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희극은 깻잎 한장 차이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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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은 우습다.
남의 일이라도 지나치게 고통 받거나 위험한 상황에 나는 웃을 수 없다.
아무려나 비극과 희극이 깻잎 한장 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일상의 사소한 실수는 웃음을 자아내는 반면, 높은 이상이 좌절되는 순간은 비극이다." 프로프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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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슬픔의 경계
우당탕탕은 우습다. 아니 우습지 않다. 남이 발을 헛디뎌 우당탕탕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숨죽여 웃는다. 반면 내가 우당탕탕 넘어질 때는 아프고 부끄러워 웃음이 나지 않는다. 남은 몰래 웃겠지만 말이다.
남의 우당탕탕에 웃음이 나는 건 인간 본성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수많은 슬랩스틱 몸개그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성공해왔을 리 없다. 솔직히 고백건대, 나의 숱한 재담에는 웃지 않던 주위 사람들이 내가 휘청거리다 넘어지면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반면 나의 우당탕탕에 나는 웃음이 나지 않는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풍자했다. “당신은 어째서 웃나? 이름만 바꾸면 바로 당신 이야기인데.” 호라티우스가 이 말을 한 의도는 “나의 일도 남이 보면 우습다”고 꼬집는 것이다. 나는 거꾸로 해석해본다. 남의 일도 내 일이 되면 마냥 웃음이 나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남의 불운과 실수도 언제나 우습지는 않다. 평소 얄미운 사람이 커피를 쏟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망신 당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웃는다.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라고 부르는 심보. 우리 말에 ‘잘코사니’(고소하게 여겨지는 일)라는 표현이 있다. 러시아의 민담 연구자 프로프는 “이기적이고 하찮은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이런 지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더 웃는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처지에 놓이면 나는 웃지 않는다.
남의 일이라도 지나치게 고통 받거나 위험한 상황에 나는 웃을 수 없다. 스케이트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진 사람의 경우를 프로프는 언급한다. 빠진 사람이 안전하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는 숨 죽이고 지켜보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무사히 물 밖으로 나온 다음에야 웃을 수 있다. 남이 큰 고통을 겪을 때 낄낄 웃는 것은 비뚤어진 마음이라고, 나는 이전 글에 썼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과 웃음을 상세하게 비교하는 글을 쓰겠다고 ‘시학’에서 약속했지만, 그런 책은 지금 없다. 아무려나 비극과 희극이 깻잎 한장 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둘 다 인간의 의지가 꺾이고 작건 크건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일상의 사소한 실수는 웃음을 자아내는 반면, 높은 이상이 좌절되는 순간은 비극이다.” 프로프의 지적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우습거나 우습지 않다. 웃음과 슬픔의 경계는 참으로 모호하여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 없다. 어떤 웃음은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남의 일이라도 고통이 지나치면 웃을 수 없다. 남의 불행에 슬퍼해야 할 때 웃기부터 하는 사회는 각박한 사회다. 우리가 웃고 농담하기 전에 한번 더 살펴야 하는 이유다.
또한 나 자신을 낮추는 농담이 오랜 세월 성공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수천년 전 쓰여진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1권에서 헤파이스토스 신은 자기를 낮추어 다른 신들을 웃게 했다.
글·그림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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