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LG 인도공장 '가스 참사' 4년‥"LG, 한국·미국이었어도 이리 대응했을까요"
"인도 한번 다녀오자"
회사 선배 기자의 이 한마디가 취재의 시작이었습니다. 선배는 앞서 한 환경단체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인도 비사카파트남의 LG화학 공장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 참사와 관련해 현지에서 피해자 후유증 조사를 진행하러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LG화학 '가스 누출 참사'를 몰랐습니다. 언제, 어디서, 몇 명이 숨졌고 다쳤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곧바로 기사를 찾아봤는데요.
길거리에 정신을 잃은 듯 쓰러진 사람들과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아버지, 거품 물고 죽은 가축들 모습이 외신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지난 2020년 5월 7일 LG화학 인도공장에서 800톤가량의 유독 가스가 누출돼 당일에만 12명이 숨지고, 585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참사'였던 겁니다.
그런데 동시에 의아했습니다. 이 정도 사고가 발생하고도, 국내 언론사 그 어디도 최근까지 관심을 두고 보도한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고, 배·보상 잘하고, 말끔히 끝낸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환경단체 관계자는 전혀 다른 말을 꺼냈습니다. "참사 책임이 있는 LG가 피해 배·보상은 물론 후유증 상황도 전혀 확인하지 않고 있어 주민들만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처음엔 의심했습니다. 글로벌 대기업인 LG가 시장 규모가 큰 인도에서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고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습니다.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지에서 피해자들의 상황을 들어보고 사고 현장을 돌아보면,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저지른 환경 참사와 그 책임이 명확히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박 8일 일정으로 짐을 꾸렸습니다.
인도에서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은 생때같은 10살 딸을 '그날' 하늘로 떠나보낸 어머니였습니다. 참사 당일, 딸 그리스마와 함께 집에서 잠을 자다 갑자기 들이닥친 유독 가스에 의식을 잃었다는 라타 씨. 병원에서 3일 만에 깨어나 처음으로 물었던 게 그리스마의 상태였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딸은 이미 숨져있었습니다. '딸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느냐'는 물음에 인터뷰 내내 담담했던 그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습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17살 챈들러 군도 '그날' 숨졌습니다. 평생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며 의사를 꿈꿔온 챈들러 군. 꿈에 그리던 의대 합격증을 손에 쥐고, 의사 가운을 입을 날만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참변을 당했습니다. 조용히 남편의 인터뷰를 지켜보던 챈들러 군 어머니는 영영 입지 못하게 될 아들의 의사 가운을 꺼내 보이며 결국 흐느꼈습니다.
LG화학 인도공장에서 날아든 유독 가스에 '그날'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12명입니다. 공장이 마을과 2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바람도 마을 쪽으로 불었던 탓에 숨진 사람 모두 마을 주민이었습니다.
LG화학은 참사 직후 사과문을 내고 "유가족과 피해자분들을 위해 모든 지원이 보장되도록 전담 조직을 꾸려 장례와 의료, 생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유가족들은 그 누구도 LG화학으로부터 장례비는 물론 연락 한 통도 받은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LG가 당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허울뿐인 약속을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참사 당시엔 살아남았지만 남겨진 자의 고통도 컸습니다.
23살 칸나지 씨. 겉모습으로만 봐선 누가 봐도 건실한 20대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참사 당시 사진을 보니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게 참으로 다행이다'싶을 만큼 참혹했습니다.
발을 감싸고 있던 피부가 심하게 타 그대로 벗겨졌고, 귀 뒷부분은 수포와 함께 곳곳이 새까맣게 변해버렸습니다. 유독 가스를 마셔 길 한복판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심한 화학 화상을 입은 겁니다. 의식을 되찾자마자 느껴진 통증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두 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상처 부위는 여전히 가렵고, 최근엔 숨쉬기까지 어려워졌습니다.
후유증 사망이 의심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참사 당일 가스를 마신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45살 라주 씨는 퇴원 뒤에도 계속 숨쉬기가 어렵자 LG가 지정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간단한 약 처방만 해줄 뿐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폐 검사를 받기 위해 대학병원을 방문했는데, 그곳 심장 검사실 앞 의자에 앉아 있다가 돌연 사망했습니다. 참사 발생 4주 만이었습니다.
