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임무 마친 F-4와 작별…조종사 “멀미하고 힘들었지만 아쉽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4. 6. 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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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F-14 전투기와 조종사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탑건’(1985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F-14가 항공모함에서 이함하는 오프닝 장면일 것이다.

F-14가 멋지게 비행하고 공중전을 벌이는 모습이 끊임없이 등장했던 ‘탑건’은 한국에서도 수많은 소년의 장래희망을 전투기 조종사로 바꿔버렸다.
최인준 공군 소령이 F-4E 전투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공군 제공
공군사관학교 59기로서 지난 2011년 임관했던 최인준 소령도 ‘탑건’의 영향을 받았다. 영화를 보고 전투조종사의 꿈을 꾸던 최 소령은 F-14처럼 복좌(2인승) 항공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꿈은 현실이 됐다. 지난 2013년 3월 제153전투비행대대에 전입한 후 F-4E 팬텀(유령)에 탑승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F-4E를 조종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최 소령은 교관 자격을 지니고 있고, 1010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지난 7일 경기 수원 기지에서 열렸던 F-4E 퇴역식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최 소령은 F-4E 퇴역식을 앞두고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작이 어려웠고 난이도도 높았지만 아쉽고 서운하다”며 “그래도 지금까지 국가와 국민을 지킨 F-4는 국민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 어렵지만 전천후 능력 있어” 

F-4E는 F-14처럼 2명이 조종석 앞뒤로 타는 복좌 기종으로서 F-4 계열 중에선 최신형이다. 

1969년 F-4를 첫 도입한 한국 공군은 F-4E를 중심으로 187대를 사용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지난 7일 퇴역식을 갖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번에 퇴역한 F-4E는 제작사인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現 보잉)가 생산한 F-4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만든 기체다. 한국 공군에도, 세계 항공역사에도 큰 의미가 있는 이벤트였다.
7일 경기도 수원시 공군10전투비행단에서 열린 F-4E 퇴역식에서 마지막 비행임무를 위해 F-4E가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수원=뉴스1
최 소령은 F-4E를 처음 조종했을 때의 어려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F-4E를 후방석에 탔는데 좌석이 너무 좁고 답답해 멀미를 심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며 “전방석에서 처음 비행을 할 땐 조작이 생각보다 어려워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F-4E는 최대무장탑재량이 7.3t에 달할 정도로 기체가 무거운 편에 속한다. 하지만 KF-16 등과 달리 컴퓨터로 제어되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 시스템이 없다. 아날로그 비행기인 셈이다.

개인 역량에 따라 조종과 비행이 영향을 받으므로, 조종사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고 업무도 많다. 실제로 소링 이글을 비롯한 대규모 공중훈련에서 F-4E 조종사의 조종 강도에 놀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 소령은 “(F-4는) 속도영역에 따라 조종특성이 크게 달라진다. 다른 전투기들보다는 조금 더 조종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며 “육중한 동체로 인해 다른 기종보다 기동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같은 임무를 수행해도 난도가 조금 더 높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조종이 쉽지 않은 F-4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최 소령은 다양한 일을 겪었다. 위험한 순간과 환희에 찬 순간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슬럼프를 겪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 소령은 아름다웠던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는 “후방석에 탑승해 야간 비행을 하던 중 전방석 조종사 선배님이 ‘별을 봐라, 참 아름답지 않냐’고 하셨다. 정말 아름다워 몇 초간 멍하니 하늘을 봤던 기억이 난다”며 “비행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시기가 왔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은 장면”이라고 회고했다.
7일 경기도 수원시 공군10전투비행단에서 열린 F-4E 퇴역식에서 마지막 비행임무를 마친 F-4E와 명예전역장이 함께 있다. 수원=뉴스1
◆강력한 공격력 지녀…국가 핵심 자산

조종이 쉽진 않으나 F-4E는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기종이다. 지상 폭격과 적 항공기 침투 저지, 근접항공지원 등 다양한 항공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전천후 전폭기인 셈이다.

