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마약해도 활동, 음주 복귀도 단축… 뻔뻔한 컴백 이유는 역시 '돈'
스타는 매출 유지하려 활동 강행하고
팬은 '향유 권리' 내세우며 잘못 외면
OTT 등 지상파 외 복귀 경로도 다양
※'어긋난 팬심'의 실태를 다룬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끝까지 책임지고 싶습니다. 이게 책임감이고 팬클럽과의 약속입니다."
(구속영장 신청 후 김호중이 소속사를 통해 밝힌 입장)
사고를 친 연예인이 무리하게 활동을 강행하거나 복귀를 서두를 때 공통적으로 대는 이유가 있다. 바로 '팬과의 약속'이다. 공연·작품·행사 취소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또는 팬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활동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돈'이 자리하고 있다. 기획사 입장에선 유명 연예인의 활동 중단은 매출에 직격탄이다. 그래서 최대한 '활동 공백기'를 줄여야 하고, 연예인의 비행에 따르는 각종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도 대응해야 한다. 팬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연예인과 소속사,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보다는 '나의 향유 권리'를 더 소중히 여기는 팬의 수요가 딱 맞아떨어지면서 '복귀'와 '활동연장'의 정당성이 부여되는 셈이다.
뻔뻔함의 이유가 '돈'이라는 것은 연예인 소속사의 재무 사정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김호중 소속사 생각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매출은 약 187억6,154만 원인데, 이중 공연수익 등 미리 받은 선수금이 125억6,956만 원(70.0%)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호중 정도의 팬덤이라면 객석 규모에 따라 상품 판매와 하루치 공연으로도 상당한 금액일 것"이라며 "돈을 미리 받고도 공연을 진행하지 못했고 지출할 돈은 산더미니, 폐업한다 해도 회사 차원의 어려움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예계에선 김호중 측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일정이 잡혔음에도 마지막까지 공연을 진행하려 했던 이유도 선수금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뒤늦게 '노개런티'로 출연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 역시 여론에 등떠밀린 결정이었다는 빈축을 샀다.
"연예인 걱정할 필요 없어"
유명 연예인이 각종 범죄나 논란에 휘말리면, 운영 기반이 취약하거나 해당 연예인에게 매출을 의존하는 소속사의 타격은 크다. 마약류 등 불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우 유아인의 소속사 '유에이에이아이엔씨'의 2022년 매출은 192억6,127만 원이었는데, 사건이 불거진 지난해엔 92억1,262만 원으로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유아인이 미리 촬영한 작품에 출연하지 못하고, 방송이나 광고가 끊긴 탓이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크거나 소속 연예인의 '포트폴리오'가 잘 구성된 회사의 경우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다. YG엔터테인먼트 재무제표를 확인해 보니 2017년 총 매출은 3,498억 원, 2018년 2,858억 원, 2019년 2,644억 원, 2020년 2,552억 원, 2021년 3,556억 원이었다. 이 시기 아이돌 그룹 빅뱅의 승리가 연루된 버닝썬 사태, 탑·한서희 등의 마약 투약 사건이 발생해 매출이 떨어졌지만, 예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드라마 외주제작사 PD 김모(36)씨는 "사고를 쳐도 대형 기획사와 연예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며 "논란의 연예인이 출연하는 게 부담일 순 있지만, 확실한 티켓 파워와 팬들 지지가 있다면 캐스팅을 밀고 나가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슬그머니 복귀하는 연예인들
범죄를 저지르거나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복귀 시점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특히 영화계에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외도 논란이 있었던 배우 이병헌은 2015년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1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연기력으로 논란을 잠재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배우 하정우도 프로포폴 불법 투약과 대리 처방으로 벌금 3,000만 원을 선고 받았지만, 2년 만에 '수리남'으로 돌아와 정상적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엔 음주운전으로 자취를 감췄던 배우 배성우가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아인마저도 4월 '종말의 바보'를 통해 조심스럽게 등장했다. 종말의 바보 제작사 측은 "거부감이 있는 시청자를 고려하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유아인이 빠지면 이야기가 흔들려 크게 줄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 밖에 버닝썬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출소한 가수 정준영도 음악 활동을 재차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의 연예인들이 자숙 후 복귀하는 경로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지상파 출연 정지만으로도 수년 동안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해 큰 타격이 있었지만, 최근엔 대중과 마주할 수 있는 매체도 많아졌다. 케이블 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여론을 살핀 뒤 지상파 복귀를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방식도 변해, 이제는 상대적으로 눈치가 덜한 유튜브나 인터넷 개인 방송으로 복귀하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다. 2010년 필리핀 불법 해외원정 도박으로 방송가에서 사라진 신정환은 케이블 음악방송과 JTBC 예능프로그램 등에 출연했지만, 악화한 여론을 되돌리지 못하고 인터넷 방송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별다른 출연 규제가 없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한 복귀도 늘어나는 추세다.
"고소득만큼 책임도 인식해야"
물론 한 번의 비행을 이유로 대중과 마주할 기회를 평생 혹은 장기간 박탈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이 대중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그 관심을 등에 업고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누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스로 책임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연예인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존재고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좋은 일을 했을 때 만큼이나 잘못을 했을 때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며 "거짓말을 하거나 은폐를 시도해도 언젠가 진상이 드러나 추후 복귀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만큼, 대중 앞에선 항상 겸손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가져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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