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와 박보검, 탕웨이가 나오고 심지어 AI 등장하는 SF인데 아쉽다고? 영화 '원더랜드' [스프]
개봉 전부터 <원더랜드>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유는 다양하다. 일단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 <가족의 탄생>(2006) 등을 연출한 김태용의 신작이다. 또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등 이름만 들어도 헉 소리가 나는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죽은 이를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서비스 '원더랜드', 낯설고 흥미로운 소재를 가져왔다는 것도 주목받은 이유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실망스럽다. 기발한 발상에서 출발한 <원더랜드>는 뻔한 결말에 도착하고 만다. AI에 대한 상상력과 이쁜 이미지만 인상에 남아서, 영화라기보다 한 편의 광고처럼 느껴진다. 김태용이 전작에서 보여준 재능을 감안하면 아쉽다.
죽은 가족을 인공지능으로 만난다. 이 신선한 발상으로도 지루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 '매력적인 SF의 조건'을 살펴본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의 줄임말인 SF는 과학적 공상에 기반한다. SF물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설정으로 관객을 매혹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SF에 빠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뭘까? 흔히 설정과 상상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SF는 거기에서 출발하니까.
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시선의 전환'. 훌륭한 SF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시선에서 빠져나와 SF가 창조한 무언가의 시선에서 세상을, 인간을,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은 황홀하고도 두려우며 짜릿한, 완연히 SF적인 순간이다.
<블레이드 러너>(1993)에서 주인공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지구에 잠입한 복제 인간을 수사한다. 이 영화가 명작으로 남은 이유는 인간과 복제인간, 블레이드 러너의 시선이 고루 교차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긴장이 피어난다. 반란을 시도하는 복제인간과, 제압하려는 인간. 그 사이의 블레이드 러너. 만일 이 영화가 인간만의 시선으로만 진행된다면, 지루하고도 일방적인 사냥놀이가 되고 말 것이다.
안타깝게도 <원더랜드>는 이 부분을 챙기지 못한다. 영화는 때때로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은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래부터는 영화 <원더랜드>에 대한 스포일링이 있으니 유의해 읽어주기를 바란다.
<원더랜드>에서 진정으로 인공지능의 시선을 대변하는 캐릭터는 없다. 스스로 AI임을 자각하는 캐릭터는 있다. 하지만 이들은 마치 누가 시킨 것처럼, 철저히 인간을 위한 선택만을 한다. 바이리(탕웨이), 태주(박보검), 시스템을 점검하는 AI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이들은 (가족을 위해 잠시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 빼고는) 인간이 불편을 느낄 법한 언행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의 소멸을 앞두고도 흔한 원망이나 요구, 반항도 없다.
인간에게 우호적인 것이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AI로서의 치열한 고민이 없다는 점이 어색하다. AI임을 자각한 이들은 자신의 위치에 절망하지도,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욕망하지도 않는다. 마치 잘 짜인 인형극의 인형처럼, 인간을 위한 역할을 계속 수행할 따름이다. 그러니 긴장감이 떨어지고, 영화가 지루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은 영화의 설정을 해친다. 그러니까 인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사고한다는 설정과, 수상할 정도로 순종적인 AI의 행동 사이에는 어색한 괴리가 존재한다.
비슷한 설정의 영화, <그녀>(2014)를 떠올려 보자. 이 작품은 위에서 설명한 '시선의 전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공지능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AI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좌절한다. 그녀는 여기 그치지 않고 극복을 시도하며, 테오도르와 갈등하고, 마침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인간과 AI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는 영화의 시선 덕분에, 우리는 이들 사이의 긴장에 진지하게 빠져든다. 이것이 SF의 매력이다.
물론 <원더랜드>는 피땀 어린 작업의 결과물일 것이다. 지금 같이 연출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짐작 못 하는 사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평자는 결과를 두고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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