한국 공군은 F-4E에 AGM-142 팝아이 중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탑재, 전략적 타격력도 부여했다.

1999년 이스라엘에서 들여온 AGM-142 팝아이 미사일은 도입 당시 북한군 방공망 사정거리 밖에서 미사일을 발사, 지상 표적을 파괴할 수 있었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2000년대 F-15K를 도입하면서 슬램 이알(SLAM-ER)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함께 들여오기 전까지 F-4E와 AGM-142 팝아이 미사일은 현무 탄도미사일 등과 더불어 대북 억제력의 핵심 축을 이뤘다.

최 소령은 “F-4E는 공대공 공대지 능력이 뛰어난 항공기로 1만5000파운드(6.8t)의 폭장량과 뛰어난 레이더 성능을 기반으로 한 미사일 운용 능력이 F-4E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또 “아날로그적 요소가 많이 있지만, AGM-142 팝아이 미사일을 운용하며 전략적인 목표물을 정밀 폭격할 수 있다”며 팝아이 미사일을 통한 전략 타격 능력을 강조했다.

일각에선 F-4D가 2010년, 정찰형인 RF-4C가 2014년 퇴역한 것과 달리 F-4E가 올해까지 쓰였다는 것은 AGM-142 팝아이 미사일 플랫폼으로서의 역할 때문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7일 경기도 수원시 공군10전투비행단에서 열린 F-4E 퇴역식에서 마지막 비행임무를 위해 F-4E가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수원=뉴스1 
최 소령은 AGM-142 팝아이 미사일에 대해 “정확성과 파괴력, 사거리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굉장히 훌륭한 무장이고, 전략적인 표적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다른 공대지 무장들과 비교하면 준비하고 신경 쓸 것들이 많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무장이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예민한 무장이기 때문에 항상 항온·항습 환경 하에서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F-4E는 우수한 전투기지만, 베트남전쟁 당시부터 쓰였던 기종이다. 한국 공군이 F-4E를 지나치게 오랜 기간 사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최 소령은 “F-4를 오랜 기간 사용한 것은 F-4가 공군과 국가에 가치 있는 자산이었기 때문”이라며 “F-4는 AGM-142 팝아이 미사일을 포함해 유사시 군의 힘을 투사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무장운용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비사들의 헌신과 장기운용 항공기에 대한 철저한 관리로 처음 항공기에 탑승했을 때와 비교해봐도 전혀 떨어지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며, 개인적으로는 10년은 더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며 퇴역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최 소령은 F-4를 통해 남북 공군력이 역전됐고, 이것이 F-4가 한국 공군에 갖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7일 경기도 수원시 공군10전투비행단에서 열린 F-4E 퇴역식에서 ‘방위성금헌납기’ 마킹이 그려진 F-4E가 주기되어 있다. 수원=뉴스1
그는 “1969년 미국으로부터 F-4D를 공여받는 순간이 남북의 공군력이 역전되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의 마음이 모여서 도입된 방위성금헌납기로 시작되어 지금 이 순간까지 국가와 국민을 지켰다”고 밝혔다.

이어 “F-4는 오랜 기간 동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영공방위의 핵심전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역사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기종”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F-4는 한국 공군 일선에서 물러났다. 3만5800파운드의 추력을 지닌 J79 엔진 2개가 내뿜는 강력한 엔진음과 열기는 한국 공군기지에서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다. 보라매공원을 비롯한 기념 공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최 소령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F-4가 우리 곁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군 생활 대부분을 함께 해온 F-4가 떠나는 것이 굉장히 아쉽고 서운하다”면서도 “F-4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퇴역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소령은 “F-4는 역사 속으로 물러나지만 국민의 마음이 모인 방위성금헌납기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국가와 국민을 지킨 F-4는 국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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