를 파괴할 대안 서사와 힘을 가진 리더를 간절히 갈구한다.
2016년보다 트럼프의 위력이 더 강해진 건 단지 도전자 브랜드의 서사가 피해자 서사와 결합된 측면만은 아니다. 내가 더 주목해 보는 것은 혼돈의 에이전트였던 트럼프가 이제 심지어 법과 질서의 에이전트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올해 1월 강연 등에서 분석가들이 대선을 경제 이슈의 대결로만 협소하게 간주하는 걸 경고해 왔다. 물론 오늘날 바이든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에는 경제 이슈가 근저에 깔려있다. 즉 인플레 연착륙 및 일자리 창출 등에서 경이로운 실제 성과를 자신하는 바이든과 달리 유권자들은 식료품 가격 상승과 주택 융자금 이슈 등의 이미지로 인해 오히려 트럼프 시기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4월 갤럽 등 이후 많은 여론조사에서 미국 유권자들의 1위나 2위 관심이 이민과 같은 법과 질서 이슈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이슈에서 심지어 30%의 엄청난 지지율 격차가 존재한다).
민주당의 약한 고리 '법과 질서론'
물론 법과 질서론은 언제나 민주당의 약한 고리다. 왜냐하면 민주당은 소수자와 이민자에게 관용적인 정당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중도주의자 빌 클린턴 대통령은 보수의 이슈를 무력화하기 위해 심지어 자기 지지 기반인 아프리칸계 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 없는 범죄와의 전쟁을 펼쳤다. 오늘날 바이든은 그 후유증 및 남미 등에서 더 악화된 질서 붕괴로 인한 이민과 난민 폭증, 그리고 클린턴과 오바마 시절보다 더 강해진 민주당 내 좌파의 반발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최근 트럼프가 아니라 바이든이 놀랍게도 국경 장벽 건설까지 암시하고 망명 신청 수 조절을 행정명령으로 선포한 건 민주당이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민주당의 전통적 핵심 지지층인 흑인과 히스패닉의 일부 층을 포함해 다수 유권자들은 강력한(때로는 잔인한) 행동주의자인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다시 경제가 활성화되고 법과 질서가 복원되리라 믿는다(혹은 믿고 싶어 한다).
이 법과 질서론의 최종 완성은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될 수 있다. 흑인과 히스패닉계에서 트럼프와의 격차가 줄어드는 것과 함께 만약 밀레니얼과 Z세대 청년들 사이에서 격차가 줄어든 채 대선이 치러진다면 바이든이 승리할 수 있는 계산은 나오지 않는다. 비록 청년 일반들은 이 이슈보다 경제 이슈에 더 큰 관심을 가지지만 중요한 건 진보적 열정을 가진 일부 대학생이 할 수 있는 파괴력이다. 최근 미국 대학들 내에서의 경찰 폭력 사태는 미국 민주당에는 악몽이었던 1968년을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 별로 매력 없던 대선후보(바이든과 스타일이 유사한 허버트 험프리), 일부 청년의 전투적 반전 시위는 오늘날 모래시계처럼 닮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 11월까지 바이든이 승리할 수 있는 시나리오와 전략의 여지는 매우 많다. 다만 필자는 오늘날 트럼프가 단지 도전자 브랜드에서 법과 질서의 재구축 리더로까지 승격하는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미국 민주당과 나아가 미국은 그간 상상도 할 수 없는 더 어려운 지경에 처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혼돈의 시대의 특성을 이해하는 자만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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