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나락 보관소' 결국 계정 폭파···남겨진 '사적 제재' 논란

박민주 기자 2024. 6.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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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 신원 연달아 공개
"피해자 허락 받았다" 주장하다 결국 계정 폭파해
구독자 50만명 달성···여론에 가해자 줄줄이 해고
신원 공개된 이들도 법적 대응···5명 명예훼손 고소
5일 경북 청도군 한 식당 내부가 텅 비어 있다. 이 식당은 20년 전 경남 밀양지역에서 발생한 밀양 집단 성폭행 가해자가 근무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청도군은 이 식당이 불법건축물에 대한 철거 명령 등 법적 조처를 내렸고, 현재는 영업정지 처분 상태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20년 전 발생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신원을 차례대로 공개하던 유튜브 채널이 결국 문을 닫았다. 가해자를 처음 공개한 지 1주일 만의 일이지만, 명예훼손 고소·사적 제재 등 숱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8일 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를 검색하면 올렸던 모든 동영상은 초기화된 상태다. 채널명도 ‘Nock’으로 바뀌어 있다. 이 채널은 지난 1일부터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련된 가해자들의 신원을 연달아 공개해 왔다.

그러던 중 ‘나락 보관소’는 전날 커뮤니티를 통해 “밀양 피해자 분들과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해자들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며 “제가 제작한 밀양 관련 영상들도 전부 내렸다. 구독도 취소 부탁드린다”는 공지를 올리고 채널을 초기화했다.

피해자 측은 곧바로 ‘나락 보관소’의 주장을 반박했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튜브 ‘나락 보관소’의 공지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피해자 분들은 5일 오후 이후 해당 유튜버와 소통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락 보관소’는 마치 피해자들과의 긴밀한 소통 끝에 피해자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영상을 내린 것처럼 사실과 다른 공지를 하고 있다”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지도, 경청하지도, 반영하지도 않았던 유튜브 ‘나락 보관소’의 행태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나락 보관소’는 피해자 측과 소통하는 것처럼 공지하며 신원 공개를 정당화했다. 커뮤니티에서 “‘피해자의 허락을 구했냐’라고 질문하는 분들이 많다”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피해자 가족 측과 직접 메일로 대화를 나눴고 (가해자) 44명 모두 공개하는 쪽으로 대화가 마무리된 상태”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입장은 달랐다. 5일 상담소에 따르면 피해자 측은 첫 영상이 올라오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사전 동의를 질문받은 적도 없었다. 3일에는 영상 삭제를 요청한 피해자 측은 ‘피해자 가족’과 합의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는 것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직장 해고·명예훼손 고소···가해자들에 이어진 비난
유튜브 캡처

일주일 간의 영상 게재에 ‘나락 보관소’는 약 50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달성했다. 유튜브 구독자 수 집계 사이트 소셜 블레이드에 따르면 가장 빠르게 구독자 수가 늘었던 날은 지난 4일로, 이날 하루에만 15만 2000명이 새롭게 채널을 구독했다.

쏟아진 관심만큼 신원이 공개된 가해자들도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상황에 놓였다. 처음 공개된 가해자가 일하던 경북 청도의 한 식당은 식당을 철거하면서 “채용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글을 걸어 놓았고, 또 다른 가해자가 근무하던 수입차 딜러사도 논란 이후 해고 조치를 했다는 공지를 올렸다. 세 번째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또한 다니던 기업에서 임시 발령 조치를 받았다.

가해자들을 향한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른 이유로는 법 감정과 괴리된 당시의 사법 판결이 있었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밀양 지역의 남자 고등학생 44명이 울산의 여중생과 미성년자 여성들을 꾀어내 1년 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이들은 피해자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고 불법 촬영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범행을 저질렀지만 가해자 중 10명만이 기소됐다.

20명이 소년부에 송치됐고 나머지 가해자들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그마저도 기소된 10명 중 5명도 소년원으로 송치됐고, 나머지는 장기보호관찰과 함께 80시간의 사회봉사활동 및 40시간의 교화프로그램 수강명령을 받았다. 결국 이 중 전과가 남은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이 조명되면서 여론은 공분했다.

그러나 ‘나락 보관소’가 가해자의 여자친구라며 공개한 인물이 관계 없는 인물로 드러나는 등 ‘사적 제재’의 한계도 드러났다. 이에 더해 피해자 측의 허락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자 ‘나락 보관소’를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신원이 공개된 이들도 법적 대응에 들어간 상황이다. 경남경찰청은 7일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 신원 공개와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5건의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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