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셔’ 정규직 기쁨은 잠시…영업에 물류까지 “벌어서 다 약값”
대형마트 계산원
비정규직 투쟁, 2019년 전환 성과
회사, 자연 퇴사자 충원하지 않고
‘통합부서’ 띄워 노동강도 높여
‘평일 의무휴업’ 등 퇴행 현실
선영씨는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경력 20년을 앞뒀다. 처음에는 손님을 마주하는 것도,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는 것도 어려웠다. 계산은 더 난감했다. 단지 바코드를 찍는 일이 아니었다. 시스템을 알고 능숙하게 처리해야 계산대가 문제없이 흘러갔다. 숙련이 쌓여 선영씨는 이제 거의 “자동”이다. 그래도 늘 긴장하고 집중한다. 조금도 틀리면 안 되니까. 할인 방침을 오해해 선영씨에게 “사기 친다”며 화내고, 눈 마주친 걸 “왜 째려보냐”며 시비 걸고, 회사 매뉴얼을 따랐는데 “도둑 취급했다”며 “무릎 꿇고 사과하라”기까지 하는, 뜻밖의 사람과 상황도 만나니까.
“죄송하다는 말이 아주 입에 붙었어요. 잘못한 게 없어도 ‘죄송합니다’ 먼저 하고 봐요. 내 감정노동은 아직 존중받기 어려운 것 같아요. 손님은 본인 기준으로만 생각해서 ‘왜 빨리 안 해줘요?’, ‘뭐 하시는 거예요?’ 그러기도 하죠. 그래도 우리에게 친근하게 대해주시는 분도 있고 먼저 아는 척하시는 분도 있고, 또 기분 좋게 해주시는 분도 많아요. 우리가 계속 기계처럼 물건을 스캔하는 걸 보고 ‘힘드시죠?’ 그러는데 어느 날 그 한마디가 위로가 되더라고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예전처럼 막 살벌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정규직이 돼서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요.”
“정규직 되면 가정부터 바뀌는데…”
선영씨가 입사할 때 회사는 더는 정규직을 뽑지 않았다. 사회 전반이 그랬다. 6개월 계약의 비정규직 자리뿐이었다. 그마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비정규직 대량 해고가 예정돼 있었다. 이를 막고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뭉쳐 파업에 나섰다. 그때 조합원 선영씨도 함께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동료들과 일하는데 회사 이름이 몇차례 바뀌었다.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건 노동자들뿐. 파업 뒤에 비정규직은 무기계약직이 되었다. 2018년에는 2005년 12월31일 이전에 입사한 만 12년 이상 근속자가 먼저, 2019년에는 1년 이상 근속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너무 감사한 게요, 노동조합이 계속 정규직화에 집중해서 결국 단체협약에서 정규직을 다 따냈어요. 저는 2차로 정규직이 되었어요. 1년 이상만 근무하면 정규직이 된다는 게, 급여를 떠나서, 마트에서는 어쨌든 엄청난 처우죠. 올해 임단협에서는 정규직 전환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였어요.”
정규직 전환은 노동의 안전과 안정을 보장한다. 이전에는 계산대가 바쁜 시간에만 5.5, 6.5, 7.5시간으로 초단기 노동자를 쓰는 일이 버젓이 이뤄졌다. 나란한 계산대에 정규직, 무기계약직, 초단기 알바 노동자가 일했다. 초단기 노동은 저임금을 만들어냈고, 다른 일도 병행하기 어렵게 해 생활도 시간도 곤궁하게 했다. 노동자를 “대기조”로 삼는 노동은 “안전한 노동”이 아니다. 불안하고 불안정한 노동은 다른 자리도 잠식한다.
“그러니까 사회가 많이 바뀌어야 해요. 우리가 정규직을 따냈을 때 자랑스러웠던 게, 하물며 한낱 마트 노동자가, 여성 노동자가 제일 많은 마트 노동자가 정규직을 따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대단한 월급을 받느냐면 그렇지도 않아요. 근데 그 정규직이라는 말 한마디가 너무 감사하죠. 우리 스스로가 대견하고요. 이런 일이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비슷한 시기, 선영씨 남편도 시내버스 정규직 기사가 되었다. 그 전까지는 마을버스 비정규직 기사로 일했다. 부부가 정규직이 된 뒤, 선영씨네는 집안 공기가 달라졌다.
