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응원하던 산악인의 죽음, 정권 바뀌니 정부는 소송

장슬기 기자 2024. 6. 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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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보경 셜록 기자 "소송 당한 대원들 목소리 담은 기사 없어 직접 듣고 싶었다"
1심 원고 '대한민국' 일부 승소에도 항소, 광주지역언론서 다루다 잊히자 대원들 인터뷰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지난 4일 김홍빈 대장 관련 셜록 기사 갈무리

김홍빈 대장은 히말라야 14좌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그는 열 손가락이 없다. 2021년 7월19일 마지막 봉우리 브로드피크(8047m) 등반에 성공한 후 하산 중 실종됐다. 실제 성사되진 못했지만 브로드피크 정상에서 대통령과 화상통화까지 계획했을 만큼 정부 차원의 관심을 받던 등정이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다음날 SNS에 김 대장 실종에 대한 안타까움을 남겼다. 외교부 요청으로 파키스탄 구조 헬기가 구조에 나섰지만 안타깝게 김 대장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2021년 8월4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김 대장 분향소에 방문했고 체육훈장 청룡장(1등급 훈장)을 추서했다.

정권이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21일 만인 2022년 5월31일 정부는 광주광역시산악연맹(약2500만 원)과 김홍빈 원정대 대원 5명(약 4300만 원)에게 총 6800여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김 대장을 구조하느라 썼던 비용을 내놓으라는 소송이다. 원고는 대한민국, 소관청은 외교부, 법률상 대표자는 당시 법무부 장관 한동훈. 광주MBC를 시작으로 광주 지역언론에서 주로 이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은 3600여만 원(광주시산악연맹 2500여만 원, 대원 5명 1076만 원)을 납부하라고 판결을 내렸지만 정부는 6800여만 원 전부를 받겠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역시 광주지역언론을 중심으로 기사가 나오다 잊혔다. 지난 3월 항소심이 시작됐고, 오는 11일이 두 번째 변론기일이다.

진살탐사그룹 셜록에서 이 문제를 다시 길어 올렸다.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6월4일), <구조는 실패, 외교는 부재…'구조비' 소송만 최선인 정부>(6월5일) 등을 보도한 김보경 셜록 기자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등의 문제의식으로 접근했다”며 “소송을 당한 대원들 목소리를 직접 담은 기사가 없어 직접 들어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대원 2명과 촬영감독 1명을 인터뷰해 당시 구조 현장 상황을 전했다. 김 대장이 실종됐을 때 한 러시아 산악인이 김 대장을 구조하러 나섰고 실종 다음날인 2021년 7월19일 오전 11시경 좁은 얼음 절벽에 서 있는 김 대장을 찾았다. 그 러시아 산악인 영상에 찍힌 김 대장은 “크레바스(깊게 갈라진 틈)에 빠져가지고,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또 도움을 받아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김 대장은 로프에서 추락해 구조는 실패했고, 이날 오후 2시40분경 '김 대장이 구조 중 추락·실종됐다'는 사실이 한국에 공식 통보됐다. 셜록 보도에는 당시 고산증과 동상, 환각 등에 시달리며 김 대장을 두고 떠나야 하는 대원들의 심경이 담겨있다. 다음날인 20일부터 광주시, 광주시산악연맹 등이 '김홍빈 원정대 광주시 사고수습 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외교부와 주파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 대책위는 중국 정부 허가를 받고 파키스탄 군용 헬기로 수색·구조활동을 시작했다. 대통령도 구조를 바랐다.

▲ 지난 2021년 7월20일자 문재인 당시 대통령 페이스북 게시글

세 차례 구조 헬기를 띄웠지만 시신조차 찾지 못했고, 7월26일 수색이 중단됐다. 7월27일 한국에서 김 대장 장례식을 준비했는데 원정대원 5명은 코로나19 격리 방침으로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다. 다음해 5월 새 대통령이 취임했고, 정부는 구조 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외교부가 내민 법적 근거는 “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신체 및 재산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영사조력법이었다.

지난 2022년 7월18일 무등일보는 사설 <김홍빈 수색 비용 청구한 정부, 이게 윤 정부 인권인가>에서 “외교부는 이제라도 구상권 소송을 당장 취소해야 한다”며 “산악인 김홍빈은 인간한계를 뛰어넘는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많은 위로와 감동을 줬고 이는 국가가 그 무엇으로도 되갚을 수 없는 한 인간의 위대한 공로라는 점에서 그의 안위를 살피는데 돈계산이나 하는 저급한 행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법원은 지난해 6월23일 대한민국 손을 들어줬고 대원들과 광주시산악연맹은 법원 판결을 따르려 했지만 대한민국이 오히려 항소했다. 광주시산악연맹이 항소까지 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다는 입장을 냈고 광주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이 소식을 보도했다. 김 기자는 올초 잊히고 있는 이 사건 취재에 나섰다. 처음에는 광주시산악연맹에 연락을 했고, 대원들과 직접 소통하기 시작한 건 지난 3월경이다.

김 기자는 “정부가 항소했다는 광주MBC 보도를 봤는데 광주시산악연맹뿐 아니라 대원 개인들도 포함돼 있었다”며 “구조도 못했고 김 대장의 시신은 히말라야에 있는데 대원들에게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교부가 항소하는 걸 보고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에 취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하면서 모두가 지쳐있었고,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있었기에 언론에서 이들을 접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고 김 기자는 전했다. 그럼에도 김 대장을 잃은 동료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김 기자는 “인터뷰에 응한 두 명의 대원은 처음 구조 헬기가 떴을 때 탔고, 촬영감독은 세 번째 헬기에 타기도 하고 베이스캠프에 상주하며 대책위, 김홍빈 원정대 등과 각각 소통을 담당해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했다.

▲ 지난 5일 셜록의 김홍빈 대장 관련 두번째 기사 갈무리

두 번째 기사에서는 법원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을 다뤘다. 영사조력법에 따라 재외국민은 자신의 생명 등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긴급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 즉 '해외위난상황'은 예외다. 외교부는 '긴급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1심 법원은 “김홍빈 원정대가 당시 '긴급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 있었다”고 보면서도 지출된 비용이 과다하므로 일부 갚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 기자는 1심 판결에서 의미가 있는 부분, 항소심에서 더 다퉈봐야 할 부분, 당시 구조의 허점이나 외교부의 문제 등을 조목조목 살펴봤다. 외교부와 법무부는 모두 셜록에 “현재 재판 중인 사안 관련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오는 11일 항소심 두 번째 변론기일을 취재한 이후 세 번째 보도를 준비하고 있다. 김 기자는 “영사조력법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는 부분은 없는지, 해외위난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규정할 필요는 없는지 등에 대해 3화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막 개원한 22대 국회가 들여다볼 또 하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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