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우리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그날을 꿈꾸다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실종아동 가족과 논의해 메뉴 선정
기억으로 남아 그리움도 더 짙어져
놀이공원 등서 ‘안내방송’ 실종 예방
“가족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지난달 30일 오후 7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소셜 프로젝트 그룹 ‘3355콜렉티브’와 실종아동찾기협회 주최로 열린 ‘당연하지 않은 저녁식사’ 테이블에 이들 다섯 가지 음식이 올랐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저녁식사가 실종아동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로 ‘당연하지 않은 저녁식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메뉴는 장기실종아동 가족의 논의를 거쳐 선정됐다.
자폐스펙트럼이 있던 열다섯살 도연이는 라면을 좋아했다. 하지만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탓에 라면이 먹고 싶으면 면의 물기 빼던 채반을 드는 것으로 엄마에게 의사를 표시했다. 도연이의 어머니는 아들이 실종된 2001년부터 그 채반을 여전히 쓴다. 세월의 흔적이 채반에 더해지는 만큼 아이를 다시 만나고 싶은 간절함도 깊어진다. 아들 실종 후 도연이가 좋아하던 라면을 단 한 번도 먹지 못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시 라면 끓여줄 날을 기다린다.
매운맛에 끌려 배추김치를 유난히 좋아했던 다섯 살 순옥이는 1986년 2월 실종됐다. 아이를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어디서도 만날 수 없던 순옥이의 어머니는 흰 쌀밥에 생선·김치를 좋아했던 아이를 잊지 못한다.
다시 만나는 날 구운 삼겹살에 김치를 먹게 해주고 싶다는 순옥이의 어머니는 미혼모 보호시설을 지어 갈 곳 없는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새로운 꿈까지도 꾼다.
도가니탕을 좋아하던 열여섯살 수민이는 2002년 9월 실종됐다. 어머니에게 ‘은혜를 갚겠다’는 편지까지 쓸 만큼 성숙했던 아이를 다시 만나는 날, 어머니는 수민이가 좋아하던 도가니탕과 갈비찜을 해주고 싶다고 한다.
저녁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1984년 두 살의 나이로 실종된 희택이가 좋아했다. 가난한 살림으로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은 추억이 드문 희택이의 어머니에게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아들의 기억이 깊게 새겨져 있다.
◆딸 찾아 30년… 실종 막는 ‘안내방송’ 도입
1994년 4월 집 앞 놀이터에서 실종돼 30년째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영이가 사라지기 전, 아이의 생일상에는 토마토 스파게티가 오르곤 했다. 자주 먹을 일 없고 특별한 날에 찾으니 의미도 남달랐다.
외동딸 실종 후 본업을 포기한 채 30년간 전국을 헤매는 동안 희영이의 아버지 서기원씨는 사단법인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가 됐다.
놀이공원 등에서의 ‘아이를 찾습니다’ 안내방송 도입은 협회 노력의 산물이다. 다중이용시설 운영자의 실종아동 발생 즉각 대응을 규정하는 ‘실종아동 등 조기발견지침’이 2014년 7월부터 시행되면서다. 미국 ‘코드아담(Code Adam) 제도’의 유사 대책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 협회가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무총리실, 경찰청, 복지부 문을 두드린 결과다.
복지부에 따르면 장기실종아동은 올해 기준 총 1336명이며 이 중 약 80%인 1044명은 20년 이상 장기실종아동이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실종아동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위해 관계기관과 함께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정혜수 3355콜렉티브 대표는 “오늘의 이야기가 초대 손님들의 마음속에 깊게 간직됐으면 좋겠다”며 “다음에는 함께하는 저녁식사로 뵐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인사했다. 서 대표는 “‘실종아동의 날’을 잘 모르시는 분이 많다”며 장기실종아동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을 부탁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발열·오한·근육통' 감기 아니었네… 일주일만에 459명 당한 '이 병' 확산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