“삶의 질이 다르죠. 애 아빠가 마을버스 운전할 때 하루에 노선을 14바퀴를 돌아도 월급이 백몇만원이었어요. 전날 종일 운전하고 쉬는 날에도 회사에서 부르면 달려가서 또 운전대를 잡아야 해요. 밤 12시까지 일했는데 몇시간 뒤 새벽에 출근하라고 해도 군말 없이 나가죠. 비정규직이니까요. 그나마라도 고용을 보장받으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죠. 진짜 정규직이 되고 삶에 여유가 생겼다니까요. 표정이 펴요.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요. 우리가 비정규직일 때는 ‘쟤 또 뭐 해줘야 하는데, 없는 돈에 어떻게 해줘야 하나’ 고민했어요. 우리 애들은 입시학원은 안 다니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태권도·피아노를 배웠어요. 비정규직일 때는 그것마저도 부담돼 ‘끊어? 말아?’ 갈등했는데, 정규직이 되고는 애들 원하는 데까지는 계속 시켜줬어요. 아니 정규직만 되고도 한 가정이 이렇게 편해졌다는데, 비정규직으로 차별받는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바뀌면 우리 동네도 사회도 바뀌고 얼마나 발전하겠어요. 사람들이 다 미소를 띠고, 서로 존중할 거고, 진상도 없을 거고, 갑질도 없을 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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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어서 병원비·약값 써요”
그런데 선영씨는 이제 계산대 밖에서도 일한다. 몇해 전, 회사가 ‘통합부서’를 만들고부터다. 매장에 가서 상자 ‘까대기’(제품을 창고에서 가져와 매대에 진열하는 작업)를 하고 물건을 진열하는 영업 일도 한다. 어떤 이는 안 하던 온라인 물류 일에 나선다. 회사는 직원을 전천후로 쓸 참이다.
“아침 8시에 출근하면 10시에 매장 열기 전까지 까대기를 해요. 세제 깔고, 치약·칫솔 깔다가 베이비 코너에 가서 또 거기 일을 해요. 어떤 사람은 가정주거 코너에 있다가 강아지 사료를 깔러 가요. 의류 쪽에서 옷을 정리하다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고요. 신선 쪽 농수축산물과 조리 제안만 원래대로 고정 인원이 맡죠. 신입 중에는 영업만 생각하고 들어왔다가 계산대를 맡겨 당황해요. 이건 효율적인 게 아니에요. 그동안 정년퇴직하거나 자연 퇴사한 인원이 있을 거 아니에요? 빈자리를 충분히 충원해야 하는데 회사가 적은 인원으로 돌려막다 보니까 일하는 사람은 노동강도가 세진 걸 몸으로 바로 체감하죠. 100명 선에서 한 매장이 굴러간다는 건 엄청난 거거든요. 오죽하면 그런 말들을 해요. ‘돈 벌어서 병원비, 약값 번다’고.”
선영씨와 동료들은 스케줄에 따라 주마다 출퇴근 시간이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주중에도 바뀐다. 오전 8시, 10시, 오후 1시, 3시에 출근해 오후 5시, 7시, 밤 10시, 12시에 퇴근한다. 주중에 하루 쉬는 날도 스케줄에 따라 다르다. 매장이 영업 중인 날은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매장이 셔터를 내리고 영업하지 않는 의무휴업일인 매달 둘째·넷째 일요일이 비로소 쉬는 날이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으로 의무휴업일이 생기기 전에는 쉬는 일요일도 없었다. 주중보다 과부하가 걸리는 토요일·일요일 주말 노동은 몇 배로 더 힘들었다.
“솔직히 너무 속상해요.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꾸는 건 의미가 없어요. 후퇴하는 거죠. 일요일에 쉬는 거랑 주중 평일에 쉬는 거랑 다르죠. 평일은 어차피 지금도 저희가 하루씩 쉬잖아요. 주말에 매장이 문 닫으면 우리는 가족과 바람이라도 쐬러 한번 다녀오고, 경조사도 챙길 수 있잖아요. 일요일에도 일해야 한다면 예전처럼 서로 막 사다리를 타면서 ‘니가 쉬니, 내가 쉬니’ 살벌하겠죠.”
발전은, 일요일 의무휴업 횟수를 기존 2회에서 3회 혹은 4회로 더 늘린다든가, 일요일이 아닌 평일을 의무휴업으로 쓰는 곳이 원래 취지대로 일요일에 쉬게 하거나, 이 법에서 제외됐던 백화점을 비롯한 다른 유통 사업장에도 일요일 의무휴업을 확장해 노동자에게 제대로 쉴 권리와 건강권,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일하는 이들이 진정 이 법의 이해당사자니까.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휴식 기간은 “가능한 한 각 사업의 전체 직원에게 동시에 부여되어야” 하고, “가능한 한 국가 또는 지역의 전통이나 관습에 의해 이미 정해진 날과 일치하도록 고정되어야” 한다.
의무휴업일 문제 말고도 사모펀드 자본이 마트를 매각하니 어쩌니 하는 소식들에 선영씨 마음이 때로 휘청한다. 어디든 논의에서 노동자를 배제하려 든다. 선영씨는 일터와 삶터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두고 지금껏 애쓰며 살아왔다. 스스로 배제하지 않으면, 아무도 배제하지 못할 게다.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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