부식성이 강한 가스에 장시간 노출돼 피부가 까맣게 변해버린 고령의 여성부터, 사고 뒤 걸린 천식 탓에 평생 호흡기를 들어야 하는 주민까지. 한 집 건너 한집마다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환경단체가 피해를 본 주민 257명을 조사한 결과 11명이 후유증으로 사망한 걸로 추정되고, 25%는 호흡기에 15%는 피부와 눈에 문제가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누출 가스인 스티렌은 유독성은 물론 백혈병과 폐암을 일으킬 수 있는 세계보건기구 지정 '2A 발암물질'이라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데요. 사고원인을 조사한 주 정부 산하 특별조사위원회와 참사 당시 환자를 직접 본 현지 대학병원 의사도 "주민들 건강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 정부와 참사 책임이 있는 LG화학 모두 추적 관찰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 그 사이 후유증으로 누군가는 고통받고, 또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LG, 21개 중 20개 잘못"
그렇다면 LG는 뭘 잘못했을까. 주 정부는 의사, 화학자 등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사고 원인 파악에 나섰습니다.
두 달 만에 4천 쪽 분량의 사고조사보고서를 낸 주 정부는 LG화학의 책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조사위가 꼽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폭발적으로 뜨거워진 '스티렌 보관 탱크'. 스티렌 액체는 온도가 65도 이상 올라가면 증발과 폭발 위험이 커져 20도 이하로 관리돼야 합니다. 하지만 참사 당일엔 탱크 온도가 153.7도까지 치솟는 등 기준치를 7배 이상 웃돌았던 걸로 파악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탱크 온도가 치솟았을까.
사고가 발생한 탱크는 사용 수명 50년을 3년 넘긴 노후 탱크였습니다. 사고 다섯 달 전엔 인도 당국의 허락 없이 탱크의 설계가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탱크 온도를 낮춰주는 억제제는 최소 한 달 전부터 이미 다 떨어져 있었습니다. 21개 중 20개가 LG 경영진의 잘못, 즉 '관리 태만'이었다고 조사위는 봤습니다.
심지어 참사 당일 독가스가 퍼지는데도 공장 내 36곳에 나 있는 비상 사이렌 스위치를 LG 직원 누구도 누르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마을에 하얗게 내려앉은 '독가스'를 보고 "'코로나19 방역제'인 줄 알았다"거나, "어디 불이 난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새벽 시간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조사위도 강하게 LG를 질책했습니다. "LG는 피해자 대피, 구조, 이송 등에 대한 지원을 전혀 하지 않았고, 주민들 대피를 위해 비상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다"며 "비상 상황 대처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LG가 비용 절감에 힘쓰느라 경험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사고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인도 현지 경찰은 과실 치사, 독성 물질 관리 소홀 혐의 등으로 한국인 법인장 등 직원 12명을 체포했습니다. 주 정부는 사고가 난 공장을 폐쇄시켰으며, 인도 환경재판소도 LG화학 측에 피해 배상을 위한 공탁금 80여억 원을 내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붙잡힌 직원 모두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고, 한국인 책임자 2명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재판은 아직 1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채 4년째 깜깜무소식입니다.
3년 전, MBC는 참사 1주기를 맞아 <LG화학 인도공장 가스유출 1년‥"약속과 달리 외면">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냈습니다.
이때 LG화학은 "1심 판결에서 피해 범위와 보상 규모 등이 정해지면 그 결론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3년이 지난 지금, LG 답변은 똑같습니다. 그 사이 후유증으로 생활고로 주민들만 고통받고 있는데요. 향후 재판이 10년, 15년 길어져도 LG는 같은 입장일 수밖에 없는 걸까요?
재판을 핑계 대는 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어딘가 낯설지가 않습니다. 2011년에야 세상에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들은 5년 동안 "재판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부랴부랴 사과하고, 배상에 나섰습니다.
LG화학도 취재가 시작되자 "판결 전이라도 검진 센터 운영 등 피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 지원 방안 등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환경단체가 수차례 문제 제기를 하고, 심지어 현지에 가서 후유증 조사를 해 언론에 발표했는데도 꿈쩍 않다가 이제서야 일부 조치를 취하겠다는 겁니다. LG화학이 이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둘러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추가 지원에 나서는지, 그 지원이 주민들에게 유용하게 적용되는지 향후 계속 따져 묻겠습니다.
마을에서 만난 현지인마다 BTS 노래를 흥얼거리고, 인기리에 방영된 국내 드라마를 아는지 물었습니다. 저도 잘 모르는 드라마에서 배웠다며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LG가 저지른 참사'에 대해선 얼굴을 붉혔습니다.
마을 곳곳엔 'LG 스티렌 가스 피해자들을 위한 정기 건강검진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유심히 봤습니다. 끝으로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댓글이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한국이나 미국 등에서 같은 참사가 발생했어도 LG가 이리 대응했을까요? 목숨에는 경중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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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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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차현진 chacha@mbc.co.kr / 영상취재: 김승우 kimsmooooth@mbc.co.kr
차현진 기자(chacha@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605870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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